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좌 성당: Erfurt Cathedral(Dom)
피터 성곽 - Peter's Hill Citadel/Zitadelle Petersberg
페터스베르크 성은
에르푸르트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위에 위치해 있다.
이 성은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걸쳐서 만들어진 성으로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성곽으로 유명하다.
저 아래에 주교좌 성당과 성 세베루스 교회의 첨탑이 내려다 보인다.
함께 간 합창단원들과 성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오래된 돌길을 담소를 나누면서 올라가서...
상큼한 분위기의 벽화가 그려진 이곳은
한 개인이 운영하는 작고 아담한 와이너리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 서 있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바로크 형식으로 지어진 이 성은
원래 베네딕토 수도원 자리에 지어졌다.
페테르스베르크 성이 지어질 당시에는
튀링겐이 아니라 마인쯔 지역이 에르푸르트를 통치했다.
성의 제일 높은 곳으로 계속해서 올라가 보니...
초저녁 무렵의 에르푸르트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언덕 위에 성벽을 따라서 좁을 길을 따라서 걸으니 도시를 죽 돌아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오래된 성벽에 누군가가 낙서를 해서 눈쌀이 찌푸려진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도시에 살면서 깨끗한 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충동을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작은 초소에도 여지없이 낙서가...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앞으로 1000년은 거뜬히 버틸 것 같은 견고한 페테르스베르크...
바로 아래엔 에르푸르트 주교좌 대성당과 성 세베루스 교회가 우뚝 서 있다.
서쪽으로 서서히 기우는 해를 뒤로 하고 에르푸르트 시가지를
내려다 보면서 소솟하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일행...
다시 돔플라츠(Domplatz)로 내려가다가 눈을 끈
성벽에 걸려 있는 원색의 파란 우체통...
요즘처럼 손편지를 쓰지도 받기도 힘들어서
이런 우체통을 보면 반갑기도 하고,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도 남아서
호텔로 돌아가서 오전에 이미 사 둔 엽서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Auf Wiedersehen Petersberg...
To Erfurt Cathedral
이 아래 부분은 8세기에 지어진 보니파스 성당의 전신
에르푸르트 자체 내에는 약 20만 명의 인구가 살지만
36개의 교회와 15개의 수도원 건물등 종교건물이 들어 서 있어서
"튀링겐의 로마" 라는 닉네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에르푸르트가 무신론자인 동독정부의 종교말살 정책으로
현재는 고작 시민 중 7%가 캐톨릭 신자이고
14%가 개신교 신자이고 나머지는 무교이다.
에르푸르트에서 제일 넓은 광장인 돔플라츠(Domplatz)
왼편엔 에르푸르트 대성당은 (독일어로 Dom, Mariensdom, Domberg St. Marien)
간단히 돔 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마리엔스돔 이라고도 불리운다.
오른편에는 성 세베루스 성당이 위치 해 있다.
에르푸르트 주교좌 대성당의 대부분은
14세기와 15세기에 고딕식으로 지어졌지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터워 아래 부분은
742년에 에르푸르트 교구가 생기면서 지어진 보니퍼스 주교를 위해서
지어져서 새 성당이 지어지기 600년 전부터 기존해 있던 교회였다.
그리고 1507년 4월 3일에 바로 이 마리엔스돔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정확히 70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왼쪽에 있는 마리엔스돔 성당 입구가 기다린다.
고딕양식의 성당답게 높다란 천장과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화려하고 정교한 제대가 인상적인 주교좌 성당 내부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제대
제대 뒤 예수님의 고상이 걸려 있다.
제대 반대편에 파이프 오르간과
양편에 기다란 스테인드 글라스가 깔끔하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2011년 9월 23일에 당시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에르푸르트 대성당을 방문해서
미사집전 중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다.
한편 2017년이연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500주년이 되는 해로 캐톨릭과 개신교의 화합과 화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입구 근처에 1160년경에 청동으로 제작된 볼프람(Wolfrom)상이 있다.
한 남자가 양 팔에 초를 치켜 들고 악령을 쫓는 이 동상은
850년이 되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막 제작된 조각상 같다.
아우구스틴 수도원과 교회
아우구스틴 수도회는 성 아우구스틴의 신학과 정신을 따르는
아우구스틴 수사들에 의해서 설립되었고,
대부분의 수도원과 성당공사는 1276년부터 1340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이 수도회는 16세기에 이미 유럽에서 병설된 신학대학교로 신학교육과
방대한 도서관으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마틴 루터는 1505년에 에르푸르트 대학교에서 문과 석사 학위를 받은 후에
완고한 아버지의 바램대로 법대로 진학을 하려고 하던 참에
그해 7월 2일에 천둥과 번개가 대단한 폭풍을 만나게 되는데
벼락에 맞아서 죽을 것 같아서, 그의 아버지가 몸담고 있는 광산업의
수호 천사인 성 안나에게 "저를 구해 주소서! 그러면 수사로 살겠습니다!"
라고 온 힘을 다해서 기도를 한 후에 가까스로 살게 되자,
그가 약속한대로 며칠 후 17일에 이 수도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1507년에는 에르푸르트 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곧 에르푸르트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해서
1512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모교에서 신학교수로 재임했다.
한때는 이 수도회서 공부를 하고 봉사를 하던 마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된 종교개혁 후에, 아우구스틴 수도회는 1556년에 마지막 수사의 사망 후
수세기에 걸쳐서 초등학고, 도서관, 고아원과 그리고 정부 회의 장소등
비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1851년에 아우구스틴 성당의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고,
재축성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2차대전 중 1945년 2월 25일에 영국군의 폭격으로
도서관 뒤 창고에 피신해 있던 26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500여년간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46년부터 시작된 보수공사는 10년이 넘은 1957년에서야 완공을 거쳐서.
1960년부터 1993년도까지 신학대학교로 사용되었다가
루터교파에 넘겨지게 되었고,
그 후 수도회를 회의장소로 개조해서 사용되고 있다.
이 수도회를 비롯해서 에르푸르트의 오래된 건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1000년간의 유럽의 굴곡많은 역사를 이 한 도시에 축소해 놓은 것 같아서
수도회를 방문하는 동안 평소보다 더 많은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계속해서 3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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