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오후 1시쯤 눈을 두번째 치우다가 잠시 쉬면서...
봄의 첫날인 춘분과 함께 날이 풀려서 겨우내내 쌓였던 눈들이 녹기 시작하더니
4개월 이상 눈으로 덮여있던 뒷마당 군데군데의 흙과 잔디밭도 보여서
올해 텃밭에 어떤 채소와 과일을 심어 볼까 잠시 행복한 고민에 잠시 빠졌다.
하지만 나의 야무진 꿈에서 깨라고 비웃기나 하듯이
동토의 나라 울동네에는 꽃소식은 커녕 이번 주에 벌써 두번째 눈이 탐스럽게 내려서
꽃삽으로 텃밭의 흙을 고르기는 커녕 커다란 눈 치우는 삽을 대신 두 손에 꽉 쥐고
집 앞 드라이브 웨이와 보도길에 쌓인 눈을 치워야 했다.
이 지역에 내리는 눈은 건조한 내륙지방 덕분에 수분이 낮은 눈인데
이번에 내린 눈은 수분이 많은지 내린 양에 비해서
삽에 실린 눈의 무게가 평소보다 엄청 무거워서 더 내 신경을 자극한다.
집 앞의 눈을 반 정도 치우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이왕 치워야 할 눈이라면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기로 했다.
특히 요 며칠간 아침뉴스의 많은 시간을 22일에 발생한 산사태 뉴스를 접하자,
우선 이렇게 눈을 치우는 일이 힘들고 귀찮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세상만사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사람의 불행도 절대적이기 보다는
늘 상대적인 요소가 다분하기에 봄이 되어도
여전히 눈을 치우는 일이 다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를 한번 짚어 보니...
지난 3년간 대문 앞의 라일락 나무에 둥지로 사용된 로빈의 둥지에도 하얀 눈이 덮혔다.
1. 나는 이렇게 눈을 치울 수 있는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
2. 나는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하는 안락한 내 집이 있다.
3. 추운 겨울에 몸놀림을 사리던 내게 좋은 운동거리를 제공해 준다.
4. 집집마다 눈을 치우려고 나온 이웃들과 오랜만에 반갑게 근황을 주고 받게 해 준다.
실제 둥지의 크기는 손바닥만할 정도로 작지만
매해 최소한 두개의 알이 부화가 되는 대단하고 고마운 새의 집터이다.
5. 올해 미국과 캐나다의 동부에 많이 내린 수분이 많은 눈처럼 무거워서
고압선들이 끊기거나 지붕이 내려앉거나, 전기공급이 며칠씩 중단이 되어서
추운 겨울에 난방도 안되어서 추위에 떨면서 간단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염려가 없는
수분이 아주 낮은 밀가루같이 풀풀 날리는 가벼운 눈이 우리 동네에 내려서
눈을 치우기도 편하고 오랫동안 눈이 많이 쌓여도 단전이나 건물피해가 아주 낮다.
6. 퍼붓는 빗물처럼 빨리 흘러가 버리기보다는 이렇게 5개월간 높게 쌓인 눈이
조금씩 서서히 녹으면서 지하수나 저수지 혹은 늪으로 흘러가서 저장이 되었다가
농사철 기간 내내 필요한 물공급을 원활하게 해 준다.
7. 긴 겨울이 징하게 춥기는 해도, 방대한 천연가스와 오일샌드 산지 옆에서 살아서
다른 지역에 비해서 난방비와 전기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8. 요즘 자주 뉴스에 미세먼지나 스모그로 더러워진 공기속에 늘 지내야하는 것보다는
조금 춥기는 해도 일년내내 상큼하고 맑은 공기를 들이 마시면서 산다.
9. 기후는 온난하지만 겨울 내내 잔뜩 찌푸린 날에 비가 늘 오락가락해서
환한 햇볕을 못 보고 살아서 우울증 환자와 자살률이 높은 밴쿠버나 씨애틀에 비해서
기온 자체는 엄청 낮지만, 80% 눈부시게 환하고 고마운 햇볕이 늘 함게 한다.
10. 며칠 전에 울동네에 인접한 미국의 시애틀 근교인 오소(Oso)에서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발생한 (기온이 낮은 울 동네엔 대신 눈이 내렸고)
산사태로 현재까지 20여명이 사망하고 90여명이 행방불명(사망예상)된 사건과 달리
큰 인명피해나 재산피해없이 편한 시간에 삽만 있으면 쉽게 눈을 치우면 그만이다.
산사태 피해 현장
3월 22일 미국 워싱톤 주의 작은 마을인 오소(Oso)에서
며칠간 계속 내린 비로 산 한쪽이 무너져 내려서
거대한 산사태가 발생해서 오늘 현재까지 20명의 사망확인되었고
아직도 70여명이 행방불명 상태이지만 생존가능성은 희박하다.
(Handout/EPA)
An
산사태 전(외편) 과 후(오른편)
Photograph: Ted S Warren/AP
집 한채가 산사태로 성냥갑처럼 구겨지듯이 파손되었다.
Photograph: Ted S Warren/AP
구조대원들이 한구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Photograph: Joshua Trujillo/AP
한 구조대원이 헬리콥터에서 피해지역으로 다가가고 있다. (오른편)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뒤에는 우거진 아름다운 숲이 있고,
앞에는 탁 트인 전망이 있고,
아래는 구비구비 흐르는 강이 있어서
운수대통할 명당자리이겠지만,
인간의 욕심과 자연생태를 파괴하는 오만으로
이러한 사고를 초래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Photograph: Joshua Trujillo/AP
산사태로 530번 고속도로가 막힌 곳에 구조차가 멈추어 서 있다.
Photograph: Lindsay Wasson/Reuters
집 앞의 눈을 다 치우고 나서...
졸졸 흐르는 물과 꽃나무가 있는 5월의 앞마당을
기다려 봅니다...
지금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지만
4월 말부터 졸졸 흐르는 물 덕분에 온갖 새들의 놀이터가 되고,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맘을 정화시켜준다.
위의 새둥지가 있는 라일락 나무...
Abendempfindung by Mozart
sung by suzie labl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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