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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About me...Helen/헬렌의 정원에서

다시 활기를 찾은 정원에서...

by Helen of Troy 2010. 5. 26.

오늘 5월 24일 우리 집 정원에 핀 bleeding hearts

 

 

오늘 5월 24일은 캐나다의 공식 국경일빅토리아 데이 (Victoria Day )라서 연휴이다.

이 국경일은 5월 24일 전에 제일 가까운 월요일에 돌아 오는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정해졌지만

아무래도 캐나다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오래 되어서 원래의 의미는 많이 퇴색 되었고,

오히려 비공식적으로 여름의 시작을 알려 주는 신나는 첫 연휴로 더 각인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기다린다.

 

캐나다 내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주요 도시인 우리 동네는 비공식적인 여름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봄의 시작에 더 가깝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본다.

실제로 작년에 내가 포스팅한 글을 보니 눈발이 휘날리는 사진이 올려져 있고

올해도 역시 5월 4일에 10 cm 의 폭설을 한바탕 치루고 나서야 어렵사리 진정한 봄이 왔다.

작년 빅토리아 데이 날이 이렇게 고약한 날씨였다.

 

 봄의 첫 연휴인 이 때면 캐나다에서는 가족들이 세가지 형태로 이 연휴를 보내곤 한다.

첫째는 추운 겨울에서 겨우 야외에서 지내도 견딜만한 기후를 놓칠세라 많은 가족들이

RV, tent trailer 등을 몰거나 혹은 텐트를  이용해서  호수, 국립공원과 주립공원에 만들어진

여러 캠핑장으로 캠핑을 떠나서 즐기고,

둘째는 친척들 혹은 이웃사촌들,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마당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어서

식사를 함께 하면서 밤 늦게까지 놀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아침에 서리 올 확률이 거의 없어진 시기라서 공식적으로 연휴 내내 집집마다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들 마당에 나와서 씨도 뿌리고, 꽃과 나무도 심고, 잔디도 깎고, 잡초도 뽑고,

정원 가구들도 창고에서 꺼내서 깨끗히 닦아도 주고 준비해서 여름 내내 마당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정원과 집 주변을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면서 이 연휴를 보낸다.

 

처음 이 도시로 이사를 와서 길고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4월 초에 겨우내 내린 눈이 녹자 마자 개인 날만 되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서

꽃집이나 nursery 에 가면 필요 이상 욕심스럽게 채소 씨와 꽃모종을 잔뜩 사 들고 왔다.

그 당시는 출장이 잦은 직장일로 마당과는 담믈 쌓고 살 때라 당연히 정원일은 왕초보답게

4월 초부터 뒷마당에서 부산을 떠는 내게 옆집 이웃들이 여기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동부와 달리

이 도시는 한 여름이라도 서리가 오는 곳이니 적어도 5월 세째 주에 돌아 오는 빅토리아 데이까지는

사 들고 들어 온 꽃모종과 채소 모종들을 weatherizing (온실에서 키운 꽃 모종들이 바깥의 땅에

옮겨 심기 전에 적응을 시키는 과정으로 일기예보에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거나 서리가 올 기미가 보이면

실내로 들고 들어 왔다가 다시 내 놓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이다)을 충분히 시켜 준 다음에

 5월 첫연휴에 심으면 후회 안 할거라고 친절하게 수차에 걸쳐서 충고를 해 주었다.  

 

긴 겨울 뒤에 더디 찾아 온 봄 덕에 들뜬 기분에다가 나의 못 말리는 오기로

설마하는 생각에 며칠을 고생해서 모종들을 밭에 심기도 하고 크고 작은 화분에도 심어서

hanging basket로 걸리도 하고 집 앞과 뒤에 골고루 배치를 해 두었다.

이런 무식한 초보자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5월 초에 두세번에 걸쳐서 온 서리로 밭에 뿌린 씨를 제외하고는

모종들이 모조리 동사를 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혼자 몇번씩 다짐을 했건만

지루하리만치 길고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훈훈한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전 해의 실수를 깡그리 잊고 똑 같은 시행착오를 3-4년을 더 반복하고 그제서야 조금씩

기분이 휩쓸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이 동네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맞추어서 제대로 정원 일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어린 꽃과 나무 모종들만 새 땅에 잘 적응해서 뿌리를 내리고 풍성한 가지를 쳐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weatherizing 이 필요한 게 아니라

타지에서 이사 온 인간인 나도 똑같이 이곳의 날씨와 분위기, 배경에 적응해서 새 둥지를 틀고 제대로 사 수 있게

weatherizing 과정을 겪은 후에나 가능했던 것 같다.

복잡하고 예측불허의 인간관계의 사회에 힘겹게 살면서

뿌린대로 거둔다는 정직함,

노동의 댓가를 깨우쳐 주는 즐거움,

때가 되면 자연의 순리대로 이루어진다는 지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내와 겸손을 내게 일깨워 주는

소중한 흙을 고마워 하면서 매일 손톱 사이가 시꺼멓도록 흙과 노는 시간이 즐겁다.

                                

                                                                    

지난 주 초는 이 동네답지 않게 무척이나 무덥더니

5월 18일에는 32도까지 올라 가서

우리동네의 5월 18일 최고 기온 기록을 깨기까지 했다.

그때까지 미루고만 있던 정원 일을 더 미룰 수가 없어서

눈 딱 감고 심호흡을 깊게 한 다음에

작년에 받아 놓았던 씨앗을 냉동고에서 주섬주섬 꺼 내고,

또 새로 오다 가다 사다 둔 채소 씨를

다 꺼내 놓았다.

발아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물에 적인 paper towel에 하루 밤동안

일단 불려 놓았다.

 

 

 

 

작년에 받아 둔 열무씨와 쑥갓씨...                                 그리고 새로 사 들인 토마토, 빨간 피망, 파슬리, 실파 씨들..

 

 

6가지 종류의 상추씨와 강낭콩씨.......                                    그리고 지난 번 한국여행에서 밀반입한 소중한 근대와 깻잎 씨...

 

 

시금치, 이태리 토마토, 딜(Dil herb), 적상추 씨도...                        화분과 밭에 쓸 흙과 퇴비도 창고에서 꺼내 두고..

 

하루 밤 사이에 불린 씨들을 손바닥만한 텃밭에 뿌리고..

텃밭 뒷쪽에는 다년생인 파와 부추가 제법 자라서 부추전과 빈대떡을 몇번 부쳐 먹기도..

 

며칠 사이에 벌써 bleeding hearts 나무에 많은 하트가 주렁주렁 달려서 신기하고 즐겁다.

 

몬트리올 여행을 다녀 오자마자 사 들인 여러가지 꽃모종들이

밖에서 날씨 적응을 하고 있다.  나도 더 이상 속지 않는다.

 

 

 화분에도 이렇게 여러가지 채소와 허브 씨를 심었다. 

일일이 마당에 나오지 않고, 집 안에서 쉽게 거두어서 먹기에도 편하기도 하고

여린 싹이 난 후에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어도 안성마춤이다.

며칠 내내 비가 온 후라거 잔디도 제법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현관 앞에 의자와 테이블도 닦아서 내 놓았다.  바로 오른편에 있는 작은 시내와 폭포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지나가는 이웃들과 수다를 떠는 장소를 제공 해 준다. 

재작년에 심었던 에쁘고 커다란 꽃을 피우던 수국나무가 죽어서 그 자리에 새로 라일락을 심어 보았다. 

벌써부터 라일락 향기가 기다려 진다.  

 

  

집안에서 빈둥거리던 막내와 남편도 옷을 갈아 입고 윗층 아래층 베란다를 pressure washer로

뿜어내는 시원하고 세찬 물줄기로 일년 내내 쌓인 먼지를 청소를 거들어 준다. 

산뜻하고 깨끗하게 정돈 된 베란다에서 매일 나와서 식사를 해도 될 듯 싶다.

 

청소를 마치고 겨우 내 동면에서 깨어나서 다시 졸졸 흐르는 앞마당 시냇물 소리가 마냥 듣기가 좋다.

 

앞에 보이는 나무도 겨울을 못 넘기고 동사한 나무를 뽑고 새로 심은 노르웨이 단품나무(Norway Maple)다.

부디 추위와 변덕스런 날씨를 잘 견디어 내고 우람한 단풍나무로 굳건하게 버티어 주길 기도하는 맘으로 심었다.

최고 온도의 기록을 깨자마자 영도에 가깝게 추워지고 우중중하던 날씨가

연휴의 마지막 날인 월요일이 되서야 눈부시도록 밝은 봄 햇살과 파란 하늘, 그리고 솜털같은 구름이

우리집 마당에 그득하게 채워 주면서 자연의 거대한 힘으로 정원의 생명체들에게

생명의 신비를 불어 넣어 주고 있다.

 

 

 

 

 

 

music: Samambaia played by yo-yo ma

from helen's cd 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