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 온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창 밖을 보니
짙은 회색의 하늘을 배경으로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다.
첫 눈이 밤새 왔다.
우선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첫눈은
그저 반갑고 아름다웠다.
첫눈에 아직도 설레이는 가슴에
메마르지 않은 감성이 남아 있음에도 고맙다.
기온이 0도를 오가서 일부는 벌써 눈이 녹고 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들 축축 늘어져 있다.
창 밖의 내리는 눈과 추위로 한 시절을 풍요롭게 한 꽃들은 서서히 지는 반면에
집안에는 여행 떠나기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christmas cactus에 돋아나고 있는 수백개의 꽃봉오리가 솟아나고..
마치 솜털같아서 보듬어 주고 싶다.
작년에 심은 나무에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로빈의 새둥지가 지붕이 없어서 괜히 추워 보인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산책로를 두고 친한 이웃집에 나란히 심겨진 나무에는 여전히 노란 단풍이 힘겹게 남아 있다.
이렇게 눈이 갑자기 와서 이번 일요일에 다가 올 할로윈 준비 할 엄두가 안난다.
대문 앞에 죽 놓여진 화분에 여름내내 쉬지않고 피우던 꽃들은 이제 눈꽃으로...
눈과 얼음 크리스탈로 곱게 단장한 키다리 가을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참동안 들여다 보았다.
사진도 참 맘에 든다.
눈이 와도 꿋꿋하게 진홍색의 꽃이 아름답기도 하고 어쩐지 처절하다.
보라빛의 페투니아도 동장군의 위력에 당당히 맞서고 있지만 며칠 못 버틸 것 같아서 안스럽다.
아쉽게도 동장군님이 드디어 우리 동네에 도착과 함께 그 위력에 눌려서
한해동안 아름다운 자태로 정원을 곱게 꾸며 주던 꽃나무들의 겨울준비를 해야 하고,
그리고 6일 후로 다가온 할로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일단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고,
주말엔 활동하는 찹창단의 이번 시즌의 첫공연이 있어서
영 엄두가 나지 않아서
며칠 더 뭉게다가 아이들 등쌀에 떠 밀려서
막판에 번개불에 콩구어 먹듯이 후다닥 해야 할 듯하다.
하얗게
내린 첫눈이
흙으로 더럽히지도 말고,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지도 않고,
세상의 때를 입지 안은 채
고히
녹아 내리면
참
좋겠다.
music: Largo, Winter from the four seasons by antonio vivaldi
Amsterdam Guitar quartet
from helen's cd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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