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파꼿.... 그리고 풍성하게 자라는 푸성귀 (우리집 텃밭에서)
오늘 저녁과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함께 하려고 우리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우리집은 손님초대를 해도 흔히 생각하듯이 가짓수도 많고 뭔가 거창한 메뉴의 음식이 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난번 유럽여행 떠나는 날에 부라부랴 텃밭에서 엄청난 양의 열무를 우직스럽게 몽땅 뽑아 들여서
대충 담아 놓은 열무김치를 송송 썰어서 갖은 양념을 해서
보리밥에 얹여서 참기름과 양념고추장에 비벼 먹는 열무김치 보리밥과
2년 전에 담아서 잘 익은 된장으로 마른 새우를 넣고 배추국을 저녁 메뉴로 정했습니다.
하얀 샛별같은 부추꽃도 제법 자태가 아릅답다.
여름 내내 여행을 다니느라 한달 이상 집을 비운데다가, 요즘 계속 내리는 비로 모기떼의 극성으로
5분 이상 밖에 있으면 여지없이 모기떼들의 기세에 필요한 채소만 얼른 뜯고나서 얼른 집 안으로 쫓겨들어오다시피 하느라
텃밭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로 방치를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오실 한분은 우리집에 오시면 으례히 아삭아삭하고 쌉싸름한 유채김치를 찾으시기에
어제 수퍼에서 사 온 유채를 소금에 재려두고, 오늘 담으려고 김치에 필요한 파를 뜯으러 뒷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노란 토마토 꽃도 열매를 맺을 채비를 하고 있고...
꽃이 떨어진 곳마다 주렁주렁 토마토가 달리고...
매년 여름에 비록 우리가 여행 중에 주인이 집에 없더라도 이웃 가족들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살라드에 필요한 채소를 뜯어 가라고 일러 두고 떠나곤 합니다.
단 뜯어 가실 때마다 채소밭에 물을 준다는 조건으로....
그래도 우리 가족이 소화할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채소들이(잡초들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텃밭운
예년에 비해서 상태가 그리 양화하지 못한 방치모드 중에 있다가
극성스럽게 떼거지로 달려드는 모기들의 위세도 한풀 꺾여서 느긋한 맘으로 밭에 나갔습니다.
내년에 심을 씨를 받기 위해서 남겨 둔 열무에도 보랏빛 꽃이 철이 좀 지났는데도 여지껏 피우고...
별 생각없이 단지 유채 겉절이 김치를 담으려고 파 몇뿌리를 뜯어러 나갔다가
그동안 방치된 파는 무성하다 못해서 한치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손바닥만한 정원에 그득하게 자라고 있는
그 많은 파를 보는 순간,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재빠르게 맨 손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뿌리 위로 3-4cm 위부터 한단씩 뜯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커다란 광주리에 가득 담을만큼 많이 뽑고야 말았습니다.
한달간 여행을 다녀온 동안 이렇게 온통 노란꽃으로 손바닥 텃밭 한쪽을 염치없게도 독차지하고 있는 쑥갓꽃...
그래도 여느 꽃에 뒤지지않고 자태가 곱기만 하다.
그래도 전체 파의 2/3 가 밭에 남았는데도 도저히 다리가 저려서 참기 어려워져서야 파뽑기를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계획에도 없었던 파뽑기와 잡초뽑기를 생각보다 길게 1시간동안 쭈그리고 앉아서 오후 1시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파와 잡초를 뜯느라 굽힌
허리를 펴고 일어섰더니 온 몸이 뻐근거리고, 땀으로 옷들이 젖어서 끈적거리고 갑자기 찬물이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파꽃이 은근히 이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향기도 은은하다...
일단 수북하게 뜯은 파를 그늘로 옮겨 놓고, 쥐까지 난 다리를 쉬게 할 겸 의자에 앉아서 찬물을 들이키면서
대책없이 뽑은 이 파들을 어떻게 처분을 할까 무거운 맘으로 고민을 하다가 무심코 밭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의 잡초수준으로 백송이 이상 꽃을 피운 노란 쑥갓꽃들,
거기에 질세라 더 빽빽하게 아욱꽃도 만발 해서 잡초수준으로 버티고 있고,
오래 전에 꽃 필 시간도 지나는데도 늦게 핀 열무꽃,
그리고 하얀 부추꽃과 보랏빛 파꽃으로 가득 덮인 텃밭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장미나 수국처럼 꽃을 피우려고 특별히 따로키우는 꽃나무들이 아니어서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꽃들이
오늘 문득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물어뜯길까 피하기에 급급했던 수십마리의 벌, 나비 그리고 파리까지도....
땡볕에 뽑아 놓은 실파들...
아예 정원에서 깨끗이 다듬고 씻어서...
그리고 그동안 15년 가까이 텃밭을 일구면서 채소들의 꽃들은 씨를 받아서 그 다음해에 뿌리는 실용적인 생각으로만 여겨지던
수수하고 소박한 꽃들을 오랜만에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많이 핀 파꽃들 중에 한송이를 코 가까이 대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파꽃에서 여느 화려한 꽃과 똑같이 좋은 향기가 코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작은 충격과 함께 잠시나마 혼란스러웠습니다.
지난 주에 약 1000장을 따다가 깻잎 장아찌를 담았는데도 아직 많이 달려있는 깻잎채소들...
깻잎 꽃이 피기 전에 벌써 9월이면 아침에 서리가 내려서 안타깝게도 유일하게 꽃구경도 못하고 물론 씨도 받지 못해서 어디선가 새로 씨를 구해야 한다.
야들야들한 로메인 (romaine lettuce) 상치도 싱싱하다..
그래서 잠시 파꽃을 코에 들이댄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뭔가 미진해서 그 옆에 핀 다른 파꽃도 냄새를 맡아 보기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다 은은한 향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보랏빛 파꽃 옆에서는 서울에서 공수해 온 뚝섬적상치도 있고...
미리 심어 둔 상치 한그루가 저 소박한 씨를 피우려고 거의 일미터 크기로 자랐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왜 이때까지 파꽃은 줄기만이 아니라 꽃에서도 파냄새가 풍길 것 같고,
마늘꽃은 마늘, 그리고 부추꽃은 부추냄새가
그들의 꽃에 배어 있다는 나의 선입견을 얼마나 모순적이고 그릇된 발상인지....
텃밭 오른편에는 맛난 열매들이 주렁주렁 ..
블루베리 꽃은 꽃도 블루...
요즘 2-3일마다 이녀석들을 한 사발씩 따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한주먹을 따서 입에 넣고....
6월 중순부터 따 먹기 시작해서 여직 열매를 선사해 주는 레스베리....
지난 주에는 한사발 따다가 스콘(scones)의 재료로 쓰였다.
아무리 우리가 먹는 채소의 줄기가, 뿌리가, 이파리가 고약한 냄새를 (그것도 우리 인간들에게만...) 풍긴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귀한 씨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고운 자태와 향기가 배인 꽃들로 나비와 벌들을 유인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꽃나무든지, 채소든지, 보잘것 없는 야생화까지도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의 결정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마당에 잘 나오지 않은 사이에 데이지도 피고,
이름을 잊어버린 이 노란녀석들도 반겨주고,
담옆에는 작년에 groundhog 때문에 뿌리 피해가 심했는데도 이렇게 환하게 피어서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한다.
뭐니뭐니해도 정열적인 붉은 장미가 정원에서 강렬한 포스로 눈을 사로 잡는다.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살아 오면서 이처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쌓인 선입견으로
생각의 시야가 흐려지기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많은 갈등과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큰 요인이 됨을 많이 경험합니다.
나 역시 한 사람을 대할 때에 그저 겉으로 들어난 부분만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속단해 버리는 실수를 종종 범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 봅니다.
그리고 나,만 우리 가족만 괜찮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어도 어떠랴하는 얄퍅한 이기적인 발상도 자제를 해야겠습니다.
이제 한 광주리가 넘치는 저 파로 파김치나 만들러 갑니다.
남는 파로 파절이나 푸짐하게 해서 삼겹살을 구우면 어때? 옆에서 은근히 부추기는데...
해물 파전도 좋아 엄마... 라고 한술 더 뜬다.
파가 많으니 해 먹을 것이 많으니 좋기는 좋다....
music: peel me a grape sung by diana krall
from helen's cd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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