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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독일

[독일여행17]에르푸르트의 오래된 거리에서-Kraemerbrueke,Alte Synagogue,Wenigemarkt

by Helen of Troy 2015. 5. 18.

 

 

 

독일 튀링겐의 수도 에르푸르트에서

 

튀링겐의 수도 에르푸르트의 명물인

크레머브류커(Krämerbrücke / Merchants' Bridge/상인들의 다리)

 

 

튜링겐의 예나에서 서쪽에 위치한 에르푸르트 시

 

 

 

에르푸르트는 독일의 중부지방에 있는 튜링겐의 수도이며,

약 40만의 인구가 사는 중소도이다.

에르푸르트 시에는 독일연방 정부 노동법원이 있으며,

유서깊은 에르푸르트 대학교, 그리고 에르푸르트 교구를 비롯해서

에르푸르트 주교좌 성당이 잘 알려져있다.

에르푸르트의 또 하나의 명소는 다리 위에 집들이 들어 선

크레머브류커 가 유명하며,

11세기에 지어져서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에르푸르트 시나고그,

그리고 중세기에 나무 대들보로 지어진 25개의 고딕양식 교회들도 유명하다.

 

 

 

에르푸르트 시내지도 

 

 

 오래된 목조건물들과 뾰족한 종탑이 빼곡하게 들어 찬

중세의 도시인 에르푸르트는 튀링겐의 수도이자,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아름다운 도시이다.

 

에르푸르트는 742년에 성 보니파스(Saint Boniface) 교구가 만들어지면서

최초로 역사에 기록에  남기 시작했고,

중세기에 주요한 교역통로 상에 위치한 에르푸르트는 상업의 중심지로 잘 알려졌는데,

특히 이 지역에서 서식하는 woad(대청: 파란색 염색재료)의 이파리에서

축출해서 쓰인 염색재료의 공급지 덕분을 톡톡히 보았다.

하지만 16세기부터 인도와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값싼 청색염료가 유럽으로 반입되자,

에르푸르트의 황금기도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1871년에 독일이 처음으로 통합되면서, 쇠퇴하던 에르푸르트에게

지리적으로 중요한 교역지점에 위치한 덕분에 예전의 명성을 다시 찾게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동부 유럽의 베를린, 드레스덴, 라이프찌히 와 달리

2차 세계대전에 미미한 피해를 입어서, 독일내에서 제법 큰 도시치고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에르푸르트는 1392년 설립된 대학으로 일찌감치 교육의 도시로 알려졌고,

이 대학 졸업생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한 마틴 루터,

중세기 종교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유명한 캐넌의 바로크 작곡가 요한 파헬벨,

사회학작 막스 베버를 꼽을 수 있다.

 

 

 

 

오후 4시경에 에르푸르트 래디슨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간단히 샤워를 한 다음에

바로 에르푸르트 시내 구경에 나섰다.

그동안 독일에는 자주 왔었지만, 주로 일과 관련된 베를린, 뮨헨, 슈투트가르트나 서독의 도시들로 갔고,

 예전에 동독에 속했던 이 지방은 처음이어서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튀링겐 지방 특유의 완만한 곡선의 나무 대들보로 (half-Timber),

오래된 목조 대문과, 모자이크로 처리된 뾰족한 종탑모양의 지붕,

거기다다 벽에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벽화

그리고 그 아래엔 생뚱맞게 아주 현대적인 조각품이 들어 선

이 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서 집을 두바퀴를 뺑뺑 돌면서 찬찬히 구경을 했다.

 

 

 

Wenigemarkt

 베니게막트(Little Market)는 크레머브류커 바로 전에 위치 해 있으며

14세기에 지어졌다.

이곳엔 애기디언 교회와 아기자기한 가게와 카페가 광장 주위에 들어 서 있어서

느긋하게 라테를 마시면서 여름 오후를 보내기에 최고다.

 

 

Agidienkirche(애기디엔 교회)

베니거막트에는 역시 14세기에 세워진 애기디언 교회가 광장에 우뚝 서 있다.

감리교파의 이 교회는 베니거마크트와 상인의 다리 사이에  위치 해 있다.

 

 

 

중세에 독일이 프랑크 왕국으로 불리울때에,

이 광장은 슬라브족들과 프랑크 족들이  서로 교역을  하는 장터로
 프랑크 왕국에서 제일 동쪽 끝에 위치한 상업의 중심지였다.

 

 

상인들의 다리(Krämerbrücke / Merchants’ Bridge)

 

에르푸르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물그조인 이 다리는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 질러서 흐르는 게라개울을 따라

중세기에 키에브-로클라브-에르푸르트-프랑크루프트-파리를 잇는

중요한 교역로이자 도로였던 '비아 레지아(Via Regia)가 이곳을 통과했는데

1117년에 지어진 첫 다리는 나무로 지어졌다가,

1325년에 다리폭도 넓히면서 돌로 재건축이 되었고,

현재에 서 있는 다리와 집들은 15세기에 증축공사 때에 지어졌다.

 

 

 

특이한 점은 다리 양쪽에 집들이 들어선 점인데

처음엔 62채의 집이 들어섰다가, 집을 넓히면서 32채가 있는데

유럽에서 집들이 들어선 다리로는 제일 길기도 하고,

7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니 참 대단하다.

 

 

이 다리가 건축되던 중세기에는 다리 양쪽에 교회가 들어 서 있었는데,

위에 보이는 애기디언 교회는 아직도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다리의 아치 사이로 흐르는 게라 개천을 가로 질러 가 보니...

 

 

 

어두컴컴한 터널같은 다리밑과 달리

다리 반대편엔 제법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고,

 그 개천가에 사람들이 편하게 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더운 김에 샌달을 벗고 맨발로 잠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여기에서 머물렀다.

 

 

 

좁고 오래된 길을 걷다가, 평범한 한 건물의 벽에,

 

 

Bust and plaque on Adam Ries in Erfurt

 

아담 리스(1492-1559)

그가 쓴 첫 산수책  "Rechnung auff der Linihen"

여기서 1518년에 출판되었다.

 

라는 동판와 아담 리스의 흉상이 길벽에 걸려 있다.

 

 

ZUM SCHWARZEN HORN

이 입구는 르네상스 스타일로 1549년에 지어졌다.
볼프강 쉥크(1499년부터)
마티스 말러(1536 년까지)가
운영하는 출판사 건물

마르틴 루터가 쓴 글과
아담 리스가 쓴 산수책이
여기서 출판되었다.
 
라는 표지판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오래된 건물엔 수백년동안 어떤 건물이었을까...

 

 

언뜻 보아도  아주 조용하고 더 오래 되고 좁은 이 길을 따라가다 보니

21세기인지, 14세기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왼쪽의 오래된 벽이 유대교 회당 건물벽이 눈에 들어왔다.

 

 

 

구 시나고그 (Alte Synagoge)

유태인 회당인 이 시나고그는 유럽에서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시나고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엔 많은 시간과 우여곡절을 거쳐야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삐죽히 튀어 나온 시나고그의 두개의 돌만이 드러났다가

시나고그 주위의 수채의 집들이 허물게 되면서,

건축 역사가들이 4차에 걸쳐서 지어진 오래된 유태교 회당으로 판정이 났고,

그 중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은 1100년경에 건축 되었는지도 알아냈다.

 

 

 

1층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2층은 19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탱고과 폭스트로트 춤을 추는

댄싱홀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위에 보이는 회당 건물은 1270년경에 지어졌다고 판정되었고,

1349년까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중세에 발생한 페스트로 당시 에르푸르트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이 거의 다 사망하게 되었다.

그러자 에르푸르트 시는 이 건물을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는데,

상인들은 이 곳을 창고로 개조해서 사용했다.

 

 

1000년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회당 벽

전염병으로 몰살당해서 버려졌다가

다시 그 면모를 찾을 것이 참 다행스럽다.

 

 

2개의 돌에서 1000년이 지나서 오래된 회당을 재발견하고 

그래서 이 오래된 벽이 당시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도 남는다.

 

 

천년간 굳건하게 버틸 뿐 아니라

아직도 주거지로 사용되는 이 오래된 건물의 벽에

누가 이렇게 몹쓸짓을 했는지 참 안타깝다.

 

 

이 조용한 좁은 골목에 우리 부부의 발자국이 유난히 더 크게 들린다.

 

 

모노톤과 무채색의 거리에서 바로 건너편에...

 

화사한 분위기가 나는 거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정열적인 붉은 색의 '빨간 코끼리' 건물과

 바로 뒤에 뾰족한 첨탑이 있는 교회도

 

 

(Allerheiligenkirche/All Saints Church)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알러하일리겐 교회' 는 캐톨릭 교회로

12세기에 수도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과 함께 지어졌다.

그 후로 수세기에 걸쳐서 이 성당은 파손과 보수공사와 증축공사가 이어졌는데

특히 최근인 2007년 가을에 벌린 보수공사때에는 획기적으로

현대판  '콜롬바리움'이 새로 설치되었다

 

 

 

 

 

이는 적은 신자수에 비해서 성당크기가 너무 큰데서 착안했는데

돌아가신 분들의 묘가 교회 내에 모시는 의식은 캐톨릭 교회의 오래된 풍습이지만

이 성당내에 설치된 콜롬바리움은 전통적인 묘지가 아니라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납골당이라고 할 수 있다.

 

 

에르푸르트 출신 에블린 커버씨가 디자인을 해서

강철, 유리와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15개의 납골당이

 교회의 왼편에 설치되었는데,

각 납골당마다 6층으로 나뉘어졌고, 7개의 유골함을 넣을 수 있다.

 

 

이 납골당은 설치된지 며칠만에 바로 팔렸고,

유일하게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의 유골도 모실 수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콜롬바리은 유리벽으로 미사를 드리는 장소와 분리되었고,

유골을 모신 가족들만 그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참고로 콜롬바리움의 어원은 비둘기를 뜻하는 라틴어 콜룸바이며,

벽에 비둘기집 모양으로 움푹 패인 것에서 생겨난 단어이다.

 

 

Anger 의 활기찬 모습

 

 

 

 

 

계속해서 Anger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