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덮인 집 뒤에 있는 숲...
지난 일주일 내내 갑자기 기온이 영하 15-20도롤 떨어지고
눈도 연일 뿌려리고, 하늘도 잔뜩 찌푸렸다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랜만에 파란 하늘에 환하게 떠 오르는 해만 봐도
기분이 상쾌해져서 날씨도 따라서 풀린 줄 알고 가벼운 맘으로
매일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그날의 뉴스, 동네 정보, 교통 상황과 날씨 등을 알리는 아침 방송을 보려고 티비를 켰다.
날씨를 알리는 아저씨가 오늘 아침의 온도는 영하 28도일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어서 실제 체감 온도는 영하 38도로
꼭 나갈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하고,
나가더라도 따뜻하게 껴 입고 집을 나서라고 당부를 했다.
나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세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잘 껴 입고 나가라고 주의를 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오케이 맘" 이라고 하면서 고개를 꺼덕거리더니만
정작 각기 다른 시간에 등교를 하는 세아이 다
영하 15도였던 지난 주나, 영하 20도였던 어제와 똑같은 복장으로
대문을 나서는 것이 아닌가...
얼어 죽을거라고 협박조로 뒤통수에 대고 외쳤더니
"Relax, mom.... it's not that bad out here, Bye~~",라면서
뒤도 안 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마도 나가는 길에 눈 좀 치우고 가라고 할까봐 지레 내뺐으리라..
나 역시 체감 온도가 영하 37도라고 티비에서 경고를 하건 말건
오늘 중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러 차에 시동을 평소보다 점 오래 켜 둔 후에
슬슬 눈에 덮인 동네 길을 빠져 나가서 우선:
어제 집 앞과 driveway and sidewalk에 쌓인 눈을 30분간 치우고,
9시 반에 브런치 약속 장소로 가서 브런치를 먹고,
수퍼 마켓에 가서 일주일 먹을 장을 보고,
한국 수퍼 마켓에 가서 고구마, 팥, 무, 두부, 당면, 오뎅, 배추등을 사러 갔고,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도 가득 채우고,
은행에 가서 수표정리를 했고,
도서실에 가서 빌린 책을 반납도 하고,
크리스마스를 대비해서 미리 예약 해 둔 책들을 가져 왔고,
hardware store에 가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 가지고서야
겨우 집에 들어 돌아 올수 있었다.
그리고 일을 마친 후에,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있는 합창연습에도 다녀 왔다.
들어 오면서 집 밖의 온도계를 다시 한번 보니
수은주가 여전히 짜리몽땅하게 영하 23도에 머물러 있다.
사진을 몇장 찍으려고 잠시 히터를 켜 두고 차를 세워 두었더니 내린 눈이 녹아 내린 창으로 통해서 보이는 설경...
정말 재미나고 신기한 점은,
일을 마치고 2시 반쯤 집에 올때는 영하 18도였는데,
아침에 집을 나설 때보다 10도가 올라 가서인지
춥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푸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견딜만하게 춥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 처음으로 영하 15도로 떨어졌을 때는,
평소에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서정말로 온 몸이 으시시 떨리고,
하고 많은 도시 중에서 하필 이런 동토에서 살고 있는 나의 팔자타령까지 늘어 놓으면서
한참동안 적응이 힘들더니,
며칠간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씨를 며칠 겪고 나니
분명 며칠 전과 똑같은 영하 17도가 신기하게도 편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5시간동안 여러 곳을 다녀 간 곳마다
혹한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와 똑같이 바쁘게 돌아 가고 있었다.
오히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까워져서인지 주차장과 거리는 더 붐비고 있었다.
참고로, 워낙 이 동네가 추워서 차를 살 때 이미 차에 block heater라는걸 장착을 해서
주차장에 차마다 전기 코드를 꼽을 수 있는 전원시설에 연결을 해서 주차를 해 두면
혹한에도 한참 볼 일을 본 후에도 시동이 원활하게 다시 걸리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눈이 내린 길에 조금은 천천히 주위의 설경을 즐기면서 운전을 하면서...
고로,
캐나다의 광활한 대평원의 매섭고 아린 추위도 (아마도 불볕 더위도 그러리라...)
결코 모든 사람들에게 온도라는 오차가 없는 숫자대로 절대적이기 보다는 상대적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온도뿐만 아니라 거리에도 이 상대성이 적용되어서
워낙 큰 땅덩어리에 넓직넓직하게 살아서 그런지
한국같으면 한쪽 끝에서 다른 끝에 해당하는 거리에 해당하는
400 km 이내에 거리나 운전해서 4시간 정도 거리는 옆집 드나들다시피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고 쉽게 자주 다녀 온다.
실제로 우리 부부는 얼마 전에 집에서 800km 이상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Regina 라는 도시에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운전을 해서 당일치기로 다녀 오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비록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북극에서 적도, 그리고 거기서 남극까지,
대평원에서 높은 고산지대까지, 사막에서 열대에 걸쳐서 천차만별의강우량과
다양한 기후와 어느 악조건 속에서도
슬기롭고 현명하게 적응하고 대처해서 수만년을 살아 왔기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이 걸맞는지도 모르겠다.
내일 하루 더 이렇게 춥고 모레부터 날씨가 서서히 풀려서
급기야는 목요일 최고 기온이영하 2도까지 올라 간다고 예보를 하고 있으니
적응의 달인이자 간사하기 짝이 없고 습관의 동물인 우리는
아마도 그때가 되면 봄날처럼 따뜻하게 여겨져서 우리 집 아이들을 포함해서
외투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나가 돌아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많이 만날 것 같다.
music: Winter, Allegro non Motto by vivaldi
played by amsterdam guitar quartet
from helen's cd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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