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Travel Log/독일

[독일여행25]괴테의 생일에... 독일 바이마르와 라이프찌히(Weimar/Leipzig) 여행기도.

by Helen of Troy 2016. 8. 29.


독일 라이프찌히에 위치한 아워바흐 식당/바 앞에 있는 파우스트 동상




8월 28일은 독일 문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요한 볼프캉 폰 괴테(Johann Wolfgand von Goethe)의 생일이다.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괴테는

유명한 서사시적 드라마인 '파우스트' 를 쓴 작가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괴테는 1786년에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거주하다가

2년후인 1788년에 독일로 돌아온 후에

바이마르 출신이며 당시 23세의 나이로  괴테보다 16살 연하인

크리스티아느 풀피우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해에 괴테는 결혼 후 신부가 신혼 첫날밤에

신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읽는 시  'epithalamium' 을 그녀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정작 결혼은 하지않은 채, 둘은 18년을 같이 살았다.


1806년에 아이들까지 낳고 사실혼 관계로 같이 살던 때에

당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인들이 그들이 사는 바이마르집에

저녁에 술이 취한 상태로 무단출입을 하게 되었다.

괴테는 겁에 질려서 떨고만 있었는데,

크리스티아느는 그들에게 큰소리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연악한 여인네에도 불구하고 맨손으로 술에 취한 군인들과 맞서서

한동안 몸싸움을 벌인 끝에 그들을 집에서 내쫓고

그녀는 두려움에 떠는 가장과 아이들을 그들의 횡포에서 구해주었다.

그리고 군인들이 그들의 음식과 물자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부엌과 지하창고를 막아놓기까지 했다.


18년간 한결같이 그와 가족을 지켜주고,

용감하게 그와 그들의 집을 구해준 크리스티아느가 고마운 나머지

괴테는 바로 다음날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가서 그녀와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혼인과 주거침입 사건이 발생한 같은해인  1806년에는

그의 최고걸작품인 파우스트 초고 1부에 해당하는 글을 출판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명석한 두뇌를 가진 학자 하인리히 파우스트는

악마와 거래를 하게 되는데, 이 서사시적  드라마에는

살인, 유혹,  묘약, 사생아, 악마로 변하는 주인없는 푸들,

혈서로 쓴 계약서, 토굴에 감금,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 구원까지

어느 사회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다 포함되어있다.


파우스트는 Das Drama der Deutschen,”즉 독일인의 드라마라고 일컬어지기도 하고

"closet drama", 벽장 드라마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무대에서 공연을 위해서 쓰인 다른 희곡과 달리

이 드라마는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괴테는 자그만치 50년간 2부로 된 이 걸작품에 매달렸으며,

그가 작고한 1832년에 2부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괴테의 생일을 맞이해서 그와 거의 대표적작품인 파우스트와

깊은 연관이 있는 독일의 바이마르와 라이프찌히의 여행기를

곁들어 봅니다. 




식당이 위치해 있는 Mädlerpassage 쇼핑몰의 입구



아워바흐스 켈러는 이미 1438년부터 존재한다는 기록이 있는

오래된 와인바겸 식당이다.

현재에 영업중인 식당/바는 1912년에서 1914년에 지어진

매들러파사게(Mädlerpassage)에 위치해 있다.



식당 앞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동상



이 식당엔

the Fasskeller (맥주통 셀러), Lutherzimmer (루터의 방),

Goethezimmer (괴테의 방), Alt-Leipzig (오래된 라이프찌히),

the Großer Keller (큰 방) 다섯개의 유서깊은 방과

윗층에는 메피스토 바가 있다.


Auerbachs Hof 는 1530년에 라이프찌히 대학의 의대교수이자 시의원이었던

하인리히 슈트로머씨의 명으로 무역박람회의 용도로 지어졌다.

그는 왕족들의 대주교의 개인 주치의이기도 했는데,

그의 고향인 바바리아 지역의 아워바흐 덕분에

주로 닥터 아워바흐로 불리웠다.

이 빌딩 지하에 이미 100여년 전부터 존재했던 와인바가

다시 개업을 하게 되면서 그의 이름을 본따서 아워바흐 켈러가 되었다.




괴테는 1765년에서 1768년사이에 라이프찌히 대학 재학중에

이 와인바에 자주 찾아 왔다.

어느날 그는 이 와인바 벽에 1625년에 그려진

점성가겸 마술사인 전설적 인물 오한 게오르크 파우스트가

학생들과 술을 마시는 그림과

파우스트가 악마의 도움으로 포도주 통을 타고 문을 나서는

두개의 그림을 보게 되는데

괴테는 이미 어렸을 때에 동네축제 중에

거리에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를 꼭두각시 인형쇼로 자주 봐 온 터였다.

파우스트 1부에 나오는 '라이프찌히의 아워바흐의 켈러' 장면은

그가 대학 재학시절에 라이프찌히 도시와 이 와인바의 기억을 토대로 한 것이다.



라이프찌히 대학 근처에 위치한 이 건물 앞에...



괴테의 동상이 있다.





괴테가 오랫동안 거주했던 바이마르(Weimar)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쉴러의 동상





독일 국립극장 앞에 위치한 동상




괴테가 살던 괴테하우스




괴테하우스의 입구





괴테하우스는 1709년에 심플한 바로크 건축양식을 지어졌고,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괴테는 이 집에서 1782년에서

1832년에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간 살았다.

 


요한 볼프강 괴테는 1782년에 이집에 세들어 살기 시작해서

10년후 1792년에 삭스-바이마르-아이네타흐의 통치자 칼 아우구스트 백작이

이 건물을 사서 작가로서 존경을 받고 있던 괴테에게 헌정해서

그의 소유가 되었다.

 

 

괴테 하우스 앞쪽에 위치한 그의 서재

이곳은 주로 친교와 괴테가 소장한 소품들과 미술품을 모아 둔 곳이다.

 

 

  

이 집에서 괴테와 그의 가족을 비롯해서 몇명의 하인들과

미술가인 요한 하인리히 마이어등 친구와도 함께 살았다.

그리고 이 집은 그의 집필활동은 물론, 그가 사는동안 모은 다수의 그림들과

서적들, 조각작품들, 동전과 메달, 매뉴스크립트등 4만 여점에 달하는 소장품들이

18개의 방에 잘 보관해서 전시되어 있다.

 

 

 


괴테하우스와 박물관을 오랫동안 잘 보존하기 위해서

방문객들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다.

 

 


곳곳에 괴테가 생전에 모은 미술품들이 걸려있다.





Goethe wrote,

“A man can stand anything

except a succession of ordinary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