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
어제 아침엔
전날 무사히 큰 딸의 연주회도 끝나서 밀린 숙제를 한 듯 가뿐한데다가
일요일이어서 평소보다 느긋하게 커피를 리필을 해 가면서
인터넷으로 구독하는 여러 신문들을 꼼꼼하게 챙겨 볼 수 있어서 소소한 행복감마저 들었다.
평소엔 커다란 헤드라인으로 시작한 세계의 정치와 경제등을 우선 챙겨보고
시간이 나면 과학이나 문화계 뉴스로 넘어가지만,
그도 시간이 없어서 관심이 있으면 일단 복사해서 저장해 두었다가 후에 읽곤하는데,
어제는 2시간 여 구석구석까지 작은 기사까지 챙겨보다가
우연히 한국 사진작가의 전시회 기사가 한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클릭을 해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는 짧고 간단하게 한영수라는 사진작가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전시회에서 소개되는 작품 몇점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은 육이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이 1956년에서 1963년 사이에
점점 전쟁의 잔상을 떨치고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하는 과정과
서울에서 전쟁의 아픔을 딛고 꿋꿋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을 담은 작품들이었다.
제일 위에 있는 첫 작품을 보자마자 사진속의 어린 소녀의 두 눈은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의 관심을 답박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사진의 구도 역시 멀쩡한 나무의 사지가 짤려 나가서 비틀어졌지만,
대지에 깊게 내린 뿌리로 새로 싹을 틔울 듯한 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기도 해서
내가 목격하지 못했던 전후의 서울시 그리고 서울의 사람들을
전혀 몰랐던 한 사진작가의 예리한 눈으과 따스한 인간애로
카메라에 담은 작품을 통해서 만날 수 있어서
참 운이 좋은 아침이었다.
장충단 공원
한영수 사진작가의 작품 전시회는
6월 9일까지 미국 뉴져지 주에 있는 저지 시티(Jersey City)에 위치한
The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ICP)에서 열린다.
후암동
명동
한영수 씨는 1933년 개성에서 태어났으며,
광고와 패션쪽에서 일을 하면서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하다가,
틈이 나는대로 길 위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과 도시의 모습을
친숙한 시각으로 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소공동
사진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은 아주 정제된 구도와 타이밍,
그리고 시적이며 깊은 철학과 페이소스가 담긴 찰라를 잘 담을 줄 아는 작가로 평했다.
소공동
그는 육이로 전쟁에 참전해서 일선에서 사투를 벌리다가
휴전 후에 서울로 돌아 왔다.
을지로 1가
그는 생전에 '전쟁은 참 많은 것을 앗아갔지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짓밟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행복, 희망,
그리고 인간성 자체를 앗아갔지요.
그것도 모자라서 종국엔 땅 위의 모든 것을 파괴해서
절망, 슬픔, 굶주림과 파괴만 남았지요.' 라고 전쟁 직후를 회고했다.
Seoul, Korea
'한국동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나는 군인으로 최전선을 오가며
수많은 끔찍하고 참혹한 모습에 한동안 극심한 분노에 휩쌓였지요.'
'종전후에 참혹하고 아픔 기억을 군대를 떠났지만,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점입니다.'
Seoul, Korea
' 허무감, 슬픔과 쇼크, 절망이 여전히 잔재하지만,
사람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 세상에 그들이 살 터전을 마련했구요.'
한강변
한국 전쟁은 한반도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지만,
1950년대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가는 회복기를 거치면서,
나는 도시와 농촌이 서서히 재건하는 모습에
특히 번잡한 재래 시장과 어린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잊고 살던 웃음소리 덕분에
다시 희망을 되찾게 되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나는 나의 인간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명동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 나는 격동기를 겪은 한 시대의 모습을 담았고,
내가 유일하게 소유한 것은 그런 뜨거운 열정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만리동
'이런 이유들로 나는 평생 사진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사진뿐 아니라 삶이 주는 대단한 선물에 눈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Seoul, Korea
힌국 외부로 그의 작품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영수씨는 1999년에 작고했지만,
그의 딸인 한선정씨가 한영수 재단을 설립해서 그의 작품들을 보존하고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Seoul, Korea
그의 작품은 프랑스 아르에서 열리는 Rencontres d'Arles photo festival 에 소개되기도 했다.
요즘 육이오 전쟁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참 많다고 하는데,
나 역시 너무 어렸을 때의 50년/60년대의 전후 모습이 담긴 이 작품들이
한영수님의 따님 덕분에 한국내는 물론이고
널리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역사의 한 단면을 잘 소개해 주는
이 사진전시회의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큰딸이 석달이나 세사에 고작 970 그람으로 빨리 태어나서
다섯달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려서
참으로 지옥을 수십번 오가던 저시시티 메디칼 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시간이 허락하면
큰딸과 함께 옛날 우리가 함게 치룬 힙겹고 끔찍한 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꼭 이 전시회에 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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