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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독일

[독일 여행35]베를린/티어가튼/러시아 전사자 묘지/분데스탁/포츠다머 광장/찰리 검문소 etc.

by Helen of Troy 2020. 5. 18.


 독일 베를린 오래된 중심지

(2013년 7월 11일: 임시저장고 대방출)



베를린의 심장부인 Mitte/미테를 가로지르는

넓다란 Unter den Linden/운터 덴 린든 거리





운터 덴 린든 거리는 브란덴부르크 대문을 가로 질러서 

베를린의 구도시를 동서로 이어진다.




독일 순회 합창공연 중에 세번 공연이 계획된 베를린에서

이틑날 아침 9시 15분부터 버스를 타고

친절한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면서 

베를린 도시를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냉전 시대에 동독내에서

동서로 나눈 유명한 베를린 장벽이었다.



한때는 서로 총을 겨누고 대치했던 벽이 이제는 다양한 벽화로 꾸며져 있다.



베를린 장벽에 그려진 다양한 벽화는 아래로 클릭하시면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nh_kim12/17201009





Altes Museum/구 박물관 앞 광장에 잠시 멈추었다가

운터-덴-린덴 거리 서쪽으로 향했다.





훔볼트 대학교 건물





프리드리히 프러시아 국왕 동상도 지나고..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유럽에서 살해된 유대인들의 추모 조형물


3,000개의 상징적인 직사각형 모양의 기둥들이 설치되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살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Monuments for Dead Russian Soldiers during the WWII

세계 2차대전 중에 전사한 러시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세워진 묘지

(버스에서 이동중에 찰칵~)



Monuments for Dead Russian Soldiers during the WWII

세계 2차대전 중에 전사한 러시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세워진 묘지


이 곳에는 세계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4월에서 5월 사이에 벌어진 베를린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이 묻혔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1945년 여름과 가을에 건축되어서

1945년 11월 11일에 헌정되었다.




1990년 12월에 소련군이 독일에 정식으로 넘겨 주었다.




2차 대전중에 파손된 티어가튼에 세워진 전사자의 묘지(1945년 모습)






운터 덴 린덴에서 바라다 본 브란덴부르크 대문

(양쪽에 보이는 숲들이 티어가튼이 들어선 곳이다.)





서쪽으로 걸어서 티어가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티어가튼의 시작은 500년 전인 15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공원은 브란덴부르크의 Elector(도시의 왕) 를 위한 사냥 지역으로 시작해서

1530년부터 주위의 대지를 사 들여서, 정원을 추가했다.


16-17세기에 이 사냥지역은 북쪽과 서쪽으로 넓혀가다가

베를린 도시가 팽창하면서 그에 맞쳐서 지금의 크기로 축소되었다.





티어가튼(Tiergarten)은 넓이가 210 ha 에 달해서

독일에서 시내에 위치한 공원중 세번째로 큰 공원이다.




1881년까지 티어가튼은 왕족의 소유였다가, 후에는

황제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빌헬름 1세 황제가 숲을 소유하는 법을 폐지한 직후,

일반 시민들도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을 변경했다.














서쪽으로 바라다 본 운터 덴 린든 거리

길 끄트머리에 Grosser Stern이 멀리 보인다.






분데스타크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Bundestag/분데스타크 국회의사당 빌딩


분더스타크는 독일의 연방 국회로 직접 독일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로 이루어져서

미국의 하원의원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분더스타크는 이전에 존재하던 Reichstag/라이흐츠타크를 대체하기 위해서

1949년에 독일연방의 기본 법(Grundgesetz)에 따라서 설립되었다.





스위스 대사관





정부 청사 건물들이 들어 선 동네





Reichstag Parliament Building/라이흐츠타크 국회 의사당 건물


이 국회의상당 건물은 독일 제국에 속한 의회로

1894년에 오픈해서 1933년에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 의사당 건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세계 2차대전때에 거의 폐허가 되었다.



1945년 6월 3일의 의사당 건물


그러면서 동독 의회는 동 베를린에 위치한 Palast der Republik 건물에서,

서독은 분데스탁 의회는 서독의 수도였던 본에 소재한 분데스하우스에서 의회가 열렸다.





Reichstag Parliament Building/라이흐츠타크 국회 의사당 건물


이렇게 오랫동안 폐허로 남겨졌다가, 

1990년에 독일이 통일된 후에야 정식으로 보수공사가 시작되어서

1999년에 완공되어서 통일된 분데스타크 의회 건물로 다시 사용되었다.





Grosser Stern/Great Star/"큰 별" 에 위치한 승전 기둥/Victory Column


베를린의 중심인 미테/Mitte 에 소재한 티어가튼 지역에 위치한 이 기념탑은

1698년에 프리드히 3세 왕 통치 중에 대단한 사냥꾼이었던 헴리히/Hemmrich 에 의해 시작되었다.

1742년부터는 이 기념탑은 증축이 시작되어서

1833년에서 1840년 사이에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암으로 만들어진 고대신의 동상들이 추가되었다.





Charlottenburg Gate/샬롯튼부르크 대문





남편과 발로 걸어서 구경한 

베를린의 포츠담 지역



포츠담 기차역




포츠담 광장






Checkpoint Charlie/찰리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는 1947년에서 1991년 사이에

동 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로 막은 베를린 장벽을 통과하는 검문소로

서방 연합군들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광명소가 된 Checkpoint Charlie 검문소


동독의 수상이었던 발터 울브리흐트가 

동 베를린에서 서 베를린으로 망명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서

벽 건설 공사를 소련으로부터 허가를 받아낸 후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예전엔 살벌하게 연합군과 동독군이 대치하던 곳이

이제는 총알을 겨누는 대신, 

아이러나칼하게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이 되었다.



그 후, 찰리 검문소는 냉전과 분단된 독일의 상징으로 떠 오르면서

서방에 자주 뉴스에 오르내렸다.

독일이 통합된 후, 찰리 검문소는 이제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자리잡았고,

그 주위는 냉전 당시의 모습을 담은 박물관이 들어섰다.




찰리 검문소 주위에 설치된 야외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들...

1961년에 미국 육군 검문소 모습






1961년

베를린 장벽 공사 중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중의 검문소 모습




1963년 

냉전이 시작될 즈음

Nikita Khrushchev/소련 서기장 니키타 크루셰프의 방문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베를린 방문시에 들렀던 찰리 검문소





1971년

Four Power Agreement





1972년

부활절 명절을 맞이해서 동서로 갈라진 친척들이 반갑게 만나는 모습




베를린 장벽의 부분이 전시되어 있다.






1962년 8월 17일


위험을 무릅쓰고 장벽을 넘어서 서 베를린으로 망명하다가 안타깝게 죽은

페터 페흐터의 이야기





Peter Fechter


1962년 8월 17일 당시 18세였던 페터 페흐터/Peter Fechter 와 한 친구가

지머 거리/Zimmerstrasse 의 장벽을 넘는 시도를 했다.

그들을 망명을 막기 위해서, 국경 보초병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고,

그의 친구는 성공적으로 장벽을 넘었지만,

페터는 다수의 총알을 맞아서, 동 베를린 쪽 장벽 바로 아래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서 베를린 경찰은 이런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불법이었고,

가까이 있는 연합군의 찰리 검문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한 시간 후에, 피를 너무 흘려서 사망한 그의 시신을 동독 국경대가 와서 거두어 갔다.


1997년 3월 베를린 법원은 당시 총을 쏜 롤프와 에리흐씨 두 보초병에게

1년 9개월형과 1년 8개월 형에 처했지만,

직접 형을 집행하지는 않았다.





1965년 




1974/75년

망명을 시도한 니링 & 할리의 모습



부르크하트 니링/Burkhard Niering 은 동독의 시위진압 경찰대원이었다.

1974년 1월 5일, 저녁 7시반에, 당시 23세된 니링이 

경찰복을 입고, 총을 소지한 채 여권 심사 보초병 한명을 인질로 삼아서

그를 방패삼아서 첫 벽은 무사히 건넜지만,

두번째 벽을 넘으려고 아래로 몸을 숙이다가, 인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되자

바로 보초 막사에서 그를 향해서 총을 쏘아댔다.

그는 같은 날 밤 9시경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1975년 4월 3일, 당시 21세였던 헤르베르트 할리씨가 

서 베를린으로 망명을 시도해서,

서 베를린으로 가는 마지막 벽만 남기고, 안타깝게도 경보음이 울렸다.

한 보초병이 경고 사격을 하자, 그는 다시 발을 돌려서 동 베를린쪽 벽으로 올라가던 중에

그를 겨눈 총알이 등에 박혀 버렸다.

중상을 입은 그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그날 밤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사망 소식은 베일에 감추어졌다가

1995년에 동독이 사라지면서, 이 사건이 밝혀지게 되었다.




1986년의 검문소 모습







1988년 7월  19일 

서 베를린으로 망명하려다가 붙잡힌 라이너 B.


냉전도 끝난지 오래되었지만,

자유를 찾아서 이처럼 망명을 하려다가 목숨까지 잃은 사연을 읽으면서

분단국가의 아픔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이 자전거도 빌려 타고 잠시 알렉산더 광장을 돌다가 베를린 돔쪽으로...





슈프리 강 다리에서 맛난 핫도그를 파는 원맨 자판기 맨




슈프리 강가의 베를린 돔 교회




슈프리 강의 유람선





Lustergargen & Altes Museum

돔 바로 옆에 위치한 루스터가튼과 구 박물관





Altes Museum




루스터가튼의 분수





루스터기튼, 베를린 돔 & 남편








 Old National Gallery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