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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Helen/헬렌의 일상에서

오래된 우리집 밥솥

by Helen of Troy 2008. 12. 15.

지난 금요일 오후 2시에는 동부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큰딸이

넉달만에 크리스마스 휴가라서 목요일에 마지막 시험을 치루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키가 작은편인 큰딸 키만한 첼로를 비행기 여행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 일부러 돈을 주고 빌린 확실하게 견고한

heavy-duty cello case에 넣어 가지고 오느라 사이즈가 오버되어서

덤으로 $100 생돈을 내고 왔다고 반가운 포옹을 하자마자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나는 쬐그만 체구로 그 무겁고 커다란 걸 들고 오느라

가슴이 짠하기만 한데

비싼 등록금과 그외 자취하면서 드든 비용을

장학금과 여름방학동안 벌은 돈과 학교 다니면서도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모에게서 단돈 $1도 손을 안 벌리면서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한테

실로 거금인 아까운 생돈 $100 을 도둑이나 맞은듯 그녀석은 그게 꽤나 분하였던지

집에 오는 차에서 두세번 더 불평을 늘어 놓는 딸이

대견스럽고 귀여워 보이기만 했습니다.

 

같은날 5시에는 세미나 발표일로 서울에 잠시 간 남편이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와서

고작 식구는 다섯인데 세군데로 찢어져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한지붕밑에 다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한 테이블에 앉아서 같이 하는 저녁 식사준비로

우선 평소에 잘 안 쓰는 보온밥솥을 닦으려고 선반에서 내려 놓았습니다.

이 밥솥은 내가 결혼직후에 산 밥솥이니까

20년 이상을 함께 하는 밥솥입니다.

오래 써서 낡고 여기저기 흠도 많은 이 솥을 행주로 닦으면서

뜬금없이 만감이 교차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오랫동안 원하고 계획했던 박사공부를 만 30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대학에서 시작한 남편과

직장이 있는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7년간의 박사공부하는 동안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때 단 두식구지만 12인용 큰 솥을 산 이유는

살면서  부엌출입을 하면 뭐가 떨어진다는 집에서

곱게만 자라온 남편이 갑자기 혼자서 자취를 시작한 사람의 아이디어답게

일주일에 한번만 한 솥 가득 밥을 해 놓고

주말에 와서 내가 해 놓고 간 반찬과 함께

밥이 누렇게 되어도 그 밥이 없어질때까지 먹으려는 속셈으로

사들인 전기밥솥이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밥을 해 먹는것이 귀찮기만 했던 남편이

매주 그렇게 한 솥 그득 밥을 해 놓고

무슨 큰일을 해놓은 듯이

주말에 2주에 한번꼴로 오는 나를 의기양양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히 늦게 시작한 공부라서

같이 공부하는 다른 한국학생들은 거의 남편보다 어려서

미혼이거나 아님 갓 결혼한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내가 필라델피아로 내려가는 날이면

남편의 대학후배들이 남편만큼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다들 푸짐하게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을 수 있기에...

앞으로 먹을 2주간의 반찬과 국을 끓여 놓고 가는 걸 다 알고 있는 터라

부르지 않아도 약속이나 한듯이 형수님 보고싶어서 왔다면서

우리집으로 술을 사들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럼 자연히 술안주 서너접시에 전을 후다닥 만들어서 차려 놓으면

밤새 신나게 재미있게 먹고 마시고 늦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7년 박사공부 할 동안

그솥은 혼자 지내는 남편의 끼니를 때우듯 먹는 밥을 일주일에 한번씩 만들어 주고

2주에 한번씩 후배들과 같이 정겹게 먹는 밥을 만들어 준 밥솥이었습니다..

그때 함께한 후배들은 그 학교를 떠난지 16년이 넘었는데도

나나 남편이 서울에 나가면 성대하게 환영모임을 열어주고는 합니다.

 

그리고 에드몬톤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에는

애가 셋이어도 어렸을 때는 한식을 즐겨 먹지도 않았기에

우리 부부는 주로 간편하게 냄비에다 밥을 해 먹었습니다.

그 밥솥은 손님이 오시거나, 큰 명절에나 쓰게 되어서

그 밥솥이 부엌에 나와 있으면 애들도 손님이 많이 오시는 날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커 가면서 한식도 한 두가지씩 먹게 되어서

손님이 오지 않는 날에도 일주일에 두세번씩 솥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몇년 전부터 남편이 직장 관계로 집을 자주 비우게 되고

거기다가 큰딸마저 멀리 떨어진 동부로 대학 진학을 해서

떠나고 나서 다시 그 밥솥은 긴 4개월간의 여름방학을 제외하고는

역시 손님 오실때만 쓰는 솥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다 모인 식구들의 식사를 위해서

선반 구석에서 이제는 오래 써서 여기저기 우그러지고

페인트도 벗겨지고 코드도 오래되어서 안의 wire도 앙상하게 보이게 된

이 솥을 꺼내서 닦으면서

20년 이상의 긴 세월동안

우리 부부와 여러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겨 주고

지난 세월을 대변해주는 초라한 솥의 여러 흠집이

마치 대단한 훈장으로 보이면서

뜬금없이 눈물을 보였나 봅니다.

 

이제는 많이 낡아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사용할지는 모르지만

20년 이상을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함께 하기 보다는

떨어져 사는 시간이 더 많은 우리 가족이 한지붕 아래 함께 할때마다

따뜻한 밥을 만들어 준 고마운 밥솥이자

그리고 그동안 많은 오래동안 외국에서 사는 친지들과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면서 향수를 달래곤 할때에 함께 해 준 밥솥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밥(식사)이 단지 육체적인 배고픔만을 해결해 줄뿐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영혼의 굶주림까지도

채워주는 최고의 fellowship을 선사해주기도 하는

우리 인생에서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앞으로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사용을 못하더라도

20년 이상을 우리 식구와 여러 친구들을 하나로 묶어 준

이 고마운 밥솥을 차마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못 하고

한동안은 잘 모셔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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