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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Books

'100점의 유물로 본 인류의 역사' 3편(4,000-2,000BC)/'A History of the World in 100 Objects' by Neil MacGregor

by Helen of Troy 2024. 3. 27.

 

1987년부터 2002년까지 대영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했던
 닐 매그레거/Neil MacGregor 씨가
BBC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15분간 100 회에 걸쳐서
인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100 점을 소개하는
'A History of the World in 100 Objects'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4년 동안 준비 과정을 거친 이 프로젝트는 
2010년 1월 18일부터 20주간에 걸쳐서
BBC 라디오 방송에 중계되었다.
아울러 2010년 10월 28일에
이 시리즈 전체를 기록한 내용을 담은
책이 출판되었다.

 

 

PART THREE/3부

THE FIRST CITIES AND STATES/최초의 도시와 국가

4,000 - 2,000 BC

 

기원전 5-6,000 년경에

북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강유역에서

최초의 도시와 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이라크, 이집트, 이집트, 파키스타과 인도에서

부락보다 큰 규모의 공동체 혹은 도시가 생겨났고,

지배자나 왕의 존재와,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울러, 이 시기에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문자도 발달되기 시작했다.

 

이때에 생겨난 이집트, 이라크 지역의 첫 문명권은

전투적이고 도전적이었다면,

반면 인두스 유역은 대체로 평화를 유지했다.

 

 

11.  King Den's Sandal Label/덴 왕의 샌들 레이블

Hippopotamus ivory label/하마의 뿔, 5 cm

found at Abydos (near Luxor), Egypt

이집트 아비도스에서 발굴

around 2985 BC

 

현대 도시와 비슷하게 고대에 형성된 첫 도시 역시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인두스 강

그리고 나일강 유역에 인구 밀도가 높고

복잡한 도시나 국가를 통치하고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력을 선택했다.

 

파라오가 등극하기 전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의 서쪽 강변과 동쪽 강변으로,

그리고 지중해에 가까운 북쪽과 남쪽 유역으로 갈라져 있었다.

매년 범람하는 나일강 덕분에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남아도는 곡식도 비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범람 지역 외에는 추가의 농지가 전혀 없었기에

이 한정된 구역을 차지하고자 분쟁이 자주 발생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강 남쪽 유역 출신이 

나일강 하류의 델타 지역을 장악하면서

최초로 이집트를 통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통일된 이집트 초반의 파라오 중 하나였던

덴 왕도 현대의 국가의 리더와 마찬가지로

국가나 도시를 지배하고 관리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하마 뿔로 만든 샌들 레이블은 샌들의 주인공인 파라오가

왕이 쓰는 두건을 쓰고 한 손은 채찍을, 다른 한 손은 전곤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전투에 참가해서, 그의 발아래에 있는

적군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모습이 새겨졌다.

 

이 자그마한 레이블은 인류 역사상

리더가 전투의 총사령관으로 적군을 무찌르는

최초의 지배자의 모습을 묘사한 중요한 유물이다.

이미 이 시기에 심플하면서도 계산된 이미지를 통해서 

통치자의 권력을 투영한 셈인데

현재에도 같은 방식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불편한 현실이다.

 

 

 

12.  Standard of Ur/우르의 표준

Wooden box inlaid with mosaic/라피스라줄리와 조개껍질 모자이크 & 목재박스

Found at the royal cemetery of Ur, Southern Iraq/우르의 무덤, 남부 이라크

2,600 - 2,400 BC

 

약 5,000년 전부터 강 유역에서 최초의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불과 수세기 사이에 인구 밀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인류의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더 나아가서 이집트라는 통일 국가가 형성되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농업으로 생겨난 잉여 곡식 덕분으로 도시 형성이 가능하게 되면서

인류 역사상 상상할 수 없는 30,000-40,000명 인구가 밀집해 살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제일 잘 알려진 도시는 

수메리아 도시인 우르/Ur이다.

이 도시는 유명한 고고학자인 레너드 울리가

1920년대에 발굴되었는데, 

이곳에서 발굴된 왕족의 무덤에서 다양한 유물이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위에 보이는 "우르의 표준"이다.

 

이 유물을 발견한 Wolley 씨는 "평범해 보이는 유물의

정확한 용도를 알 수는 없지만, 무덤에서 발굴된

어느 값비싼 장신구보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가장 중요하고 멋진 유물이다." 하고 밝혔다.

그가  "표준"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이 물건이 전투지로 향하는 행군할 때에

깃발 꼭대기에 이것을 달고 출전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이라크 고고학자 라미아 알-갈리아니 박사는

"불행하게도 이 유물의 용도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유물 자체로만으로도 수메리아를 대표하는 대단한 물건이다.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고, 화려하며,

수메리안 인들이 얼마나 멀리 이동했는지 대변해 준다:

파란 라피스 라줄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붉은 대리석은 인도에서,

조개껍질은 페르시아 만에서 수입되었다."라고 

이 유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인간이 제작한 것은

만든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 나무, 뼈, 도자기 등 주로 한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그에 반해서 이 유물은 먼 곳에서 반입한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 것이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재미난 사실 하나는 이 유물을 제작할 때에

다양한 피스를 조합하는 데 사용한 비투멘/Bitumen이

유일하게 이 지역에서 나온 소재인데

현대에 들어와서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바로 이 비투멘이 오일이다.

 

 

 

13.  Indus Seal/인두스 도장

Stone Stamp

From Harappa, the Indus Valley(Punjab), Pakistan/파키스탄 하라파에서 발굴

2,500 -  2,000 BC

 

티베트의 고원에서 시작해서 아라비아 해로 흘러들어 가는

비옥한 인두스 강 하류 유역에서 발생한 인두스 문명의 도시는

52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고, 도시계획에 의해서 개발되었다는 것이

발굴 과정에 밝혀졌다.

 

돌 소재로 제작된 도장은 인두스 지역만이 아니라 

멀리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걸쳐서도 발견되었다.

위의 도장은 1850년대에 하라파에서 발굴되었고

지속적으로 하라파 지역 부근에서 다수의 도장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기원전  3,000-4,00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냈지만,

도장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었다.

 

이 도장들의 발굴로 인두스 문명의 시기도 훨씬 앞당겨지게 되었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처럼 무역과 산업이 발달되고, 

문자도 발명되었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인두스 문명의 가장 큰 도시인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의 인구는

약 3-4만 명으로 추정되고 바둑판처럼 그리드로 구역을 나누어서

도시 계획에 따라서 주택도 지어졌고, 

상수도와 하수도 시스템도 갖추어진 것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와 달리

도시를 관리할만한 파라오나 왕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고,

타 지역으로부터 침입 흔적이나 전쟁을 벌인 흔적이나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견고한 성곽도 없었고,

주택들도 빈부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대부분의 발굴된 도장들은 동물의 모습이,

그 위에 몇 개의 사람의 형상이나 심벌들이 새겨졌지만

 

파라오나 왕의 거대한 무덤도 없고,

사후에 매장이 아니라 화장을 해서 사후를 위한 유품도 없고

그들이 사용했던 문자를 해독하지 못해서

현재까지 도장의 용도나 의미를 밝혀내지 못했지만

찬란했던 인두스 문명의 존재를 확실히 남긴 귀중한 유물이다.

 

 

 

14.  Jade Axe/옥 도끼

Found near Canterbury, England/영국 캔터베리 부근에서 발굴

4,000 - 2,000 BC; 21 cm long x 8 cm wide

 

옥으로 만들어진 이 도끼는 

5,000여 년 전에 농업의 번창으로 고대 문명 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나 인두스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의 캔터베리에서 발견된 도끼이다.

 

이 눈물 모양으로 제작된 도끼는

당시에 제작된 다른 도끼보다 두께가 얇고

넓이가 조금 더 넓고,

보통 도끼와 달리 손잡이가 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만든 지 약 5,000여 년이 되었지만,

마치 새로 만들어진 도끼처럼 사용된 흔적이 없고,

여전히 도끼날은 아주 날카로운 것으로 미루어 봐서

도구로 사용하기보다는 장신구로 사용했다고 보인다.

 

옥은 오랫동안 중국이나 중미에서 주로 사용되어서

유럽에서는 선사시대에 옥 소재로 제작된 물건이 없어서

고고학자들은 이 도끼에 사용된 옥의 출처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피에르 안느-마리 페트러큉 프랑스 고고학자 부부가

12년간의 찾아 돌아다닌 끝에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의

해발 2,000-2,200 미터에서 선사시대의 옥 채석장을 드디어 찾아냈다.

그리고 이 도끼에 사용된 옥도 여기서 채석된 것도 밝혀냈다.

 

이처럼 높고 험난한 채석장에서 어렵게 발견한 옥광에서 캐낸

크고 육중한 옥 덩어리를 일차적으로 다듬을 수 있는 장소까지

200km를 운반해 내려와야 했는데, 이 자체로만으로도 큰 업적으로 남는다.

이렇게 일차적으로 다듬어진 옥을 북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무거운 옥을 지고, 걸어서 2,000km 떨어진 캔터베리까지 운반해서

그제야 도끼날로 제작되었다.

 

옥은 돌 중에서 가장 다듬고 조각하기 어려운 소재로

도끼날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땀의 결실이었기에

더 의미 있는 유적이다.

 

 

 

15.  Early Writing Tablet/기록이 새겨진 태블릿

Clay tablet

Found in southern Iraq

3,100 - 3,000 BC

 

인류가 수 천년에 걸쳐서 이룬 많은 업적 중에서

문자와 쓰기야말로 단연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인류의 발전과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데 

이외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인간들이 처음 기록한 내용은 대단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진흙 태블릿에 쓴 맥주 배급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진흙은 글쓰기에 최고의 미디엄은 아니지만,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유역의 진흙은

세계 최초의 도시를 건설하고, 도자기를 만들고,

심지어 최초 문자를 기록하는 태블렛 소재로 사용되어서

인류 고대 문명사회에 중요한 미디엄이었다.

 

역사학자들에겐 이 진흙 태블렛 미디엄이 아주 중요하다.

고대 중국에서 사용했던 대나무 소재는 빨리 썩었고,

이집트에서 사용했던 파피루스 역시 습도에 약하고

쉽게 바스러지는 약점에 내구성이 약하다.

반면 부드러운 진흙은 억새 필기도구로

쉽게 글자나 디자인을 눌러서 기록할 수 있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구워지면

아주 단단하고 내구성이 좋아서

5,000년이 넘은 현재에도 상태가 양호해서

기록된 내용을 비교적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맥주 배급 내용이 기록된 이 자그마한 태블렛은

세 개의 수평선과 네 개의 수직선으로 나뉘어서

생긴 박스 안에 새겨진 내용을

오른쪽에서 왼쪽, 그리고 위에서 아래 방향 순서로 기록되었다.

 

맥주를 상징하는 심벌은 당시 맥주 저장을 했던

아래 부분이  뾰족한 항아리로,

배급은 사람의 머리 모습과 술잔의 모습으로,

그리고 배급양은 박스마다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배급된 맥주의 수량을 기록했다.

 

약 5,000여 년 전에  최초의 도시와 국가가 생겨나면서

리더들은 그전과 다른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수백 명 단위의 마을이 아니라, 수만 명의 주민들에게

군사적인 힘과 그의 이데올리기나 명령을 선포하고

비대해진 도시를 관리하기 위해서 그때마다 내뱉는 말이 아니라

문자로 남겨야 하는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최초의 문자/그림은 도시와 주민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한 기록이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맥주는 

인부들에게 임금으로 배당할 정도로 중요한 음료수였다.

그냥 보면 하찮고 작은 태블렛에 이 기록은

결국 법, 화폐, 무역, 고용이 관한 기록의 시작에 불과하며,

종국엔 이런 현실적인 내용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기록하는 문자로 이어지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해 준 유물이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