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277년, 대동고녀(현 대전여고)시절의 친정엄마(오른편 뒤)
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내게는 늘 그리운 고향이자 친정인 토론토에 왔다.
매년 토론토에 오면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과 달리
이번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와
한달 전부터 암치료를 받는 새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러 온 여행길이라서
무겁고 죄송한 맘으로 이곳에 왔다.
불과 1년 사이에 두분 다 갑자기 늙어 보여서, 멀리 떨어져 사느라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 우선 죄송한 맘이 앞서면서 잠시 머무는 동안이라도 육체적으로 심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들이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토론토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암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모셔 가기도 하고, 치료때문에 식사가 어려운 새어머니를 위해서 다양한 죽과 국을 준비하고, 평소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생선 매운탕, 만두, 제육볶음과 순두부, 해물파전, 총각김치등을 하느라 종종걸음으로 하루종일 보냈지만, 두분이서 편하게 식사를 하시는 모습에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오늘 오후에 점심을 드신 후에 아버지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많은 앨범을 가르키면서, 이제는 당신이 관리를 못하니, 내가 필요한 사진들을 가지고 가라고 하시는 말씀에
못 이기는 척 오래된 앨범을 꺼내서 손바닥보다 훨씬 작은 누렇게 바랜 사진들을 하나씩 천천히 보노라니 친정부모님의 긴 삶의 모습을 마치 무성영화 활동사진기가 천천히 돌아가는 듯 했다.
오래된 앨범에서 더 오래된 사진들을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억지로 생 살을 떼어내는 듯해서 마음이 아리다.
일단 오늘은 오래된 앨범 세권에서 내가 간직하고 싶은 사진들을 골라서
커다란 상자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후, 아버지가 잠이 드신 후에
다시 그 사진들을 꺼내서 하나씩 꼼꼼하게 챙겨 보았다.
2/3에 가까운 많은 사진들에 관한 배경 설명이 없어서
정확한 날짜와 상황은 알 길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16년 전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살아계실 때에
진작에 여쭈어 보고 기록을 제대로 해 두지 못한 것이 새삼스럽게 후회가 된다.
그 중 두분이 결혼하기 전에 찍은 사진 몇개만 추려서...
사진 뒤에 날짜가 없지만,
아직 외삼촌이 태어나지 않은 걸로 봐서 1943년 경으로 짐작되는 외갓집 사진
(왼편부터 외할아버지, 둘째 이모, 증조할머니, 큰이모, 세째이모, 그리고 외할머니
어렴풋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한 신문에 연재로 한국의 선생님이라는 칼럼이 있었는데,
와할아버지가 한국인으로 두번째 선생님으로 소개되었다.)
일제시대, 1940년도 초반에
사범학교를 나오신 후에 교편을 잡으신 엄마와 제자들의 모습...
지금 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단기 4286)
역시 사범학교를 나오신 아버지(앞줄 왼편에서 두번째)와 제자들의 모습..
(다행히 단기 4289년 3월 김천학교 11회 졸업기념 이라고 적혀있다.)
혹시라도 이 사진 속에 인물들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까??
당시로는 여성으로 아주 드물게 진명여고를 졸업하시고 사범학교를 거쳐서 일제시대 때부터
선생님을 하시던 외할머니(가운뎨)와 엄마(오른편) 그리고 동료선생님들..
단기 4288년에 동료 선생님과 엄마...
이렇듯,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두분은 힘든 일제 강정기 중에
꿈과 야망이 있는 풋풋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참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것이 무척 서글퍼진다.
내 자식들도
언젠가는 우리 부부의 젊은 시절의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까?
내일이면 새어머니의 암치료 33번째이자 마지막 날이다.
부디 치료결과가 좋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로
오늘 하루를 마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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