동장군의 위력이 센 우리동네에도 3월 초반에 날씨가 풀리는 듯 하더니
지난 주말부터 날씨가 겨울로 다시 돌아가려는지
계속 눈발이 날리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떠보니 밤새 눈이 내려서 제법 쌓여 있다.
아들은 오후에 강의가 있는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오전에 일을 하기에 직장인 YMCA 오피스로 일찌감치 집을 나서야 한다.
평소에 버스를 타기 위해서 7시 반에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7시 15분부터 집을 나설 태세이기에,
내 딴에는 시간을 잘 못알고 있나해서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얘기를 해 주니
쌓인 눈을 치우고 가려면 지금 나가야 한다는 말을 던지고 삽이 있는 차고로 나가 버렸다.
그러더니 보기에도 우스꽝스럽게 등에는 아들의 책가방이 그대로 매달린 채,
오른쪽 어깨에는 아침에 샌드위치와 이것저것 주섬주섬 담아서 준비한 점심을 넣은 런치백이 대롱대롱거려도
아랑곳 없이 삽을 들고 대문 앞, 드라이브 웨이, 그리고 sidewalk까지 차례로 뛰다시피 눈을 치운다.
아들에게 2-3 cm 밖에 안 되니까 엄마가 치울테니 그냥 가도 좋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눈치우기를 계속 한다.
솔직히 쌓인 눈을 한쪽으로 몰아서 말끔히 눈을 길 위에서 치운다는 차원보다는
삽으로 그저 아무 패턴도 없이 지그재그로 그냥 삽을 밀고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수준의 눈치우기에 불과해서
그냥 내가 삽을 뺏어서 빠른 시간 안에 제대로 눈을 치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 딴에는 열심히 눈을 치우고 삽을 차고에 내 팽겨 두고, 버스를 타려고 급하게 달아 나는 아들의 등과
아무렇게나 들이 댄 삽질의 흔적이 난 길을 벌갈아서 물끄러미 쳐다 보면서
처음엔 피식 하고 웃음이 삐져 나오다가 차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전문서적이나 의사들은 자폐아가 안고 있는 장애를 보편적으로
우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할 줄을 모르기에 사회성이 결여 되고,
언어 장애도 심각하고, 따라서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 능력이 많이 부족하고,
오감이 현저히 예민하거나(hyper sensitive), 아니면 반대로 indifferent or hypo sensitive 하다거나
의미없는 반복되는 행동과 소음을 내기도 하고,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obssessive 행동이 많고,
정상적인 대화보다는 그저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거나 기계적인 대화에 머물고,
별로 쓸모가 없어도 기억력이 툭별히 뛰어나다고 설명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의 장애 사항들 모두 우리 아들에게 물론 적용이 될 뿐만 아니라,
정해진 routine 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변화가 오면 그에 대한 적응을 하지 못해서 어려서부터 특히 더 애를 먹었다.
아무리 작은 변화가 닥칠 때면, 거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처를 하기 보다는
일단 화를 내면서거세게 반발을 하거나,
심적으로 불안한지 불안감에 쌓여서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이상한 반복행동을 보이거나,
아니면 그 변화가 자신이 원인제공을 했다고 피해의식을 보이면서 자기를 뭘 잘못했는지 계속 물어보거나,
많은 경우에 과격적인 행동이나 언어로 행동을 해서, 그 상황에 적응 할 때까지
아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예를 들면 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 할 때,
학교 사정으로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바뀔 때,
계절이 바뀌어서 긴 소매에서 짧은 소매로 입을 때, (팔 다리가 노출 되는 것을 극히 꺼리기에)
타고 다니는 버스의 시간표와 노선이 변경이 되었을 때, (시내버스의 노선을 거의 다 외우고 다님)
방에 늘 있어야 할 곳에 그 물건이 없거나 위치가 바뀌었을 때,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고 절대로 버리기나 옮기면 안 된다)
아침마다 티비로 그날의 날씨를 꼭 체크하고 그에 따라서 옷도 신발도 챙겨 입고, 우산도 준비하곤 하는데
등교를 할 때는 날씨가 좋다가도 집에 올 때 미리 준비 해 가지 못한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고 올 때 (몸이 조금이라도 젖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지난 주처럼 서머타임이 시작하거나 끝났을 때 (몇주 전부터 시계를 바꾸어 놓으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주의를 한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식사 할 때 똑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패턴으로 먹기를 고집하는 등등
끝도 밑도 없이 매일 매일 이렇게 변화에 대처하기를 거부하면서
죽 해 왔던 루틴을 어떤 상황에 처해도 심지어는 몸이 아파도 한결같이 하기를 고집하면서 살고 있다.
나를 표함해서 타인이 보면 저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하지만 본인은 너무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료 편하고 내 눈엔 그런 아들이 행복해 보일 때도 있다.
만 여섯살이 되어서 말문이 열렸을 때에
아들과 우리는 마치 연극을 하는 배우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정상인들처럼 그저 남하는 걸 관찰하거나 따라만 해도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을 하지 못하기에
일어날 여러가지 상황을 미리 설정 해 두고 거기에 대한 반응을 각본을 쓰듯이 일일이 암기 위주로 해야만 했다.
누가 How are you? 라고 물으면 이렇게, How old are you? 라고 하면 이렇게..
( 처음에 여섯살이라고 주입을 시켰더니 몇년간 여섯살이고 대답하기도)
아무리 일어 날 상황 설정을 광범위하게 준비 해도 돌발적인 상황은 언제나 생겼고,
각본에 없는 말을 물어 오면 질문을 무시하거나, 질문 자체를 그저 똑같이 되풀이 하기에
기계적인 대화의 한계는 항상 따라 다니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 혹은 영어로 "I" 일인칭을 쓰는데 익숙치 못해서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I am tired" 라고 하기 보다는 늘 "Jeffrey is tired." 라고 했는데
이것도 요즘에 많이 나아진 부분 중에 하나다.
더 큰 애로 사항은 누가 물어 보면 대답을 하는 수동적인 대화는 어느 정도 연습과 복습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능동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상황에 맞추어서 먼저 대화를 initiate를 전혀 못하는데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사회성이 결여된 질문이 많이 차지하기에 아직도 이 장애는 숙제로 남아 있다.
어려서부터 성장하면서 제일 중요한 언어 학습 다음으로 시간과 정력을 기울인 것은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될 수 있는대로 혼자 할 수 있게 훈련을 시키는 일이었다.
간단하게 이를 정기적으로 잘 닦는 일부터, 세수, 목욕, 손톱깎기, 면도 등 personal hygiene 을 중점으로 우선 시도를 했고,
그리고, 간단한 제 방 청소나 세탁물 내놓기, 빨려지 옷을 개어서 정해진 서랍에 넣기, 등 자기 물건과 방을 챙기도록 훈련을 시켰다.
아들 자신을 돌 볼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간단한 집 안일을(chores)를 하나씩 주어졌다. 우편물, 쓰레기, 신문 을 들여오고 내 가고 시작해서
눈 치우기, 잔디 물주기 등이 하나씩 추가 되었다.
다른 정상적인 아이들과 별반 다를게 없이 어떤 일이든 처음 시킬 때는 일단 거부하고 반발을 하지만,
일단 자기 일이라고 스스로 판단이 서면 하늘이 두쪽이 나도 그 일을 해 놓는다.
바로 이 부분이 자폐아들의 소위 말하는 장애라고 말하는 Obssessive 행동이나 정해진 루틴을 고집하는행동들이
오히려 살아 가는데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직장에서나, 다니는 학교에서나, 혹은 이웃 중에
사람들은 자기 상황에 따라서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하면서 책임으로 회피하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을 그저 피하고 싶어서 핑게를 대면서 모면도 하고 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아들같은 자폐아들은
한번 주어진 일이면 그 장애 덕분에 옆도 안 보고, 쉬지도 않고, 좀 몸이 불편해도
그 일에 종교적일만큼 매달려서 나름대로 충실히 해 낸다. (가족 여행을 가도 직장때문에 집에 혼자 남기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또 하나의 장애라고 여기는 흑백사고 방식 덕분에 우리들에게 보이는 중간에 있는 여러가지 회색 스펙트럼이 존재하지 않기에
아들은 얼마 전까지 전혀 거짓말을 못해서 그동안 웃지 못할 여러 에피소드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서슴없이 담배는 몸에 나쁘니 담배를 끊으라는 둥, 몸이 뚱뚱한 사람을 보면 운동을 해서 살을 빼라는 등등...)
그동안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경험 한 탓인지 조금씩 거짓말이 늘어서 남들이 보면 이상할지 몰라도 우리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아마 이 녀석은 우리 정상인들보다 제일 먼저 천당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세상에는 우리 아들처럼 육체적으로 신체적으로 여러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장애에 짓눌려서 좌절하고 주저 앉기도 하고,
혹자는 그 장애를 이겨 낼 뿐 아니라 장애 자체를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승화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아무런 장애가 없이 태어나도, 나쁜 길로 빠지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제 구실을 못하면서 살기도 한다.
물론 자폐아들이 우리 정상인들처럼 살아 가는데는 많은 장애가 따르고, 독립적으로 살기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장애를 장애라고 여기고 원망과 좌절하기 보다는 그 장애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켜서 긍적인 시각으로 받아 들인다면
그 장애가 살아 가는데 큰 장애물로만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아침 꾀 부리지 않고 책임감 있게 눈을 치우고 열심히 일 하러 직장과 학교로 향한 아들을 통해서 또 다시 배운다.
요즘처럼 일등 위주의 사회에서
우리 아들을 포함한 많은 자폐인들이(장애인들도 포함해서)
소외받고 무시를 당하지만
정직하고,
순진하고,
책임감이 투철하고,
욕심이 없고,
작은 일에 절대 행복을 느끼는
이들의 장애가
과연 장애일까요?
아들이 오늘 아침에 어설프지만
자기가 맡은 일인
눈치우기를 스스로 해 놓고 나간 흔적이다......
music: Concertpiece No. 1 op. 13 by Mendelsshon
played by Sabine 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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