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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About me...Helen/헬렌의 부엌에서

색다른 의미의 빈대떡....

by Helen of Troy 2010. 5. 2.

 

 

 

오늘 부쳐 먹은 빈대떡입니다.  보기에도 군침이 돌죠?

 

 

내게는 내가 결혼 직후에 산 25년이 된 Braun Food Processor가 있다.

그동안 일주일에 서너번을 쓸 만큼 이 기계는 내 부엌에서 긴 세월을 함께 한 고마운 녀석이다.

이 기계로 고소한 빵가루도 만들고, 마늘도 갈고, 고기도 갈고, 콩, 팥도 갈고,

미숫가루도 만들고, 빵도 만들고, 멸치가루도 만들고, 여러가지 채도 썰고 하면서

나의 식탁을 풍성하게 도와 주면서 자랑스런 훈장(?)도 많이 얻었다.

 

그동안 몇번씩 떨어뜨려서 금이 간 곳을 crazy glue로 세번씩이나 땜질을 해서

볼품도 없고 칼날도 무디어져서 참신하고 이쁜 새 모델로 바꾸고 싶은 맘이 있었지만

몇번의 폐기처분에서 용케 살아 남아서 여전히 고장없이 잘만 돌아가는 이 녀석을 아직도 끼고 살아 왔다.

 

그러다가 한달 전에 수퍼마켓에서 평소에 눈독을 들여 오던 기계가 50% 세일을 한다는 말에 혹해서

일단 사들고는 왔지만 박스에서 그대로 쳐박아 두고 여전히 손에 익은구닥다리 기계를

어제에도 당근 케이크를 만드는데 부려 먹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 뒷마당 정원에서 올해 처음으로 수확한 싱싱한 파를 한 소쿠리 뜯어서 들고 와서

무엇을 해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빈대떡을 부치기로 결정을 보고

올해 첫 수확인만큼 기계도 새 것으로 써야 제격인것 같아서

곱게 한달간 모셔 두었던 새 기계를 드디어 박스에서 꺼냈다.  

그리고 새 놈을 물에 깨끗이 씻어서 닦은 후에 전기 코드를 꼽고 시운전을 해 보려고 하니

갑자기 25년 긴 세월을 몸도 망가지면서까지 장기 봉사를 해 온 충직한 옛 녀석에게

아직 망가지지도 않았는데도 하루 아침에 배신을 하는 것 같은 생각에 잠시 주춤해졌다.

비록 기계지만 그런 서운한기분이 들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러니 잠시 쉬라는

얘기를 토닥거리면서 해 준 다음에서야 전기 코드를 꼽았다. 

 

  

왼쪽은 Kitchenaid 사의 새로 구입한 food processor 이고 오른쪽은 25년간 써 오던 Braun 사의 상처 투성이의 노장 기계이다. 

 

 미리 불려 놓은 녹두를 넣고 스위치를 누르니,

예전것보다 소음도 작고, 돌아가는 소리가 벌써 날렵하다.  조금씩 설레이기도..

 

 

갈아진 녹두를 그릇에 비워 보니

마치 blender에 갈은 것처럼 아주 곱고 땟깔도 좋다.

의리도 없이 왜 진작에 이렇게 성능좋은 기계를 마다하고

구닥다리를 끼고 오래 산 내 자신이 조금씩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단 한번의 사용으로 바로 변심한 나는 역시 속물근성의 아줌마임에 틀림없다.

 

아주 곱게 갈려진 녹두... (당장 내일은 콩국수도 맹글 생각을 해 본다)

 

금방 밭에서 따 온 싱싱한 파..

 

평소에 빈대떡을 만들 때는 돼지고기를 갈아서 넣고,

또 불린 고사리와 숙주나물도 넣어서 만들지만

왠지 오늘처럼 봄철 오후에는 좀 가벼운 맛으로 부치려고

넉넉하게 파를 많이 넣고 참기름과 국간장과 마늘과 버무린 잘 익은 김치만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반죽을 만들어 보았다.

 

 

예상했던대로 깔끔하고 담백한 맛의 빈대떡이 이렇게 짠~~~  

 

 

갑자기 집에 항상 있는 포도주보다

막걸리가 땡긴다.

 

 

고소한 빈대떡을 먹다 보니 한쪽 구석에 처량하게 놓여진 옛기계가 눈에 들어 왔다.

왜 갑자기 초라한 그녀석의 모습에

나 역시 언젠가 점점 나이가 들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

저렇게 천덕구러기처럼 푸대접을 받는 내 모습이 머리에 스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