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온난화 현상 덕분인지 미국에서 동부에서 살다가 20년 전에 이곳 동토의 나라에 왔을 때보다
점점 겨울이 늦게 찾아 오고, 기온도 영하 30도를 내려가는 일도 줄어 들고 있는 추세여서
길고 혹독한 겨울이 조금은 덜 두렵고 견딜만하다.
그리고 티비나 신문을 통해서 거의 매일처럼 세계 각국에서 홍수, 지진, 쑤나미, 회오리 바람, 눈사태, 산사태 등으로
막대한 재산과 인명피해를 필요 이상 자세하게 통보를 해 주는 것을 바라보면서
단지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춥다는 외에는 자연 재해 걱정이 거의 없는 우리 동네가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으로 점점 바뀌어 가고 있기도 하다.
오늘 아침 영하 10도로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 드디어 겨울이 정식으로 우리에게 올해 첫 방문 인사를 건네 왔다.
예년보다 서리나 눈이 오기 전에 정원 겨울준비를 일찌감치 끝내 놓아서
다소 느긋하게 겨울녀석을 맞이 하는 여유까지 생긴다.
지난 주말 다소 푸근한 날씨라서 마지막으로 겨울 준비를 끝낸 후에
정원에서 봄부터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여러 녀석들과 작별인사를 할 겸
카메라에 몇장 담아 보았다.
이날 따라 유난히 햇빛이 더 눈이 부시고 하늘은 청명했다.
앞마당에 초여름부터 어제까지도 이렇게 정열적인 붉은 장미가 피고 져서 지나가는 이웃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아침에 가 보니
여전히 붉은 빛을 잃지 않은 채 고고하게 자리르 지키고 있다.
shrub 도 초록에서 붉은 빛으로 가는 과정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자체가 아름답다.
이 장미 송이는 겨울이 코 앞에 다가 온지도 모르게 이렇게 수줍게 피어 날 태세인데....
피다 만 장미가 더 안스럽고 아름다운가 보다.
이렇게 활짝 핀 장미를 보면 겨울은 먼 다른 나라 얘기 같았는데...
봄과 여름에 싱그러운 초록빛보다 왠지 더 완숙미가 돋보여서 이모 저모 뜯어 보게 만든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꽃잎이 다 떨어졌지만 그 수고한 댓가로 귀중한 씨를 얻은 이 녀석도 책임완수를 한 엄마같아서 대단해 보인다.
재작년에 심은 나무가 노란 자태를 뽐내면서 이제는 자리를 잡고 제법 나무다운 자태가 보인다.
야생 그라스도 나름 가을 바람에 일렁거려서 운치가 느껴진다.
비록 릴리의 이파리는 누렇게 떠 가지만 봄부터 이제까지 쉬지 않고 커다란 꽃망울을 선사하더니 의리있게 겨울 직전까지 반겨 준다.
진분홍의 이 장미는 꽃송이는 비록 작고 소박하지만 향기 하나는 그만이어서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코를 즐겁게 해 준다.
이 녀석도 오늘 아침에 그래도 얼어 붙어 버렸다. 그 진한 향기도 함께....
제 할 일을 다 마치고도 꿋꿋하게 고고하게 버티고 있다.
작년까지도 미미하게 꽃을 피워서 그냥 무심코 지나친 녀석인데 올해는 가을의 여왕처럼 이렇게 활짝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이렇게 지켜 봐 주고 인내하고 기다려 주면 스스로 알아서 잘 피워주는 꽃들에게 오늘도 한 수 배운다.
이렇게 꽃송이가 내 주먹보다도 훨씬 크게 피워 줄지 상상도 못해서 그런지 내가 언제 이 녀석을 심었던가 긴가민가하기까지 하지만 그냥 바라만 봐도 미소를 짓게 한다.
가을이 되야만이 피는 이 꺽다리 녀석답게 가을 내내 2 미터 이상 되는 키를 자랑하면서 하늘을 향해서 가을을 느끼게 해 준다.
봄에만 핀다고 기정사실로 믿고 있는 나의 편견을 깨고 매년 이렇게 늦게까지 지들끼라 옹기종기 사잉좋게 피워 주는 팬지 녀석들...
마치 웃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인사를 해 주고 싶어진다.
보라와 파란색이 적당히 잘 조화된 팬지와 붉은 단품으로 변한 아이비 녀석들이 사이좋게 얼켜 있다.
아름다리 늘어진 녀석들도 평범하지만 돌층계를 한층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팬지와 마찬가지로 봄부터 여태까지 내가 좋아하는 보랏빛으로 초록과 대비를 이루면서 머리를 디밀고 있다.
한 나무에 적어도 100개 이상의 꽃을 피우는 이 탐스러운 녀석들은 거의 다 져서 겨우 10송이만 남았다.
작년에 근처에 서식하는 많은 야생토끼들이 제일 좋아하는지 손가락만큼 줄기만 겨우 남겨서 (그리고 엄청난 토끼x 과 함께)
올해는 그런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이 사진을 찍은 후에 미리 깨끗하게 잘라 주었다.
지나가다도 또 눈길이 가서 다시 찰칵~~
겨울 준비를 제대로 하려면 이 녀석도 잘라 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꽃까지 왕성하게 피어서 차마 그러지 못하고 들어 왔는데 어떻게 첫추위에 대응하고 있을까...
내가 좋아해서 구석 구석에 심은 라벤더도 아직 은은한 향기를 안겨다 준다.
눈부신 가을햇살에 더 영롱하다.
한여름에 왕성했던 때를 회상하면서 나도 이 녀석처럼 연륜이 배인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
이번에 보니 오랫동안 꿋꿋이 버티고 핀 꽃들이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보랏빛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여름엔 꿀벌들의 인기가 제일 좋아서 늘 붕붕 거리는 이따만한 벌들이 이꽃 주위를 점령해서 멀찌감치 물러서서 바라만 보던 녀석들을
오랜만에 코 앞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다.
이렇게 붉게 변모한 녀석들 때문에 여름 정원보다 더 풍성해 보이나 보다.
이것도 보라빛이네...
안개꽃 같이 소박하게 피는 녀석들도 여전히 조용히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록 커다란 이파리가 누렇게 주글거리고 떠서 말라 비틀어져도 라벤다 꽃은 가을의 끝자락을 꼭 부여 잡고 있다.
서랍장에라도 넣어 두려고 말라 버린 씨들을 하나씩 훌터서 모아 두었다.
수북히 깔린 낙엽 위에서 핀 장미가 왠지 애잔하다.
며칠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같아서...
노란 낙엽과 붉은 나무도 곧 그 빛을 잃을 걸 생각하니 셔터를 누르는 나도 괜히 비장한 맘이 든다.
정원 구석 흙바닥에 낙엽 사이에 자세히 보니 생뚱맞기는 하지만 반갑기는 매한가지인 패랭이 녀석이 빼꼼히 쳐다 보고 있다.
늦은 봄에 연하디 연한 순에서, 꽃망울을 거쳐서
화려한 꽃을 피우면서
씨를 탄생시켜서 종족번식의 책임을 완수한 대견한 녀석들과
이렇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뿌리고 가꾸고, 주인의 손길따라서 정직하게 자라주고, 피워 주어서 노동과 땀의 가치를 알려 주고,
수고한 우리 가족만 아니라 오가는 행인들에게까지 기쁨과 행복을 안겨다 주고,
잦은 여행으로 집을 비워서 잘 못 챙겨 주었는데도 여전히 강한 생명력과 끈기로
자연의 법칙과 순리대로 제각기 생긴대로 제 때에 묵묵히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워 준 친구들아,
장애 아들을 키우며서 힘들고 지치고 낙심한 나를 항상 일으켜 세우고 주고, 인내와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친구들아,
한동안 못 봐서 서운하고 그립겠지만
동토의 나라의 혹독한 추위에 늘 그래왔듯이 높이 쌓인 눈을 두툼한 이불로 삼아서
깊은 동면과 필요한 휴식을 충분히 취한 뒤에
내년 봄에 다시 반갑게 만나자꾸나....
요즘 가사가 구구절절 참 맘에 와 닿아서 하루에도 몇번씩 부르곤 하는 모짜르트의 Abendempfindung 노래를 자장가삼아 불러 주마.
잘 쉬거라...
Abendempfindung(Evening Sensation) by Mozart (K523) lyrics by Joachim Heinrich Campe
1. Abend ist's, die Sonne ist verschwunden, 2. Bald entflieht des Lebens bunte Szene,
6. Weih mir eine Träne, und 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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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vening it is; the sun has vanished, the west wind - and p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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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Abendempfindung by Mozart
sung by Susie Leblanc
from helen's cd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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