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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포르투갈

[포르투칼 여행41]알코바사에서 바탈랴로... (from Alcobaca to Batalha, Portugal)

by Helen of Troy 2018. 4. 16.




바탈야 산타 마리아 수도원



 


알코바사 산타 마리아 수도원 옆 광장에 위치한 pastry 가게로...





이 가게는 알코바사에서 200여년간 같은 자리에서 이어온다는 베이커리라고 한다.





포르투칼은 그들 특유의 다양하고 맛난 페이스티리로 유명한데

알코바사에서 제일 오래되고 맛나다는 이 베이커리도

포르투칼 전통적인 과자들이 즐비하게 진열이 되어서

침샘을 자극한다.





한 입씩 다 먹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해서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진열대를 두세번씩 왔다갔다 하다가...





유명한 포르투칼 전통적인  패이스리 중에서도

위 진열장 가운데에 보이는 파스텔 데 나타( pastel de nata)라고 불리우는

계란 타르트(egg tart)가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인기도 높다.





포르투칼 전통적인 패이스트리를 열심히 설명하는 사돈 아저씨..




"Special of the Day" 당일 스페샬 패이스리..





결국엔 또 다시 Egg Tart 세가지 종류를

진한 에스플레소와 함께 먹고나니 기운도 나고

그냥 마음이 행복해졌다.





빵가게 옆 2층에 있는 그릇가게


 


 도자기와 타일로 유명한 포르투칼의 전통적인 도자기들이

가게 앞에 전시되어서 발목을 자꾸 붙잡는다.


 


가게에 진열된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의 바르셀로스 수탉들..

독특하고 화려해서 선물로 주려고 가볍고 깨지지 않은 나무 소재 수탉 네마리를 샀다.



 바르셀로스 수탉(Barcelos Rooster)은 포르투칼의 비공식적인 상징이다.

그래서 포르투칼 어디서도 쉽게 만나 볼 수 있고,

기념품 가게에서도 수탉으로 디자인된 다양한 아이템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타일과 타올과 에이프런에 수탉이 수놓인  수예상품들이 인기가 높다.


전설에 의하면 15세기에 바르셀로스에서 연속적으로 범죄가 발생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자,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어느 날 남루하게 입은 한 순례자가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로 가다가

바르셀로스를 지나게 되었는데, 범인으로 몰린 그는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를 교수형을 내린 판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자 그의 요구를 들어주어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는

판사한테 그를 데리고 갔다.

다시 그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그는 식탁에 놓인 닭요리를 가르키며,

그가 교수형을 당할 때에 상에 놓인 수탉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울 것이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고, 판사도 그의 주장을 무시했지만,

상에 놓인 닭요리를 먹지는 않았다.


판결대로 교수형에 오른 그의 목이 올가미가 조여질 때에

그가 예언한대로 상 위에 놓여진 익혀진 닭이 나타나서 군중들 앞에서 계속 울어댔다.

큰 실수를 범한 것을 깨달은 판사는 얼른 달려 가서 그를 구해 주었다.

산티아고로 순례를 다녀 온 그는 다시 바르셀로스를 찾아와서

그를 구해 주해 준 성모 마리아와 제임스 성인 그리고 수탉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조각했는데,  '수탉의 주님 십자가' 로 불리우는 이 십자가는

현재 바르셀로스 고대 박물관에 지금까지 소장되어 있다.


 


푸른 색이 아름다운 유명한 포르투칼 도자기들...


 


 눈을 잘 호강시켜 주고 가게를 나왔다.





 오래된 나무와 청동 소재 대문,

화사하면서도 견고한 타일,

그리고 오래된 돌로 박힌 골목길이 중세의 알코바사를 연상케 해 준다.

(벽의 전깃줄만 없다면...)


 


타일로 장식된 도자기 가게 2층

 

 


 포르투칼 풍의 다양한 도자기들이 윈도우에 진열이 되어 있다.


 



 중세기부터 수도원 옆에 위치한 아름답고 고풍스런 골목길


 


 눈길을 끄는 여행자들을 위한 사무실


  

 


 

 



알코바사 동네의 중심 광장





광장 주위에 위치한 화사한 블루 타일로 장식된 건물



 


타일뿐 아니라 발코니 그리고 기다란 창이 있는 이 건물도 너무 맘에 든다.






 그 옆집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바탈랴로 가는 중에...


 


소란스럽기도 하고 길도 번잡해서 내다 보니...


 


부근의 농가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트랙터들이 총출연해서

음악을 틀고, 천천히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었다.

 

 


 


 


트렉터들의 줄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동하도록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해 주고,

우리를 포함해서 다른 차들은 군소리없이 경적을 울리면서

그들의 퍼레이드에 흥을 돋구어 주는 모습이 여유가 있어 보여서 맘이 푸근해진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다양한 트랙터의 모습에 지루한지 모르고 기다리게 된다.


 

 


 

 

 


 


 


   로마인들이 즐겨 입던 토가를 입은 젊은이들이

그들이 지나가도록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올린다.

모든 차들은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 주다 보니

색다른 퍼레이드의 행렬도 다 지나가서

목적지인 바탈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탈야 (Batalha)


드디어 바탈야의 유명한 산타 마리아 수도원에 도착했다.


이 동네 이름인 바탈랴는 '전투'(Battle) 이라는 뜻의 포르투칼 말인데,

그 연유는 포르투칼 역사 상에 남을 중요한 전투가 이곳에 벌어져서

승전을 한 곳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말을 탄 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의 동상






 페레이라 동상은 1966-68년 사이에

조각가 레오폴두 데 알메이다씨가 제작했다.


 


 

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씨는

스페인과 포루투칼 벌어진 알주바로타 전투에서

포르투칼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무찌른 장군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리스본에 위치한 칼멜 수도회 소속인 카르무 수도원에서 

평범하고 청빈한 수사로 생을 마쳤는데,

2009년에 베네딕토 16세에 의해서 성인으로 추대되어서

성 누노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올캐의 성도 같은 페레이라 라서 먼 조상뻘이라고 한다.)


 


기온은 살인적으로 38도여서 나무 그늘이 없는 수도원 광장은

열기로 지글지글거렸다.

 

 


산타 마리아 수도원 입구 앞에서 우리 부부


 

 


태어난 곳이 이 지역인 사돈 부부도..


 


산타 마리아 수도원의 아름다운 facade



알주바로타 전투는 (The Battle of Aljubarrota)

1385년 8월 14일에

포르투칼 왕국과 스페인 카스틸 왕조 사이에

포르투칼의 독립을 할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포르투칼에겐 아주 중요한 전투였다. 

포르투칼 군대는 영국이 보내 준 보충 군력과

 조아웅 1세 국왕과 누노 알바레즈 페레이라 장군이 이끄는 7,000 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졌고

스페인 군대는 카스틸 왕조 후안 1세 국왕의 군대와 (아라고네즈 군대

그리고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보내준 보충 병력까지 32,000명의 군인들이 

포르투칼 중부에 위치한 알코바사와 레이리아 사이에 있는

사웅 조르제 평원에서 맞붙게 되었다.



알주바로타 전투를 묘사한 중세기의 manuscript



그런데 중세의 기사도에 어긋나게

포르투칼 기사들이 말에서 내려서 리스본으로 가는 이동로를 차단하면서 방어라인을 구축하자,

성질이 급한 스페인 기사들 일부가 포르투칼 기사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발끈해서

성급하게 먼저 진격을 해서 공격을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던 포르투칼의 아군인 영국군이 쏜 400여개의 화살이 그들에게 날아 들자

당황한 그들이 후퇴를 하자, 포르투칼 군대는 그들을 뒤쫓기 시작해서

그들이 스페인 영토까지 밀어 내어서 소수의 군대가

전투가 시작된지 불과 30분 만에 막강한 스페인 군대를 물리쳐서

포르투칼의 독립을 얻었고,

새로운 아비즈 왕조(House of Aviz)가 재건되었다.


이 중요한 승전을 기념하고 성모 마리아의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서

바탈랴 산타 마리아 수도원 (Santa Maria da Vitória na Batalha)과

바턀랴 도시의 건설을 명령에 의거해서

1388년에서 1533년 약 150여년간에 걸쳐서 완공되었다.

이 수도원 내부에는 조아웅 왕을 비롯해서 왕비 필리파와

그들의 아들들이 묻혔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수도원 외벽 소재는 석회암인데

수백년간 세월동안 따스하고, 장미빛나는 황금색깔로 서서히 변했다.

이 입구는 1755년의 대지진으로 파손된 것을 복구했다.


가운데 예수님과 4명의 예언자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아치 끝 부분에는 두개의 의장(coat of arms) 이 새겨져 있는데,

오른편에는 포르투칼 왕조의 것과

왼편에는 영국 출신인 조아웅 1세의 아내 랭커스터 가문 출신의 

필리파 가문의 의장을 새겨서 수세기동안 

포르투칼과 영국과의 끈근한 유대감을 나타내 준다.


 

 

 

입구 아치 위는 여섯개의 천상의 트랙으로 이루어졌는데,

아래부터 첫번째 트랙은 날개달린 천사들이,

두번째는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로 이루어진 밴드가,

세번째는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이,

네번째 트랙에는 성경에 등장하거나 실존했던 왕들,

다섯번째는 순교자들이

여섯번째는 다양한 여성 성인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여섯개의 트랙을 주관하는

예수님과 4명의 예언자들이 가운데에 들어 서 있다.

 

 

입구 양쪽에는 12 사도들이 서 계시고

(입구 왼편)



입구 오른편





 사도들과 여섯개의 트랙








기둥을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들...


 






수백년동안의 세월로 아름다운 골드 색상으로 변한 석회암 소재 외부




입구 오른편엔 가고일(gargoyle) 이 우리를 여전히 내려다 보고 있다.

 



 

 

계속해서 수도원 내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