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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포르투갈

[포르투칼 여행38]알코바사 산타 마리아 수도원 1편(Mosteiro de Santa Maria de Alcobaça)

by Helen of Troy 2018. 3. 12.




알코바사 산타 마리아 수도원 (2016년 7월 3일)





수도원 Facade





알코바사는 나자레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마침 나자레 근교에 사는 사돈 아저씨 부부가 

일찌감치 나자레 호텔로 와서 우리 부부를 데리러 와서

40도에 육박하는 불볕 더위 속에 시원한 에어콘이 쌩쌩 나오는

안락하고 비싼 독일차를 차고 편하게 알코바사로 이동했다.


 




30분 만에 도착한 알코바사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오래된 알코바사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작은 시냇물을 잇는 오래되고 낡은 다리 위에서 

지붕위에 세워진 TV 안테나들이 왠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수백년 된 오래된 건물의 화사한 타일 외벽은 여전히 아름답다.

 




수도원 바로 못 미쳐서 파란 타일벽, 그리고 아담한 발코니,

타일벽에 걸린 붉은 화분과 꽃

그리고 멋지게 모자이크로 처리된 골목길 앞에서

40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 속에 저절로 빠져 든다.





깔끔하면서도 탐을 낼만큼 예쁘게 손으로 만든 수예품을 파는 가게 앞...

 




중세때부터 존재해서 역사와 문화가 있는 알코바사의 중심지에 위치한 

아담한 광장의 한 가운데에서 이른 아침의 밝은 햇살로만으로도 그냥 행복하다.





오래된 성문을 통과하고...





타일로 모자이크된 골목 가운데 있는 작은 분수도 지나고...





수도원 끝자락에 위치한 바로크풍의 건물도 지나고...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마리아 수도원 건물을 지나서....





광장쪽으로 이동해서...






드디어 목적지인 산타 마리아 수도원 광장과,





유명한 산타 마리아 수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원 광장 앞에서 바라다 보인 파란 하늘엔 제비 서너 머리가 창공을 날고,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성벽이 우리를 반겨준다.







알코바사 산타마리아 수도원은 포르투칼의 첫 국왕의 의해서

1153년에 설립된 수도원으로

중세기 유럽에서 가장 권위있고 유서깊은 수도원 중 하나이다.

이 수도원의 성당은 포르투칼에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최초의 성당이기도 하고

당시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포르투칼에서 가장 큰 성당이기도 하다.





알코바사 수도원의 역사


1147년 3월에 알퐁소 엔리케스는 Santarém에서 펼쳐질 무어족과의 전투에 앞서서

만약에 신이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면 수도원을 짓겠다고 맹세를 한다.

전투에서 이긴 엔리케스는 드디어 무어족을 포르투칼에서 밀어내고

포르투칼의 첫 국왕으로 등극했고, 

약속대로 1153년에 산타 마리아 수도원을 창설해서

 수도원을 십자군 원정때에 큰 역할을 했던

시토회 소속의 수도원장인 베르나르 클레어보 성인

(Bernard of Clairvaux)에게 넘겨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베르나르 수도원장이 세상을 떠나자,

대부분의 시토회 소속 수도자들이 알코바사로 몰려 들었는데,

거처할 곳이 없어서 수십년동안 수도원이 완공될 때까지

임시로 간단하게 지어진허접한 건물에서 지냈다.

1178년에 시작된 수도원과 공사는 

45년 후, 1223년에 완공이 되어서 수도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원래 수도원 건물의 건축 양식은 현재 알 수 없지만,

성 베르나르 성인이 1115년에 프랑스 클레어보에 창립한

블레어보 수도원 건물을 본딴것으로 추정된다.

클레어보 수도원 건물이 현재 남아 있지 않기에

시토회 수도원 창립 초기 당시의 건축양식을 

오히려 원래를 본딴 산타마리아 수도원이 역사의 증인역으로 남게 되었다.

수도원 대성당이 1252년에 완공되면서 당시 포르투칼에서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13세기 후반에 디니스 1세 왕이 고딕 양식으로 봉쇄수도원을 증축했다.


수세기에 걸쳐서 알코바사의 수사들은 포르투칼의 문화와 역사에 큰 공헌을 했고,

알코바사의 도서관은 포르투칼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13세기와 14세기에

포르투칼을 통치했던알퐁소 2세, 알퐁소 3세 와 그들의 왕비들,

그리고 세기의 연인으로 알려진 페드로 왕과 내연관계의

카스토로의 이네즈 공주가 이 수도원에 묻혔다.


마누엘 1세 통치 중엔 수도원 건물에 2층과 새로운 제의방이

아주 기교적이고 정교한 장식이 특징인 마누엘린 스타일로 증축이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서 수도원 확장공사와 새 성당탑이 세워졌다.

1755년에 포르투칼 서부지방을 강타한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

운좋게도 이 수도원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수도원의 전성시기에는 300여명의 수도자들이 이 곳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이처럼 포르투칼 뿐 아니라 유럽에서 주요한 수도원이던 알코바사 수도원은

1810년에 포르투칼을 침범한 프랑스 군인들이 유명한 도서관의 귀중한 고서들과

희귀한 manuscripts 들을 약탈하고, 왕의 무덤을 도굴해서 유품들을 빼내고,

성당 내부의 일부를 불을 지르고 귀중품들을 훼손하기도 하고 약탈해 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프랑스 군인들에게 약탈되지 않았더 남은 물건들을

1834년에 발생한 anti-clerical riot(반 종교단체 폭동사태) 때에 소실되었고,

곧 포르투칼 내에서 수도원과 수도생활 제도를 없애는 법을 도입하면서

알코바사 수도원에 거주하던 마지막으로 남은 수도자들이 떠나게 되는 운명을 맞았다.


알코바사 수도원은 1989년에 '수도원의 규모, 최고의 건축양식, 건축 자재의 아름다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시토회 수도원 걸작품' 을 인정받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서쪽 Façade (성당 앞쪽)


이 façade 는 시토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어서

후에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졌다.

성당 대문과 그 위의 로즈 창은

1178-1252년 사이에 첫 수도원 공사때에 지어졌다.




서쪽 façade 입구 왼편의 조각상





서쪽 façade 오른편


이 두 조각상들은 18세기에 건축가 조아옹 투리아노의 의해서 추가되었다.









오래된 목조 대문을 통해서 수도원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원 성당 내부


성당 내부의 길이는 106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인데,


시토회의 모토인 청빈과 심플 라이프와 걸맞게

아무런 장식이나 기교없는 내부와

천상을 염원하듯 높다란 수직선의 벽으로 이루어졌다.











천장의 높이는 20미터에 달하고

지붕의 vaults 는 다수의 거대한 기둥과 아치가 무게를 떠받쳐 주고 있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에 비해서

조촐한 신자석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이 특이했다.





성당 중앙 복도에서 입구쪽으로 본 모습

성당 내부에 전등의 도움없이도  높다란 고딕 양식의 벽에 설치된

로즈 윈도우와 창을 통해서 햇빛이 들어와서 성당 내부가 예상보다 훨씬 밝았다.





아침시간인데도 벌써 땡볕 더위인데도 불구하고

내부는 오히려 시원하면서도 경건하고 평화로웠다.









 수호성인들의 채플



 

 

 제대




 

수도원 내의 성당답게 화려한 장식이나 그림, 그리고 조각상들이 배제된

깔끔하고 단촐한 제대가 오히려 우리의 맘을 압도해 왔다.




 

 

제대 뒤의 커다란 창을 통해서 환한 빛이 스며들고 있다.




 제대 테이블




 제대 앞에 한참 서 있는 남편

 



제대 오른편


 


 거대한 기둥 사이에 방문한 신자들이 잠시 묵상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고 있다.


 







 20미터가 넘은 높다란 천장의 vaults


 


 



 

 




아마도 알코바사에서 가장 유명한 카스트로의 이네즈 공주의 무덤(석관) 앞에 선

남편과 이날 가이드와 운전수를 자청해 준 사돈 아저씨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