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우엔 대성당의 타워
뮌헨의 오래된 도시의 중심가에 해당하는 마리엔플라츠 광장에서 동쪽에 위치한 프라우엔 대성당은
뮌헨을 대표하는 명소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이며,
성모님의 대성당의 정식이름은 Dom zu unserer lieben Frau
혹은 Der Münchner Dom(사랑하는 우리의 성모님의 도움)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1821년부터 뮨헨과 프라이싱(Freising)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기도 하다.
성당의 규모는 완공하던 당대에 약 20,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데,
현재는 약 4,000 명의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게 마련되었고,
매일 집전되는 미사마다 많은 신자들과 관광객들이 참여하고 있다.
프라우엔 대성당의 두개의 타워중 하나는 아직도 보수 중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잘 알려진 대성당의 외벽과 달리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두개의 타워는 190 미터의 높이로 성당이 완공되었을 때는 물론
그후로도 어떤 건물을 새로 지어도 이 타워를 막지 않아야만 건축허가가 났기에,
현재까지 뮌헨이나 주변 도시 어디에서나 이 두 타워를 볼 수 있고,
뮌헨의 스카이라인의 주인공 역할을 오랫동안 해 왔다.
원래 성당 공사가 진행되었을 때에 타의 꼭대기에 계획된 뾰족한 첨탑은 자금부족으로 완성을 보지 못하다가,
성당 완공이 된지 수십년 후인 1525년에 구리소재의 양파모양의 돔으로 디자인을 바꾸어서 타워 공사를 마쳤다.
팔각형 모양의 타워 디자인은 예루살렘에 있는 The Rock의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며,
바바리아의 다른 성당 디자인으로 자주 모방되기도 했다.
두개의 타워 중에 남쪽에 위치한 타워는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어서,
층계를 통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뮌헨 도시와 멀리 알프스 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또한 타워는 10개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차임(종)이 구비되어서 매일 시간에 따라서 종이 울린다.
600여년의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성당 대문을 지나서 안으로...
13세기에 이미 같은 자리에 지어진 성당이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필요한데다가
점점 증가하는 신도수와 뮌헨 교구의 중요성으로 신축공사가 불가피해지자
1468년에 시기스문드 백작 의뢰로 현재의 성당 공사가 시작이 되었다.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드는 돌 대신에 근처에서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딕식 대성당의 디자인은 독일 출신 건축가인
요르그 폰 할스바흐(Jörg von Halspach)와 루카스 로탈러(Lucas Rottaler)씨가 맡았고,
공사 규모에 비해서 당시로는 아주 짧은 20년 만인 1488년에 완공이 되었다.
대성당의 건축양식은 바로크 후반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성당 내부는 세 파트(Nave)로 디자인이 되었으며 길이는 190미터, 넓이는 40미터에 달한다.
17세기 후반에 독일에서 퍼진 반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을 때 프라우엔 대성당이
그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화려하고 정교한 바로크 풍으로 성당내부가 추가공사를 거치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에 접어 들어서 주교좌 대성당으로 승격이 되면서,
고딕양식만이 순수한 교회 건축 디자인이라고 믿는 당시의 믿음에 따라서
대부분의 내부에 있던 바로크 풍의 장식이나 조각품들을 없애버리게 되었다.
거기다가 1944년 연합군의 집중적인 공중폭격으로 지붕 일부가 내려 앉았고,
일부 내부 장식품들이 파손이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공중폭격이 발생하기 전에 대부분의 중요하고 오래된 내부 미술품들을
미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 두어서, 큰 피해를 모면했다.
종전 후에 대성당의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오랜 세월동안 몇개의 단계로 나누어서 시행되었는데,
1953년에 첫 단계가 마무리 되었고, 40년 후인 1994년이 되서야 전체 보수공사를 마쳤다.
성당내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은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4세 황제의 무덤을 비롯해서
바바리아 지역을 수백년동안 지배해 온 비틀스바흐 왕조의 황족들의 무덤이 이곳에 위치 해 있다.
루드비히 황제의 관은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네명의 무릎을 꿇은 기사들로 둘러 쌓여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조각품도 걸려있다.
후임으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한때 뮌헨 교구의 대주교를 역임해서 이 교회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로 된 창으로 통해서 햇빛이 비추인다.
천장도 얼마 전에 보수가 되어서 그런지
성당의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새 건물처럼 깨끗하고 선명하다.
고딕식의 높은 천장에 매달린 십자가 상은
20세기의 멋이 바로크, 고딕식과 함께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다.
대성당 입구 근처에는 '악마의 발자국' (Footpring of the Devil)이 눈길을 끈다.
전설에 의하면 성당 건축설계를 맡은 폰 할스바흐가 성당내부에서 창문이 보이지않게 지어 준다면,
악마가 성당 건축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도와 주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성당이 완공되자, 할스바흐씨가 악마를 성당의 중심부분으로 데리고 와서 약속한대로
단 하나의 창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 주자
기쁨에 넘친 나머지 날뛰다가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다.
재미있는 것은 발자국이 있는 자리에서 성당을 둘어 봐도 그 많은 창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라우엔 대성당 내에서는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몇점을 보면...
van Dyck 작품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제대 뒤에는 귀중한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1510년에 얀 폴라크(Jan Polack) 그린
'The Protecting Cloak' (보호의 망또) 가 걸려있다.
이 작품 속에는 성모 동정녀 마리아가 벌린 망또로 농부부터 교황까지
전 인류를 보호해 주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성가대 로프트(loft)는 조각가 에라스무스 그라서가 1502년 경에
12사도와 예언자 모티프로 만2차대전 든 조각품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아름답고 거대한 오르간은 비교적 새 오르간으로, 1989년에서 19994년에 진행된
마지막 보수공사 중에 마지막으로 1994년에 설치되었다.
성당내에는 2차대전 폭격으로 파손된 프라우엔 대성당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두 타워는 피해를 피해서 버티고 있지만,
대성당의 지붕의 반 이상이 파손된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면서
현재의 멀쩡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사실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구 근처도 파편으로 곰보가 되었다.
대성당과 주위의 동네를 모형으로 구 뮌헨 시가지를 쉽게 연상이 된다.
옆문 1
옆문 2
엎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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