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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포르투갈

[포르투칼 여행9]쿠비야 옛 시내 구경 I( Covilhã - Beauty in Decay)

by Helen of Troy 2016. 7. 25.



중부 포르투칼에 위치한 쿠비야(Covilhã) 도시 시청 앞에 있는

쿠비야 (Pêro de Covilhã) 동상






쿠비야(Covilhã)는 포르투칼 중부 지역에 있는 산악지역인 Beira Interior 주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 52,000 명의 아담한 도시로 양모와 눈( wool and snow)이라는 닉네임답게

수백년간 모직의 중심도시이며

하이킹, 캠핑, 등산과 스키를 즐기를 사람들이 즐겨 찾는 도시이다.


쿠비야의 도시 성곽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만큼 역사가 싶은 도시였는데,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무어인들이 포르투칼과 스페인을 지배할 당시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모직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면서

도시의 전성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16세기부터 실크로드를 통해서 멀리 아시아에서 실크가 유럽으로 흘러 들어 오면서

도시의 모직 산업이 꺾이게 되었지만,

다행히 조아웅 왕 5세(King João V)가

포르투칼 군인들의 유니폼을 쿠비야 모직산업계에 의뢰하게 되었고,

Pumbal 후작이 18세기 후반에

왕정 파노스 방직공장(Real Fábrica de Panos)을 세우게 주선을 하면서

19세기 후반까지 모직산업의 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양모의 수요가 현격히 줄어 들면서

도시도 따라서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73년에 세워진 공업대학으로 시작한 학교를

1986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확장을 하게 되면서

교육과 행정의 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쿠비야 도시 출신 중 제일 잘 알려진 인물은 페로 데 쿠비야(Pêro de Covilhã) 를 들 수 있다.

쿠비야는 조아웅 2세 포르투칼 국왕의 지시로 1487년에 아시아로 탐험에 나서서

후에 바스코 다 가마가 동양에 이룩해 놓은 'spice route'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쿠비야 시청앞 광장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대낮의 열기를 피해서 호텔에서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약 3 km 떨어진

오래된 시내로 가기 위해서 물 2 리터병을 가방에 넣고 쿠비야의 언덕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침 10시도 되기 전인데도 그늘이 없는 곳은 이미 30도를 넘어서서

언덕을 오르는데 벌써 등이 땀으로 적셔온다.



시내까지 가기 위해서 푸니쿨라가 2개가 있다는 정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지도를 토대로

더위와 경사진 언덕길 때문인지 단 한명의 사람도 없는 길을 걸어서

40분 후에 첫번째 푸니쿨라에 어렵사리 당도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문에 '사용중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맥이 풀렸다.

그렇다고 더 높은 곳으로 통하는 길은 지도 어디에도 없고, 눈으로도 보이지 않아서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가쁜 숨도 고르기 위해서 아무도 없는 길가의 그늘에서 한동안 앉아 있는데,

저 아래에 주차를 하는 차가 보여서 얼른 다가가서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치면서 나의 형편없는 포르투칼어로

어떻게 위로 올라 갈 수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기대 이상의 영어로 자기도 그 방향으로 간다고 따라 오라고 해서

찾은 이 계단을 통해서 위로 올라 갈 수 있었다.




이어지는 가파른 골목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서..

(차가 지나가면 담벼락에 달싹 붙어 서야 한다.)



넓은 길로 들어 서서 모퉁이를 돌아 보니...




시내 중심으로 가는 지름길인 두번째 푸니쿨라가 나왔다.




다행히도 이 푸니쿨라는 가동중이어서 타고 편히 올라 갈 수 있었다.



푸니쿨라에서 내려다 본 쿠비야 도시...



푸니쿨라에서 내려서 보니 오르막 길이 더 이어진다.

백팩에 넣어 온 물 2리터는 이미 다 마시고 없어서 입술이 말라 온다.



모직 산업을 주도한 유태인 회관

오래된 타일로 마무리된 빌딩이 인상적이다.



건너편 축대 위에 위태스럽게 버티고 있는 한 집이 눈길을 끈다.




길이 아무리 좁고 경사가 져도 견고한 타일로 덮여진 골목과

비대칭스런 건물들이 묘한 멋을 풍긴다.



빈 상가 건물들이 오래된 도시 중심가의 쇠퇴해 가는 것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기대와 달리 조용한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시청 앞 광장 (Praça do Município)




원래 시청 건물은 1614년에 지어진 Town Hall Palace를 허물고

1947년에 위의 새 시청 건물이 세워졌다.



시청 맞은편에 위치한 Igreja da Misericordia(Church of Mercy)







이 교회는 16세기 말에 바로크 풍으로 지어진 오래된 성당이다.



성당 내부는 아담한 크기지만,

양 벽과 천장들이 정교한 타일로 덮어져 있어서

포르투칼의 독특한 건축방식이 보인다.






가운데 제대 앞..




천장




화사한 스테인드 글라스













오후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목도 마르고 다리도 후들거려서 성당 바로 건너편에 있는

한 식당겸 카페에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 두잔부터 들이키면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시청 광장(Praça do Município)으로 돌아와서

쿠비야 동상 옆에 그에 관한 글을 보니...


쿠비야 1450-55년 사이에 쿠비야에서 태어나고,

1530년 경에 이디오피아에서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는 15세기에 포르투칼이 신대륙의 탐험과 국토확장에 박차를 가할 시기에

 주요한 탐험가겸 외교관으로 활약해서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항해로를 발견했고,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와 국교를 수립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인도와 동 아프리카에서 향신료를 유럽으로 들여 오는 일을 시작했으며,

포르투칼이 낳은 최고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의 기반을 세워 둔 인물이었다.



그리고 한때는 전세계 바다를 누비면서 막강한 권력을 누린 시절을 대변하듯이

광장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의 지도가 모자이크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청 광장을 뒤로 하고 수백여년간 포르투칼의 모직산업의 중심지였던 쿠비야가

주요산업의 쇠퇴와 함께 서서히 몰락해 가는

아름답고 인상적인 골목 구경에 나섰다.


















말타의 성 요한 소성당 (Chapel of St. John of Malta)


성 요한 소성당은 16세기에 지어졌으며,

부유한 크리스찬 무역상들의 모임인 Order of Malta 의 소속으로

성당 앞 부분에 세워진 그들의 독특한 십자가로 알 수 있다.




성당 옆 모습...


오래된 기차역

(새 기차역은 산 아래에 새로 형성된 뉴타운 근처에 있다.)


사회당 당사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