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People & Places/우리 동네에서

아름다운 퇴직 이야기 둘...

by Helen of Troy 2010. 1. 10.

 

첫 이야기

 

 

그녀는 에드몬톤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로스 암 센터에서

권위있는 oncologist (암전문의)로서

알버타 대학에서 의과대학 교수로도 활동을 하면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많이 해서 전문지에도 그녀의 글이 많이 발표되기도 하고

또한 그 논문들을 직접 발표하려고 한달에 적어도 두번은 미국과 유럽으로 conference에

초빙이 되어 가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촉망받는 암 전문의사입니다.

 

그녀는 역시 내과의사인 남편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주말을 제외한 주중에는 상주하는 보모(nanny)가 돌보고 있지만 주중 저녁과

회의 참석 차 집을 떠나지 않은 한 주말에는 아이들을 일일히 다 챙겨 주고, 놀아도 주고, 공부도 도와 주고

온 식구가 잘 차려 입고 우리가 다니는 같은 동네 백인 성당에 매주 미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미사가 끝나면 가족끼리 점심 식사를 한 다음에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그리고 일학년에 다니는 세 아이들을

피아노 레슨을 받으로 우리집에 데리고 옵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고, 소탈한 그녀와 죽이 잘 맞아서

어쩌다가 둘 다 시간이 나면 가끔씩 가까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던 그녀가

두달 전에 평소보다 더 신나는 얼굴로 애 셋을 데리고 레슨을 받으러 와서

중대한 발표를 하겠노라고 하더니, 그녀 특유의 큰소리로

"Guess what? I am quitting my job!! Isn't it great?

From now on, we could have coffee a lot more often."

신나게 이러면서 내게  12월 말일로 의사와 교수직을 고만 둔다고 알려 주었다.

그동안 그 긴 전문의 공부하랴, 연구하랴, 학생들을 가르치랴, 그야말로 숨가쁘게

열심히 달려 온 그녀는 지금부터라도 그녀의 가장 소중한 가족,

특히 세 아이들과 자신을 위해서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하기 전에,

굳게 잡고 매달려 가던 그 끈을 놓아  버리고

그동안 소홀했던 엄마, 아내, 친구, 딸 역을 제대로 해 보고 싶노라고 했습니다.

이제 겨우 40대 초반이 그녀는

그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거머 쥔

현재의 위치, 기반, 명예, 돈을 송두리 다 놓아 버리는 이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테고,

또 주위에 많은 분들이 납득하기도 어려웠을 걸로 짐작이 갑니다.

 

나 역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포함한 애 셋을 키우는 엄마 노릇하랴,

끝도 밑도 없이 일이 많은 아내/주부 의 역할을 하느라 

일인 4역을 해 내려면 얼마나 힘이 들고 큰 희생이 따르는지,

그리고 그렇게 공을 들여서 우뚝 올라 간 커리어를  포기할 때까지의 복잡한 심정과 괴로움을

과부 마음 과부가 잘 알듯이,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키가 178cm로 큰 그녀를 매달이듯이 꼭 안아 주면서

용기있는 결단을 잘 내렸다고 등을 두들겨 주면서 함께 눈물까지 찔끔 짜면서 신나 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드디어 어제 전화를 해서 내일 미사 후에 둘이서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자고

제안을 해 왔습니다.  그녀와 나는 직업은 다르지만 여러가지로 너무도 흡사한 구석이 많아서

아마도 일요일 밤 늦게까지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을 질세랴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A  Skater on Lake Louise, Banff National Park

 

 

 

두번째 이야기 

 

약 8년 전부터 제일 친하게 지내 오는 부부 역시 길다면 긴 22년간을 일해오던 식당을 일주일 전에 그만 두셨다.

30대 초반에 한국에서 이민을 와서 지금까지 줄곧 그 곳에서 일을 하셨으니,

그야말로 이 부부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일하시던 식당은 원래 먼저 이민을 오신 그분의 형님이 하시던 식당인데

거기서 제일 허드렛 일부터 시작해서 매니저로 일을 하시던 중에

14년 전에 갑자기 형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로

일요일 제외하고 주 6일을 연중 무휴로 일주일 전까지 그 식당을 잘 꾸려 오시다가

12월 31일에 드디어 퇴직을 하셨다.

 

쓰러지실 당시 이분의 형님에게는 한창 커 가는 고만고만한 다섯명의 자녀가 있었던 상황이어서

작은 아버지 와 작은 엄마인 이 부부가 형님 가족의 생계까지 자연히 떠 맡게 되었다.

그 긴 세월동안 자기의 사업을 시작해서 잘 키워나갔다면

아마 지금쯤 기반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될 소양도 충분히 있었겠지만

몸이 부자유스런 형님의 가족을 부양하느라  

그 14년이란 긴 세월동안 묵묵히 동생은 그저 형님 식당의 월급 사장으로

제수인 그의 아내는 일이 고된 부엌에서 일을 하시면서 이날 이때까지 지내 오셨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다섯 조카 중에 둘이 이 식당을 경영하기로 결정을 보고

지난 두달동안 조카 부부에게 꼼꼼하게 트레이닝을 시킨 후에 그 식당을 지난 주에 조용히 떠났다.

물론 월급 사장으로 일을 해 와서 넘겨 받을 지분도 없고,

두둑한 퇴직금도 없다.

속으로는 어떨셨을런지도 몰라도 그동안 한번도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퇴직을 할 때도 그저 덤덤하게 떠날 때가 좀 지났는데

이제서야 홀가분하게 조카들에게 넘겨 주고

일단 앞으로 일년간 편히 쉬면서

천천히 앞일을 구상 해 보겠다는 이 부부의 얼굴이 참 편하게 보였다.

 

 

 

 

이렇게 떠날 때를 잘 알아서

미련없이

조용히

그러나 당당하게

무대를 떠나는

이 두 친구들이

참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music:   I'm going to live the life I sing about in my song

sung by Ilona Knopfler 

from helen's cd 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