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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Fine Arts

꼭 가 보고 싶은 프리다 칼로 전시회 /“Frida Kahlo: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by Helen of Troy 2019. 2. 9.



칼로가 입었던 멕시코와 중미의 전통 드레스인 코테우아나 위필(huipil)과

그녀의 초상화들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오늘 개최된

Frida Kahlo: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프리다 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전시회에서...

photo: Ricky Rhodes



오늘 아침 미사에 다녀 온 후에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늘 해 오던대로 구독해서 읽는 뉴욕타임즈 문화면부터 살펴 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헤드라인

Frida Kahlo’s Home Is Still Unlocking Secrets, 50 Years Later

The artist’s life, through clothing, jewelry, objects, films. 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프리다 칼로의 오랜만에 드문 전시회가 오늘부터 5월 12일까지

뉴욕시의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열린다는 기사였다.





브루클린 박물관에 전시된 칼로의 '원숭이와 함께 한 자화상' 작품 (1943)

photo: Ricky Rhodes




프리다 칼로는 단지 한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Pop 문화와 아이콘의 명성답게 그녀의 삶과 작품은 

자세하게 기록되어서 자주 언급되고 전시되어.

이렇게 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칼로 자신이

클레오파트라에 버금 갈만하게 그녀의 이미지 관리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 살아 있다면, 하바드 대학교에서 브랜딩 클라스를 

충분히 강의하고도 남을만큼 그녀의 삶과 이미지를 잘 관리했다.


칼로가 벽화 미술가이자 그녀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멕시코 시티에 살던 집 La Casa Azul (파란 집)에 보관되었던

그녀의 소장품들이  2월 8일부터 5월 2일까지 뉴욕의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열리는

"Frida Kahlo: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전시회에서 미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며,

이 전시회를 통해서 그녀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녀의 이미지를 그렇게 관리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전시회이기도 하다.


칼로와 리베라 부부의 유품들은 리베라가 남겨 놓은 유언에 따라서,

1957년에 그가 사망 후 15년간 금고에 잘 보관되었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지 거의 50년 후인 2004년이 되어서야 

그들의 유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작년에 런던의 Victoria and Albert 박물관에 첫 전시회가 열렸다가,

이번에 첫 전시회의 규모보다 훨씬 크게 미국에서 그 유품들이 전시된다.


이렇게 의미가 큰 전시회는 그동안 대중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unibrow(붙어있는 두 눈썹)과 콧수염이 있는 칼로의 얼굴과 그녀의 삶을

그녀의 다양한 작품과 사용하던 물건, 그리고 옷과 사진들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된다.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와 버스 사고때문에 얻은 장애와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1954년에 4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창작활동에 주력을 해서,

20세기 뿐만 아니라, 21세기인 현재까지도 그녀의 persona는 강하게 남아있다. 

그 예로, 현재에도 80만 이상의 인스타그램 followers가 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과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다.






Beauty Routine 

(즐겨 사용하던 화장품)


칼로가 즐겨 사용하던 레블롱 회사 제품 " “Everything’s Rosy” 색상립스틱 (1944-1954)



이번에 그녀의 '파란 집'에서 공개된 아이템 중에서

그녀가 즐겨 사용하던 화장품들이 공개되었다:

- 눈썹 그리는 연필

- 폰즈 크림(Pond's Dry Face Cream

- 빨간 립스틱(Revlon lipstick)

- 빨간 매니큐어 (Revlon nail polish)




칼로가 사용하던 화장품들: 

레블론 네일 폴리쉬, 눈썹 펜실과 손톱정리를 해 주는 emery boards

photo: Ricky Rhodes




칼로 생전에 충분히 그녀의 특이한 눈썹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듬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할리웃의 미녀 기준에 맞추는 것 보다 그녀 자신만의 이미지를 위해서

그녀를 상징하는 일자 눈썹 unibrow 를 신경써서 유지하고자 한 노력을 엿 볼 수 있다.







Tehuana Transformation

(중미 전통의상 테우아나 패션)


손으로 십자수를 놓은 면소재 위필 블라우스와

꽃무늬의 면소재 위필 치마





체인 스티치로 꾸며진 면소재 위필 블라우스,

수가 놓인 면 치마



패션을 그녀의 무기로 사용하는데 달인이었던 칼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멕시코 남부와 중미의 Oaxaca 지역의 전통의상인 테우아나 복장을 입으면서,

당시 세계의 패션을 좌지우지하던 파리의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유행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녀의 패션은 곧 '보그' 잡지사에서 그녀의 패션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칼로는 고향의 원주민들의 전통의상인 위플(huipiles)과 레보조(rebozos: 숄)과

수와 장식이 있는 긴 주름치마를 즐겨 입었다.


이 의상들은 그녀의 정체성을 드러내 줄 뿐 아니라,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 그녀의 오른편 다리와 

버스 사고로 다수의 수술 후에 착용하기 시작한 몸체 기부쓰(body cast)를

감추어 주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그녀가 숨기고 싶은 장애로부터 돌릴 수 있었다.

칼로는 자신이 최고의 은닉자라고 자주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칼로가 입던 치마의 detail

만든사람 미상

photo: Ricky Rhodes






그녀의 집 '카사 아줄(푸른 집):Casa Azul' 에서 가져 온

중미 전통 의상 테우아나 위필 치마(detail)

photo: Ricky Rhodes






칼로가 입었던 꽃 모양으로 수가 놓여진 위필 블라우스

photo: Ricky Rhodes






칼로가 입었던 유럽풍의 푸른 블라우스와 

아이보리 사틴 소재의 치마와 회색 레보조(숄)

photo: Ricky Rhodes






중국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치마와 하얀 숄(왼편),

실크 소재의 오렌지 위필 블라우스(오른편)

photo: Ricky Rhodes





테우아나 자화상(남편 디에고를 생각하면서), 1943

“Self-Portrait as a Tehuana (Diego on My Mind)






The Body As Canvas

(캔바스가 되어 준 그녀의 신체)


“Self-Portrait With a Necklace” (목걸이를 두른 자화상), 

1933년, oil on metal



칼로는 머리 장신구와 화사한 꽃과 기다란 샨들리어 귀걸이와

대범한 목걸이등 다양한 보석이나 장신구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들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모으게 해 준다.

그녀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은 소재의 공예품과 그리고 마야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옥 소재의

장신구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과감히 보여주고 있다.





칼로의 선글라스, 클러치 백과 빗

photo: Ricky Rhodes





칼로가 사용했던 반지들

photo: Ricky Rhodes






A Microcosm of Mexico

(멕시코의 축소판)


콜리마 개 유적(기원전 200-기원 후 500년)

오래된 유적의 혼이 그녀의 집 '라 카사 아줄'에 묻어있다.



칼로와 리베라가 살던 '파란 집'은 중미의 오래된 토기와 도자기, 그리고 조각작품들로 채워져서

마야 문명과 스페인의 식민지 시기의 멕시코 역사와 문화가 배인 집이었다.

오래된 유적과 작품들은 이 부부의 다양한 취향과 멕시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 준기도 한다.






Mother of a Mini-Menagerie

(미니 동물원의 여주인)


“Self-Portrait With Monkeys” (원숭이와 함께 한 자화상), 1943



그녀의 '파란 집'에는 동물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동물들과 함께 기거했다.

특히 털이 없고, 중미의 오래된 종자인 졸로이츠쿠인틀리(Xoloitzcuintli)개들을 좋아해서

다수의 개들과, 원숭이들, 그리고 희귀한 열대 새들과 

'그라니조' 라고 불리우는 사슴등 많은 동물들이 그녀의 마당을 돌아 다녔다.






New York Chapter

(뉴욕에서의 삶)



1946년 사진작가 뮤리(Nickolas Muray) 찍은 "Frida in New York" 작품

printed in 2006




칼로와 리베라 부부는 1930년에서 1934년 사이에 미국을 방문해서,

디에고에게 중요한 벽화 작품을 의뢰한 산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와 뉴욕에 머물렀다.

미국의 방문객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칼로에게 뉴욕은 대단하면서도 환멸스러웠다.

그녀는 뉴욕에서 영화를 즐겨 보았지만, 큰 빈부의 차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사진작가 Julien Levy 1938년에 찍은 칼로의 초상화

1938년에 Levy 씨는 칼로의 초상화들을 모아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하지만 갤러리 주인이던 줄리언 레비씨가 칼로에게 1938년에

뉴욕에서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를 열 수 있게 해 주었고,

사진 작가 머리(Muray)씨는 전통의상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담아서

1946년에 사진 전시회를 열게 되면서, 

뉴욕은 그녀를 유명한 스타 반열에 올려 주기도 했다.

아울러 '보그' 잡지사는 칼로를 단순히 리베라의 순종적인 아내가 아니라,

리베라의 강적으로 그녀를 부각시켜 주기도 했다.





Gender Role Play

(성의 정체성)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 (짧게 자른 머리의 자화상)

1940, oil on canvas



칼로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남자 옷을 입는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을 즐겼다.

사진작가인 그녀의 아버지가 담은 사진 중에 틴에이저인 그녀가 신사복을 입고, 

머리는 뒤로 넘겨서 남자머리처럼 한 모습도 볼 수 있다.

1941년에 페커드가 찍은 사진에는 칼로가 담배를 피우면서 멜빵 바지를 입은 모습도 흥미롭다.


1940년에 칼로가 그린 자화상 속의 그녀는 당시 막 이혼한 남편의 옷과 비슷한

신사복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머리를 자른 가위와 악보가 등장한다.

그녀의 짧은 머리는 새롭게 얻은 그녀의 독립적인 삶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1926년 그녀의 아버지가 카메라에 담은 칼로의 모습







Transforming Pain into Art

(고통을 예술로 승화)


신체 교정용으로 사용하던 코르셋 석고에 칼로가 그린 그림



칼로는 살면서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끊임없는 고통에서 시달렸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것은 그녀가 사용하던 다양한 의학기구들이다.

그녀는 그녀의 고통을 감추기 보다는, 그녀가 사용하던 다양한 다리 의족과 기부쓰,

그리고 가죽 코르셋과 금속 버클등을 그녀의 작품으로 승화시켜서,

그녀의 "후천성으로 생긴 피부"를 그녀의 캔바스로 사용했다.





캔바스로 사용된 칼로의 아픈 몸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한 코르셋 (1941)

망치와 낫이 그려져 있다.

photo: Ricky Rhodes





가죽 코르셋

칼로는 그녀의 척추를 바로 잡기 위해서 다양한 코르셋을 평생 착용해야 했다.

photo: Ricky Rhodes





칼로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53년에 다리를 절단하게 되면서 착용한

보철다리는 실크 실로 수가 놓였고 부츠는 리본으로 장식되었다.

photo: Ricky Rhodes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품이

바로 이번 전시회의 타이틀에서 따왔다.


이 작품은 그녀의 고통을 감추기도 하고, 한편으로 드러내 보여주어서

칼로의 아이덴티티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칼로의 오른쪽 다리는 그녀가 죽기 1년 전에 절단해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종종 연약하고 망가진 피해자로 연상하지만,

그녀의 작품과 삶은 오히려 강인하고 시대를 앞서 간 대단한 여성임을

이 전시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될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로 7년간 활동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첼로 지도를 하던 맏딸은

시간이 비는 오전에 대학교에서 회계사 공부를 파트타임으로 공부를 해 왔다.

4월 중순에 졸업과 함께 운좋게 국세청에 취직해서 5월부터 감사일을 시작하기 전에

부활절 연휴에 나와 뉴욕으로 휴가를 가고 싶다고 1월 초에 언급을 했을때만 하더라도

어정쩡하게 대꾸를 했었는데,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라도  맏딸이 태어난 뉴욕으로

떠나는 여행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