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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People & Places/우리 동네에서

아름답고 조용한 3월의 눈길을 홀로 걸으면서...

by Helen of Troy 2012. 3. 6.

 

 Whitemud Park, on March 1, 2012

 

 

 

              올해 겨울은 지구의 온난화 덕분인지 착하게도 그리 춥지도 않고, 눈도 많이 내리지 않다가 

막판에 겨울 동장군이 다음 타자인 봄에게 순순히 바통을 내어 주기가 싫었던지

2월 마지막 주에 약 30 cm의 폭설이 내려서

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희망을 시원하게 한방에 날려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하얀눈으로 온 세상을 깨끗하게 덮인 멋진 설경을 보니

아름답기 그지 없기도 하고, 봄이 오기 전 올해 마지막으로 내린 눈이라는 생각에

궁시렁 거기기 보다는 이왕 내린 눈을 맘껏 즐겨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Howrelak Park 

 

에드몬톤 시내에서 제일 큰 공원인 Howrelak Park는

전 에드몬튼 시장의 이름이 붙여진 공원이며

강을 따라서 죽 설치된 피크닉 테이블과 바베큐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으며

호수에서 스케이트도 탈 수 있고, 여름엔 보트나 패들 보우트를 타기도 하고,

크로스 컨트리 스키도 즐길 수 있고,

야외 음악당에서 심포니 연주회도 즐길 수 있기도 하고,

특히 강북과 강남을 끼고 놓여진 멋진 자전거 길 등등이

모든 시민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처를 제공하는 곳이다.

 

 

 지금 기온은 영하 11도, 그리고 바람도 별로 없어서

산보하기에 아주 적당해서 차에 늘 실고 다니는 편하고 두툼한 부츠로 갈아 신고

카메라도 목에 걸고, 얼마 전에 뜨게질로 만든 포근한 목도리를 서너번 두르고 공원 산책을 시작했다.여름엔 보트를 타고, 겨울엔 스케이트를 타는 넓은 호수에아무도 없어서 고즈넉하기만 하다.이럴 줄 알았으면 스케이트와 눈위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스노우 슈즈도 차에 늘 실고 다닐 걸...

 

 

 

 혹시나 스케이트를 빌릴 수 있을까 해서 무릎까지 오는 부츠에 눈이 들어 올 정도로

깊이 쌓인 눈길을 헤치고

저 멀리 보이는 스케이트 대여를 해 주는 곳에 가 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어서 잠시 얼음 위로 걸어 보았다.

내심 혹시라도 내 무거운 체중으로 호수의 얼음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로 눈길로 나왔다.

 

 

 여름엔 피크닉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와서 숯불에 고기도 구어 먹고,

햄버거, 핫도그도 구워먹는 이곳도 오늘은 그저 눈덮인 빈 테이블만 덩그라니 있다.

 

 

자전거를 타다가  호수가 바라다 보여서 전망이 좋은 저 벤치에서 땀을 식히기도 하고,

책도 보던 곳인데 눈이 너무 깊어서 오늘은 멀리 바라다만 보고 지나쳤다.

 

 

 왼쪽 언덕은 강의 북쪽...

스노우 슈즈만 있었다면 저 하얀 눈길을 편하게 걸으면서 올해 마지막 설경을 즐길텐데...

 

 

 넓디 넓은 공원 전체에 나 혼자 독차지해서 크로스 컨트리 스키를 타면 환상적일텐데...

이 아름다운 늦겨울의 아침에 다들 어디로 간걸까?

 

 

 아예 들어 누워서 눈이 오면 아이들과 늘 하던대로 팔과 다리를 움직여서 angel 이라도 만들어 놓을까...

 

 

 썰매를 끄는 개들을 앞세우고 질주를 해 보는 것도 상상을 하면서  눈길을 걷고 또 걷고....

 

 

강을 따라서 1시간 정도 아무도 없는 이 호젓한 공원 산책길을 느긋하게 걷다가

영하 12도의 추위에  얼얼해진 귀과 손가락을 잠시 녹일 겸 다시 차로 돌아가서

가까운 곳에 있는 커피숍에서 우선 커다란 커피를 한잔 사 들고, 홀짝 홀짝 마시면서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가, 집에서 가까운  Whitemud Park의 또다른 아름다운 설경에

다시 차를 돌렸다. 

 

 

 3월인데도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사스카추언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 위에서....

나도 누군가와 같이 왔거나 촐랑촐랑 따라다니는 개와 함께 왔다면 저 하얀 눈길을 활보하면서 걸었을텐데...

 

 언제나 이 눈이 다 녹고, 얼어붙은 강도 다시 흐를까...

 

 저 앞에 피크닉 테이블 옆에서 따스한 모닥불을 피우 두고 두런 두런 얘기를 해도 좋겠는데...

 

 

 공원 위로 강을 가로 지르는 고속도로 옆에

누군가가 밤 사이에 아무도 모르게 스테인레스 철로 만든 수많은 공들을 쌍아 두고는

그 앞에 "Have you lost your marbles?" (혹시 구슬을 잃어버렸나요?)

라는 장난기가 다분히 있는 재미난 표지가 놓여 있었다는 기사가

그저께 신문 1면을 크게 장직한 적이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과연 저렇게 고속도로길 옆에 피라미드처럼 버티고 있다.

 

과연 누가 저 무거운 공들을 눈이 덮힌 눈길을 헤치고 왜  저렇게 쌓아 놓았는지  궁금하다.

유모가 있는 것은 좋은데 너무 시간과 공을 투자한 듯...

 

 

 이 벤치도 내가 좋아해서 자주 와서 앉아서 책도 보고, 공상도 하는 소중한 공간...

오늘도 잠시 앉아서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면서 얼어붙은 강을 응시했다.

 

눈 길을 걷다 보니 강 한복판에는 강이 이미 풀리기 시작했다. 

역시 서서히 봄은 다가 오나 보다.  매서운 공기가 조금은 덜 원망스럽다.

 

 

 고맙게도 시에서 말끔하게 눈을 치워 주어서 편히 눈길을 걸을 수 있었다.

 

 

여기서 불현듯 리즐 뮬러의 Not only the Eskimos 시가 떠올려진다.

길어서 다 외우지는 못해도

같은 눈이라도 다양하게 다가오는 눈을 묘사한 시인데

이렇게 하얀 눈이 덮인 풍광을 보면 자주 연상되는 시다.

 

 

 

 

 

   Not only the Eskimos 

Lisel Mueller

 

 

We have only one noun
but as many different kinds:

 

우리에게는 이라는 단 하나의 명사가 있지만

각양각색의 눈이  존재한다.

 

 

 

the grainy snow of the Puritans
and snow of soft, fat flakes,
 

청교도들의 삶처럼 경직되고  껄끄러운 눈도 있고,

부드러운 함박눈도,

 

 

 

guerrilla snow, which comes in the night
and changes the world by morning,

 

밤새  몰래 내려서 아침이면 온 세계를 바꾸어 놓는

게릴라 눈도 있다,

 

 

 

rabbinical snow, a permanent skullcap
on the highest mountains,

 

높다란 산꼭대기 위에 일년 내내 덮여있는

랍비의* 눈도 있고,

* 유테교의 지도자인 라비는 늘 머리 정수리에 둥근 skullcap를 쓰고 있다. 

 

눈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는 나뭇가지에서 툭툭 떨어지는 눈송이 소리가 정적을 깨고 계속 들려와서여기서 고속도로가 불과 1km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울창하다.

 

 

snow that blows in like the Lone Ranger,
riding hard from out of the West,

 

서부 영화의 주인공인 카우보이 로운 레인저처럼

서쪽에서 맹렬하게 불어닥치는 황량한 서부의 눈도 존재하고,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샛강위에 놓인 다리...

 

surreal snow in the Dakotas,
when you can't find your house, your street,
though you are not in a dream
or a science-fiction movie,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과학공상 영화의 장면도 아닌데

살고 있는 동네와 집을 못 찾을 정도로 온 세상이 눈에 파뭍혀 버린

초현실적인 미국 다코타 주의 눈도 있다.

 

 

하늘에는 남국에서 돌아 온 철새떼가 s자를 그리면서 잽싸게 날라다니면서 지저귀는 소리가 고요한 숲에 크게 울려 퍼진다.

 

 

 

 

snow that tastes good to the sun
when it licks back tree limbs,
leaving us only one white stripe,
a replica of a skunk,

 

태양이 나무 가지를 죽 핥으면서

스컹크의 등과 꼬리처럼

길고 하얀 줄무늬를 남길만큼

맛 좋은 눈도 존재하고,

 

 

샛강 다리 위에서 ...

 

unbelievable snows:
the blizzard that strikes on the tenth of April,

 

예상을 뒤엎는 믿어려운 눈도 존재하기도 한다:

4월 10일에 엄청난 폭설이 불어 닥치는 것처럼,

 

 

 

조용한 눈길 양쪽에 사열해서 가운데 혼자 걸어가는 나를 칼을 빼들고 경호를 받는 것 같아서

vip 같은 느낌에 우쭐해진다.

 

 

the false snow before Indian summer
the Big Snow on Mozart's birthday,

 

인디언 섬머 전에 내리는 눈흉내만 내는 눈도 있고,

모짜르트의 생일에(1월 27일) 내리는 제대로 눈다운  함박눈도 있고,

 

 

 

눈속자작나무와 아스펜 나무들

 

when Chicago became the Elysian Fields
and strangers spoke to each other,
 

시카고 시가 엘리시언 필드로 둔갑을 하기도 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서로 대화를 주고 받게 만드는 눈도 있고,

 

 

 

서서히 해빙이 시작하는 North Sakskatchewan River

 

 

paper snow, cut and taped
to the inside of grade-school windows,

 

 

 

 

 

in an old tale, the snow
that covers a nest of strawberries,
small hearts, ripe and sweet,

 

 

 

 

 

 

the special snow that goes with Christmas,
whether it falls or not,

 

 

 

 

 

 

the Russian snow we remember
along with the warmth and smell of our furs,
though we have never traveled
to Russia or worn furs,
 

 

 

까마귀 한쌍이 깍깍대며 사랑의 유희를 즐기고...

 

 

Villon's snows of yesteryear,
lost with ladies gone out like matches,

 

 

 

 

 

the snow in Joyce's “The Dead,”

 

 

 

 

the silent, secret snow
in a story by Conrad Aiken,
which is the snow of first love,

 

 

 

 

 

 

 

the snowfall between the child
and the spacewoman on TV,

 

 

 

정오에 높게 떠 오르는 눈부신 태양...

 

 

snow as idea of whiteness,
as in snowdrop, snow goose, snowball bush,

 

 

 

 

 

the snow that puts stars in your hair,
and your hair, which has turned to snow,

 

 

 

 

 

 

the snow Elinor Wylie walked
in velvet shoes,
 

 

 

 

 

 

the snow before her footprints
and the snow after,
 

그녀가 발자국을 남기기 전에 온 눈,

그리고 그 후에 온 눈도..

 

 

 

 

 

the snow in the back of our heads,
whiter than white, which has to do
with childhood again each year.

 

매년 우리들의 아련한 기억 속에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어린 시절을 연상하는

순백보다 더 하얗고 깨끗한 눈도 존재한다.

 

 

3시간동안 이 커다란 공원을 혼자서 세내서 신나게 산책을 즐기고는 갑자기 출출해진 배에서 신호를 보내자그제서야 주차장으로 발을 옮겼다.

 

 

 

갑자기 영하 11도의 한기도 함께 몰려오지만 이 눈부신 3월의 눈덮인 시내의 공원을 쉽게 떠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이런 눈을 보려면 다음 겨울까지 기다려야한다는 아쉬움이 있기에...

 

3월 1일 삼일절 눈이 캐나다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music: variations on the Kanon by Pachelbel

played by G Winston

from helen's cd 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