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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Books

닥터 지바고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by Helen of Troy 2014. 4. 9.

 

오마 샤리프와 쥴리 크리스티가 영화 닥터 지바고 촬영 중에...

Photo: Sharok Hatami/Rex Features

 

 

 

오늘 아침 신문을 읽으면서 재미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닥터 지바고'의 원작이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배경에 관한 기사였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소설이고

감명깊게 본 영화여서 관심있게 읽어 내려갔다.

 

전형적인 냉전시대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첩보이야기처럼

서스펜스와 위험과 비밀이 가득한 이 배경 이야기는

당시 소련의 모스크바에 소재한 영국정보부가 두개의 마이크로필름을

랭리에 있는 CIA 의 본사로 1958년 1월에 비밀리에 보내지면서 시작되었다.

 

이 마이크로필름은 냉전 당시에 소련과 서방이 경쟁하듯이 군사력을 키우고 있을 때에

서로 상대방의 최신의 무기나 군사정보가 아니라

군사력과 무기보다 더 큰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데올로기 싸움에

우열을 가리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 필름에는 러시아의 문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걸작품인 닥터 지바고 소설이

원어인 러시아어로 쓰여진 완결판 내용이 담겨 있었다

 

 

냉전시대가 한창이던 50년대 말에 CIA가 비밀리에 인쇄한 러시아어 완판 책

책의 앞장과 책의 옆면(binding)을 러시아어로 쓰여졌고,

뒷장엔 책이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고 쓰여져 있다.

 

 

 

거의 60년간 기밀서류 등급이었다가 얼마 전에 해제가 된 영국 정보국의 메모에 따르면,

소련정부가 이미 파트테르나크에게 소설 안에서 소련에게 불리한 내용을 삭제 내지는 수정하라고

압력을 가하자 소설이 변질되거나, 소련정부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

이런 정보를 빼 돌렸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CIA는 은밀하게 우선 소련 내에서는 이미 출판이 금지 된

'닥터 지바고' 의 러시아 원어판을 최대한으로 많이 찍어서

능한한 많은 수의 러시아인들에게 보급해서,

공산주의 사상을 비난하는 정치적인 싸움을 벌이는 작전을 세웠다.

 

이 작전을 벌릴 첫 장소로 1958년에 벨지움의 수도 브럿셀에서

개최된 브럿셀 엑스포 행사장을 지목했다.

이 엑스포에 당시 두개의 최강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거대한 규모의 파빌리온을 지어서

각각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지를 과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최근 기밀문서에서 해제된 약 130개의 문서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

"The Zhivago Affair" 이 출판되면서, 당시 크레믈린과 CIA이 금지된 이 책을

어떻게 철의 장막에서 빼 내서 세상에 보급하게 되었는가를 이제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오리지날 닥터 지바고 영화 포스터

 

 

내부 메모에 의하면 "어떤 경우라도 미국이 연루되지 않아야 된다" 고 경고를 시작으로

CIA 가 네덜란드 정보부의 협조로 헤이그에 작은 아카데미 하우스를 얻어서

러시아어판 소설 '닥터 지바고' 200부를 급하게 인쇄를 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엑스포 행사내의 미국 파빌리온에서 배포할 수 없기에

대신 CIA는 인쇄한 200부를 바티칸 파빌리온에 우선 넘겼다.

당시 바티칸관 내에 러시아에서 망명한 캐톨릭 신자들이 작은 규모의 "도서관"을 설치해두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철의 장막 뒤의 크리스찬들의 어려운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CIA 스폰서로 찍은 '닥터 지바고' 소설책이 엑스포 내의 바티칸 관의

작은 '도서관'에서 소련국민들 손에 들어갔다고, 'The Zhivago Affair"의 공동저자인

피터 핀과 레트라 쿠베씨가 기술했다.

 

이렇게 넘어간 책들은 곧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책을 받은 이들은 쉽게 책을 은닉하기 위해서 페이지를 뜯어서 나누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첫 출판된 소설이 기대이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성공적이 되자

출판업계에서는 CIA가 이 센세이셔날 사건의 배후라는 설이 돌기 시작했다.

 

아울러 당시 이탈리아 출판업계에서 좋은 책 발굴을 위해서 보낸 에이젠트 덕분에

이태리 밀라노 소재의 지안쟈코모 펠트리넬리(Giangiacomo Feltrinelli) 출판사에서

'닥터 지바고'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CIA는 그 출판소의 허가없이 이 소설을 인쇄해서

반발을 사면서 더 CIA 판 소설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닥터 지바고의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브럿셀 엑스포에서 예상보다 큰 성공을 거두자, CIA는 아예 출판업계를 건너 뛰고,

독자적으로 자체내에서 가상적인 the Société d'Edition et d'Impression Mondiale

이라는 프랑스 출판사 가 출판한 것 처럼 바로 paperback 으로 이 소설을 출판했다. 

 

이렇게 출판된 이 소설은 1959년에 비엔나에서 열린 '평화와 우정을 위한 청소년 페스티발 행사에서

배포가 되었다.  이 행사에 이 책 외에도 당시 반 공산주의 사상이 깔린 조지 오웰의 'Animal Farm'

을 비롯해서 약 30,000 만권의 책들이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닥터 지바고는 1917년에 발생한 러시아 볼세비크 혁명 중에

그의 사랑을 찾는 스토리는 서유럽과 북미에서 또 다시 바로 큰 대박을 터트렸고, 

한편 소련정부에서는 한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와 이데올로기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소련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에 서방으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은

버스 주위에 몰려가서 버스의 열려진 창을 통해서 CIA 가 출판한 미니 소설책을 버스 안으로 던지기도 했는데,

버스에 탄 러시아 승객들은 그들에게는 불온서적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에 따르면

KGB 내에서도 파스테르나크 옹호자가 상당수에 달해서

비엔나를 방문하는 소련국민들에게 "책을 주면 받아서, 읽되,

절대 본국으로 가져오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냉전시대의 소련은 이 책의 저자인 파스테르나크를

노골적으로 심하게 탄압하던 차에

1958년 10월 23일에 노벨문학상 수여자로 파스테르나크로 지정되자,

파스테르크는 이틀후에 수상자로 뽑아 주어서 영광이고, 놀랐고,

자랑스럽고기쁘다라는 전보를 보냈다.

반대로 노발대발한 크레믈린측은 모스코바 문학기관의 모든 학생 전원에게 

파스테르나크와 그의 저서들을 비난한다는 탄원서명과,

그를 탄핵하는 데모을 주동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만약에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을 받으려고 스웨덴으로 간다면, 

러시아로 재입국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파스테르나크는 유감스럽게도 자진해서 이 상을 못 받겠노라는 내용의 두번째 전보를

                                 스톡홀름에 보내서, 결국 그 상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냉전시대도 지나가고, 데탕트로 완화되었다가,

브레스네프 서기장 시대에 다시 꽁꽁 얼어붙었던 서방과 소련의 관계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후로 서로 정치적 교류만 아니라 경제적과 문화적 교류도 활발해졌고,

동독과 서독도 통일이 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런 기사를 읽고 있자니

한국의 6.25 전쟁이야기처럼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서

마치 한편의 첩보 소설을 읽는 것 같다.

 

불과 50-60년 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그저 기억에서 지우기보다는

2차대전, 6.25 전쟁, 냉전시대에 자행된 수많은 인간의 만행을 상기하고,

앞으로는 비슷한 비극이 이 지구촌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 본다.

특히 아직도 남과 북이 서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대치하는 이 상황에서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져서 북한의 작가가 쓴 소설 작품이나 영화를 접하는 날도 그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