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무릎까지 수북하게 쌓인 집 뒤... 지나 주말 내내 살인적인 추위와 센 강풍과 맞싸우면서 수북하게 쌓인 눈을 치우느라 아직도 어깨와 허리가 쑤셨지만, 그날 예정된 중요한 행사때문인지 일찌감치 눈이 떠 져서 우선 일기예보를 보니 기온은 영하 30도, 체감 온도는 영하 38도라고 티비의 날씨 채널에서 알려주자, 저절로 입에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는 도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커다란 양로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의 올학기 첫 피아노 리사이틀이 계획되었는데 3일간 내린 폭설과 도로 사정도 최악인데, 체감온도 영하 38도 살인적으로 추운 날씨에 양로원까지 이동해야 하는 학생들이 걱정도 되고 미안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학생들에게 줄 간식거리를 한아름 준비해서 평소 운전 시간보다 2배 이상 걸려서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리사이틀 장소인 양로원에 도착하니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과 부모들이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양로원 식당에서 가진 피아노 리사이틀이 시작하기 전... 내가 지도하던 피아노 학생들은 일년에 세번 양로원에서 위문공연을 가지고, 두번의 정식 리사이틀에 출연해서 오랫동안 연습하고 다듬은 곡들을 무대에 올린다. 그 일원으로 올 학기 처음으로 사정이 있거나 아픈 학생 7명을 제외한 학생들이 9월부터 3개월간 연습한 클래식 피아노 곡과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롤을 그날 모인 양로원 노인들분들과 가족들에게 선사해 주었다.
몸이 불편해서 자동카트를 타신 노인 분들은 입구 쪽에서 음악을 감상하시고... 몸은 불편하셔도 어린 학생들이 연주한 곡을 경청해 주시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연주되면 함께 노래도 따라 부르신다. 어떤 분들은 그저 어린 학생들의 모습만 봐도 마냥 흐뭇하신지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을 지켜 보신다. 어떤 분들은 온 정신이 아니신 분들도 귀에 익은 노래나 곡이 나오면 어린이들처럼 따라 부르시거나 두분의 할머니는 피아노 앞에서 춤을 추시기도 하셨다. 이런 리사이틀을 통해서 학생들은 피아노곡을 혼자서 연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 임하듯이 몇달단 노력해서 다듬은 곡을 관객과 함께 공유하는 체험을 가지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었는데, 다행히도 연주하는 학생들이나 외롭게 지내시는 노인분들 모두가 함께 아름다운 음악으로 훈훈해진 열기는 창 밖의 대단한 설국의 맹추위도 잊게 해 주었다.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이면, 아무리 추워도 아무도 밟지 않은 수북하게 눈덮인 길 위에 첫 발자국을 내면서 잠시라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평소보다 3배로 두툼하게 껴 입고 집 뒤의 산책길로 종종걸음으로 향했다. 영하 25도의 날씨에 이미 누가 다녀갔는지 발자국이 오솔길에 새겨져 있다. 첫 발자국을 남길 수 없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그 누구가 남긴 발자국을 때문에 대신 눈길에 덜 빠지고 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로키까지 가지 않고 시내에 그리고 바로 집 뒤에 이렇게 아름답고 운치있고 평화스러운 산책길이 있어서, 겨울의 멋을 만끽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길고 추운 울 동네의 겨울날씨가 많이 덜 부담스러워진다. 그리고 혹독한 겨울을 원망하고 피하기 보다는 아예 그 겨울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서 겨울의 아름다움과 멋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면서 사는 울동네 사람들의 의연함도 배울만 하다. 겨우내내 이렇게 출퇴근과 등교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도 자전거 타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이만한 열정은 없기에 그냥 존경스럽게 쳐다보기만... 이 아름다운 눈길을 홀로 오래 걷고 싶었지만 30분을 넘기기가 어려워서 발길을 다시 돌렸다. 오후 5시에 해가 떨어지면서, 은은한 보랏빛 겨울 하늘 배경의 하얀 숲길을 따라서 얼어붙은 손가락과 콧잔등을 녹이려고 집으로 발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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