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다섯번째 합창공연이 열린 예나의 슈타트교회에서
밤베르크에서 느긋하게 관광을 한 다음,
버스를 타고 튜링기어 지방에 위치하고 유서깊은 문화의 도시
에르푸르트(Erfurt)에 오후 늦게 도착했다.
그 다음날 5회 공연이 예정된 에르푸르트에서 남동쪽으로 약 55 km 떨어진 예나로 향했다.
예나(Jena)는 독일의 투링기아 지방에 위치 해 있으며
인구 11만 명으로 이 지역에서 두번째 큰 도시이며
근처에 위치한 투링기아에서 제일 큰 에르푸르트(Erfurt)와 바이마르(Weimar)
세 도시가 합해서 메트로폴리탄 투링기아 지역을 형성해서
총 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1558년에 설립된 유서깊은 프리드리히 쉴러 대학(Friedrich Schiller University)이 있는
예나는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서교육의 중심 도시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며,
또한 근래에 들어서 다수의 연구기관이 들어서서 첨단과학 기술개발도 활발하다.
기록에 의하면 예나는 1182년부터 작은 마을로 시작한 예나는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부터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서서 예나는 우리 귀에도 익은 칼 자이스(Carl Zeiss)와 쇼트
근래에는 1990년에 설립된 에높틱(Jenoptik) 회사도 합세해서
세계의 광학산업(optical industry)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독일의 몇 안되는 중소 도시에 Jen Tower르 비롯해서
고층건물들이 시내에 들어 서 있다.
아울러 예나는 독일에서 1848년에 발생한 3월 혁명 전의 기간인
1790년에서 1850년 사이에 포르매르츠(Vormärz) 의 중심지였다.
포르메르츠는 지금의 독일을 지배하던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가
경찰국가의 권위로 시민의 언론과 자유를 탄압하는 것에 항거하던 기간을 일컫고
1830년에 발생한 프랑스 혁명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기간 중에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서 독일의 로맨티시즘과 독일연합을 이끌었는데,
예나에서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요한 고트리브 피히테(Fichte),
게오르그 헤겔(Hegel), 노발리스(Novalis)와 아우구스트 슐레겔(Schlegel)등이
당시 활약한 인물들이다.
예나의 산업을 대표하는 중요한 세 단어는 빛, 유리, 그리고 광학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단어가 있기에는 칼 자이스(Carl Zeiss), 언스트 아베(Ernst Abbe),
그리고 오토 쇼트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예나는 독일에서 19세기 후반부터 주요 산업도시가 발돋움하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자이스 렌즈와 쇼트 글라스는 광학산업과
유리 산업의 명성을 여전히 떨치고 있다.
따라서 예나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의 광학산업과 정밀산업
그리고 소프트웨어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Stadtkirche St. Michael
오후 3시 경에 예나의 성 미카엘 교회에 도착해서...
성 미카엘 슈타트교회 내부..
800년의 역사를 가진 성미카엘 교회에 도착해서 들어서니
섬머 뮤직페스티발이 개최되기 전에 보수공사가 끝낸다는 계획이 차질이 있는지
여전히 보수공사가 교회 전체에 진행되고 있다.
슈타트 성 미카엘 교회(Stadtkirche St, Michael)는 튜링기아 지방에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교회 건축공사는 1380년으로 거슬러 가며, 200여년 후인 16세기에 완공이 되었다.
교회 종탑 높이는 약 80 미터로 옌타워가 들어서기 전까지 예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높이 3.5 미터와 폭 3 미터의 이 복도는 1301년에 교회 바로 뒤에 지어진
시스터시언 수도회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문이기도 했다.
예나시와 이 교회의 수호성인인 성 미카엘의 목조상은 13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선두주자였던 마틴 루터가 1524년에서 1529년까지
돌로 만들어진 강론대에서 설교를 한 교회이며
루카스 크라나흐가 제일 먼저 제작한 마틴의 청동기념비도 이 교회에 세워졌다가
1571년에 예나 대학에 기증되었다.
1945년에 발생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우리가 방문할 당시에도 여전히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1520년대에 마티 루터가 설교를 했다는 설교대
교회 뒷편에 있는 오르간
교회 제대 앞에도 본격적인 보수공사가 큰 굉음을 내면서
인부들이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반주를 맡은 리앤 레게 박사가 공사로 부산한 가운데에
오래된 오르간을 테스트하고 있다.
10여명의 인부가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 보수 공사를 하다가
공사를 잠시 접어서 가까스로
합창단의 공연 예행연습을 1시간 할 수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교회 밖으로 나와서...
성 미카엘 도시교회의 종탑
이 교회에서 여름에 열릴 다양한 음악공연 포스터가 게시판에 붙어 있다.
입구 앞에는 그날 저녁에 열릴 우리 합창단 공연 사인도 눈에 띄었다.
연습을 마치고 교회 앞에서 저녁 식사까지 주어진 2시간정도의 자유시간에
무엇을 할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 중....
예나 도시 지도
대충 찾아 갈 목적지가 같은 다섯명이
우선 교회 바로 옆에 위치한 시청 앞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향기 나는 화사한 꽃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는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광장
근처 농가에서 막 들여온 신선한 야채들...
도시 한복판에서 여유롭게 저녁 시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에 여유와 낭만이 느껴진다.
청과시장 뒤에 성 미카엘 교회 탑이 보인다.
손님을 기다리는 화사한 꽃에서 이들이 꽃과 늘 함께 하는 일상이 그저 부럽다.
약 100 미터를 걸어가면..
Jen Tower
예나의 한복판에 위치한 유명한 고층건물은 원래 칼 자이스의 새 연구소 목적으로 지어졌다.
옌 타워의 높이는 128 미터에 달해서, 갓 통일된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둥근통 모양의 이 타워는 동독에서 건축계의 스타였던 헤르만 헨셀만(Henselmann)이 맡았는데
이 디자인은 현미경의 길고 둥근 eyepiece 에서 나왔다고 한다.
예나 프리드리히 쉴러 대학교(Friedrich Schiller University) 는
튜링기아 예나에 위치해 있으며, 1558년에 설립된 유서깊고, 명망높은 공립대학으로
독일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교 10개안에 들기도 한다.
이 대학교는 특히 과학분야의 연구활동이 활발해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다수 배출했다.
한 예로 FSU 졸업생인 헤르베르트 크뤼머(Herbert Koremer)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대학교의 원래 이름인 예나 대학교에서 근래에 프리드리히 쉴러 대학교로 개명했다.
이는 19세기 초반에 칼 레온하트 라인홀트(Reinhold), 요한 고트리드 피히테(Fichte)
헤겔(G. W. F. Hegel), 쉘링(F. W. J. Schelling), 슐레글(Friedrkch von Schlegel)등
당시 가장 영향력있는 지성인들과 학자들이 이 대학교에서 가르쳤고,
가장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시인이자 소설가인 쉴러도
이 대학교에서 역사교수로 재임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하게 되었다.
이처럼 쉴러 대학교에 모인 당대의 독일의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와, 작가와 학자들 덕분에
이 대학교가 독일의 이상주의(Idealism)과 초기 로맨티시즘의 중심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2010년 자료에 의하면, 쉴러 대학교 재학생수는 21,000명, 그리고 교수진도 340명에 달한다.
현재 총장인 클라우스 딕크(Dikce)씨는 이 대학교의 317번째 총장이라고 하니
학교의 규모도 크고, 역사와 전통이 얼마나 긴지 쉽게 알 수 있다.
Schiller's Garden House
쉴러의 정원과 집은 예나대학에서 교수로 재임할 당시
1797년에 쉴러가 구입한 집이다.
바로 이 집에서 그는 '매리 스튜어트" 와 '오를레앙의 처녀"
그리고 발렌슈타인 3부작을 집필한 집이다.
현재 이 정원/집은 쉴러 박물관으로 쓰여지며
쉴러대학이 소유하고 관리를 하고 있다.
The SCHOTT Glass Museum (쇼트 유리 박물관)
오토 쇼트가 1884년에 시작한 유리기술 연구소는 현재 쇼트 유리박물관으로 전환되어서
설립때부터 제작된 다양한 유리 제품과 기술을 잘 보여주는 명소가 되었다.
The Zeiss Planetarium (자이스 천문관)
1926년에 개장한 자이스 천문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이며
25 미터에 달하는 도움(dome) 으로 독일에서 제일 큰 천문관이기도 하다.
2006년 10월에 설치된 레이저 영상관은 25미터에 달하는 도움 전체를
가득 채워서 학생들에게 멀티미디어를 통해서 천문학을 배울 수 있어서
인기가 아주 높아고 하며, 이런 레이저 영상관은 세계에서 두개만 존재한다고 한다.
the Optical Museum (광학 박물관)
이 박물관은 지난 500년간 광학계의 발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발전을 거듭해 온 안경, 망원경, 현미경과 카메라를 구경할 수 있다.
특히 렌즈의 천재인 칼 자이스가 전반적으로 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현미경를
어떻게 발명하고 개발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The Optical Museum
Otto Schott
오토 쇼트는 예나 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인정받는 유리 화학자이자
유리 제조업자로 명망이 높다.
그는 1851년 12월 17일에 독일의 비튼에서 태어나서
유리 화학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방식으로
아주 질좋고 다양한 종류의 유리제작의 선구자역을 했다.
그의 공헌으로 칼 자이스 회사를 포함해서 예나는
세계의 광학산업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또한 창 유리의 장인이자,
1853년에 베스트팔리아에 한 유리회사의 오너이기도 했다.
쇼트는 1870년에서 1873년까지 아헨에 있는 한 과학대학과
그리고 라이크찌히에 소재한 Wijrzbur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이어서 1875년에는 예나 대학교에서 창유리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에 대한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년 후, 약관의 26세인 쇼트는 스페인 오비에도에 있는 한 초석회사에 근무하기 시작했고,
1879년 말에 당시 유리업계의 대부인 아베(Ernst Abbe)에게 그가 개발한 리티움 소재 글라스가
아주 색다른 광학적인 특성을 나타낸다는 내용의 편지와 샘플을 보냈다.
얼마 후 1886년에 아베와 쇼트는 칼 자이스 회사의 전신인
쇼트 유리 기술연구소(Schott and Associates Glass Technology Laboratory)를
예나에 설립해서 다양하고 정교한 렌즈들(apochromatic leses)을 제작하기 시작해서
망원경, 현미경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887년과 1893년 사이에 쇼트는 열기와 화학물질에도 잘 견디는
보로실리케이트 유리(borosilicate glass)를 개발했는데,
이 유리는 온도계, 실험실 유리, 제약회사 공장에 쓰리은 튜브,
그리고 '예나레 글라스'라고 불리우는 잔이나 주전자등 뜨거운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유리용기와
가스램프등 다양한 용도와 분야에 응용되서 사용되었다.
고열에 특히 강한 쇼트의 새 유리는 Auer 가스램프에 아주 적합해서
1894년에 시판되기 시작한 이 가스램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보로실리케이트 유리 생산량도 고속으로 늘게 되었고, 한편 전세계로 수출까지 하게 되면서
쇼트의 회사는 유리업계의 주요제조회사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쇼트는 화학자이자 사업가이면서도, 예나 도시의 복지와 발전을 위해서도 큰 투자를 했다.
그는 1896년부터 1899년까지 예나의 시의원으로 역임해서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울 뿐 아니라 그의 사유재산을 예나대학이나 다수의 자선단체에
꾸준히 많이 기부해서 예나를 위해서 크게 공헌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업적과 노력을 높이 사서, 1908년에 예나에서 기념식을 가졌고,
1926년에는 유리공장에서 은퇴를 했다.
현대 유리공학의 선구자인 쇼트는 1935년에 타계했다.
저녁 6시에 단체 저녁 식사를 예약해 둔
Gasthaus Roter Hirsch 에서 다시 집합해서
예나에서 음식맛이 제일 좋으면서 값이 저렴하다고 소문한 식당겸 호텔에
단원들이 삼삼오오 도착해서 줄을 지어 서 있다.
식단 건너편의 여유로운 시내 모습...
Roter Hirsch 는 붉은 사슴이라는 뜻을 가진 식당...
독일 튜링기어 지방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식당 내부
90명에 가까운 단체손님이지만
개별적으로 주문을 받자마자 곧 음식이 나왔다.
그날 한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한 4 부부 중,
왼쪽에 계신 알버타 대학교수였던 Ron 은 작년 봄에 암으로
그리고 그 분 외편에 앉으시고 인상 좋으신 Bud 는 낙상사고로 올 봄에 타계하셔서
특별한 기념사진이기도 하다.
이렇게 튜링기어 지방의 향토음식을 잘 먹은 후....
저녁 8시에 교회 제대 무대에 올려진 1부 합창 공연 모습...
2부 공연을 모두 끝내고 청중을 향해서 인사...
앙코르로 두곡을 더 부른 다음에 마지막으로 청중들에게 답하고 있다.
이어서 에르푸르트(Erfurt)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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