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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People & Places/넓은 세상에서

포크싱어 피트 시거(Passing of Folk Singer Pete Seeger)를 기억하며....

by Helen of Troy 2014. 1. 30.

 

미국의 유명한 포크송 가수이자 반조 연주가, 송라이터, 그리고 인권운동가인 Pete Seeger(피트 씨거)씨가

뉴욕에 소재한 한 병원에 입원한지 6일 후인 1월 27일 월요일 9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Photograph: Brian Shuel/Redferns via Getty Images

 

 

피트 씨거는 1948년에 결성된 The Weavers 라는 그룹의 멤버로 활약을 하면서

Good night Irene 을 포함해서 많은 히트 송을 발표했다.

 

그는 생전에 60여년간 활발한 연주활동과 음반제작을 지속적으로 해 왔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한자들의 권리를 위한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특히 9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2011년 10월에 Occupy Wall Street 라는 운동에 가담해서

다른이들과 함께 행진도 했고, 2013년 11월에는 30여년간 환경보호주의자들의 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 맴버로활발히 활동하고, 러시아 원유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피터 윌콕스(Peter Wilcox) 선장의 석방을 촉구하고 

그리고 그의 배 Artic30 을 즉각 돌려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편지를 띄우는 등 그의 신조대로 한 평생을 살았다.

 

 

1940년에 청소년 위원회 모임에서 노래를 하는 씨거

 

 

1940년도 초반에 결성된 알마낙 싱어즈의 멤버로 공연하는 모습...

 

 

1950년대의 미국은 당시 McCarthyism 이념이 정치풍토를 지배했는데, 좌파경향이 있는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요주인 인물선상에 오르면서,  라디오와 티비 출연등 상업적인 활동을 10년 이상 금지당했고

그는 국회에서 그의 좌익 정치성향과 반정부적인 활동을 증언하라는 출두명령을 거부를 한 댓가로

법적모독죄로 기소되었고, 감옥형과 출국정지를 받았다.

 

 

1952년 2월에 하비 마투소가 국회의 반정부활동조사위원회에서 하비 마투소가

시거가 공산당 멤버라고 증언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거와 그의 변호인 폴 로스

 

 

1950년대의 냉전시대에 미국정부로터 좌익 요주의 인물로 찍힌 씨거는

대부분의 연주홀에서 공연을 할 수 없었고,

특히 대학교 캠퍼스 무대에는 얼씬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직접 작곡활동도 하고,

초반에는 유명한 우디 거쓰리(Woody Gothrie) 와 함께 그가 만든 노래를 불렀고,

얼마 후에는 그룹사운드 The Weavers 의 멤버로 활동을 했다.

 

 

1952년에 포크송 그룹 더 워버스(The Weavers)의 멤버 리 헤이즈, 프레드 홀터만, 로니 길버트 그리고 왼편에 피트 시거...

 

 

시거가 반정부 활동을 하는 좌익으로 몰려서 12개월간의 감옥형이 내려지자

전세계에서 그의 부당한 판결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변호인단들이 올린 항소심에서그의 기소가 부당하다고 기각한다는 판결이 나자

반죠를 어깨에 걸친 시거와 그의 아내 토시가 1961년 뉴욕의 연방법원에 함께 출두하는 모습...

 

 

1955년에 그가 활동하던 The Weavers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성황리에 열렸지만,

씨거는 좌익성향의 어린이 여름 캠프와과격한 노동조합원들과 어울리면서,

지속적으로 작곡에 몰두하면서 간간히 홀로 공연을 했다.  그 때에 작곡한 캠프송 악보가

1962년에 출판되었는데, 그중에 우리 귀에 익은 양키 두들(Yankee Doodle)과 Skp to My Lou가 포함되어 있다. 

 

1960년대에는 포크송 리바이벌로 이미 예전에 발표를 했거나

음반에 기록된 그의 노래들이 전세계에 히트송으로 되면서 다시 큰 관심과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당시 포크송 혼성 그룹이었던 ,Peter, Paul and Mary 그리고 Kingston Trio, Trini Lopez가

씨거의 노래 If I Had a Hammer 와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을 리바이벌해서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1966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발 중에서 어린이날에 악기제작 클라스에서

손으로 간단한 악기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부른 Wd Shall Overcome 노래는 1960년대 초반에 흑인인권운동의 주제가로 떠 오르기도 했다.

1960년대에 포크송을 불러서 큰 인기를 얻었던 Peter, Paul and Mary, 조운 바에즈, 쥬디 콜린스

조니 미첼, 밥 딜런, 아를로 거쓰리등은 그들이 얻은 돈과 명예가 포크송의 선두주자였던 씨거의 공으로 돌렸고,

실제로 모두 한 무대에서 그를 기리는 기념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1975년 뉴욕의 카니기 홀에서 가진 데탕트를 위한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시거

 

 

1994년에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시거에게 원로예술상을 수여하고 있다. 

피트 씨거는 1919년 5월 3일에 뉴욕에서 음악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친 콘스탄스 엗슨씨는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학 음대학장을 역임했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에 창시한 New Deal 의 일원으로

연방음악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여덟살부터 작은 하프같은 ukulele를 배우기 시작했고,

곧 다니던 사립국민학교의 재즈 밴드에서 테너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리고 그가 16세가 되던 해에 노스 캐롤라인의 한 공연장에서

처음으로 5개의 줄이 있는 반조 연주를 듣고

그 매력에 바로 반한 이후로, 60여년간 그와 늘 함께 해 왔다.

 

씨거는 하바드 대학에 진학해서 저널리즘과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젊은 공산주의 모임에 가입했다.

2학년에 재학 중에 그는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는 공부보다 미국 전역을 돌아 다니면서 직접 경험하는 쪽이

더 낫다고 당시 이미 가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거쓰리의 권유로, 그는 하바드 대학을 자퇴한 후에

미국 전역을 떠 돌면서 당시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블루즈와 노동조합 주제가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2006년에 시거가 불러서 흑인인권운동 주제가로 된 We Shall Overcome  노래를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새롭게 불러서 낸 음반출시를 기념하는 공연에서

시거가 그가 사랑하는 반죠를 연주하고 있다. 

 

 

2009년 뉴욕에서 시거의 90회 생일축하 공연겸,

환경보호에 앞장 설 젊은 차세대를 위해서 열린 Clearwater 공연 무대에서

함께 공연하는 시거, 그리고 그의 친형 존, 알로 거쓰리, 그리고 손자 타오와 함게

 

 

1960년대의 포크송 리바이벌을 발판으로 그는 변하는 세계에서 필요한 주제로 사회운동을 계속했는데,

1969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그가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당시 심하게 오염되었던 허드슨 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Cleanwater 캠페인을 10여년간 벌이면서

당시로은 획기적으로 환경온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도 지속적으로 연주활동을 활발하게 벌려 왔는데,

근래에는 그의 손자 이자 라디오 제작자인 Tao Rodriquez가 제작한 프로그램:

Pete Seeger: How Can I Keep from Singing? 을 2008년에

200여개에 달하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었다.

 

2009년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비롯해서 40여명의 가수들이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무대에

다 모여서 그의 90회 생일을 축하하는 축하공연을 벌렸다.

 

 

 

2011년 뉴욕의 컬럼버스 서클에서 Occupy Wall Street 시위에서

92세의 시거가 시위지들과 함께 하고 있다. 

 

 

 

 

2009년에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축하 공연에서 초대받은 그는

손자 타오, 스프링스틴과 함께 우디 거쓰리가 부른 제일 유명한 This Landis Your Land 를 열창해서

한때는 다른 이데올로기로 반역죄로 감옥까지 갔던 씨거에게 아주 의미있는 무대였다고 전해졌다.

94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2013년에는 윌리 넬슨, 닐 영과 함께 고전을 하는 미국의 많은 농가들을 위한

Farm Aid 2013 공연에도 참가해서, 그가 추구하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에 평생을 바쳤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국적불명의 이상한 이름으로 소위 아이돌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룹들이 오랜 연습끝에 소속사들에 의해서 공식에 맞추어서 기계에 찍어내듯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룹마다 개성없이 그저 비슷한 그들은 좋은 노래를 대중들에게 선사하기 보다는

서로들 질세라 경쟁하듯이 수위를 높여가면서, 현란하고 선정적인 의상과 춤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급급한 인상이 짙은 황금만능주의  현실에

시거처럼 94세까지 60여년간 가수로 활동하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상업적인 성공과 명예보다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소외받고 그래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대중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노래를 만들고 불러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에

죽을 때까지 식지않은 그의 열정과 신념으로 살아 온 씨거의 삶이 한결 돋보여서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가 평생 바라던 정의와 평등이 존재하는 천상에서 편하게 잠드시길....

 

 

 

Turn, Turn, Turn and If I had a Hammer

 

Where Have All the Floers Gone?

 

 

 

 

 

 We Shall Overcome

 

 

This Land is My Land

 

 

Pete and his grandson Tao lead everyone to sing along to this great song!
Live at Wolftrap, August 8,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