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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About me...Helen/헬렌의 일상에서

출산한 친구를 위해서 만든 음식, 그림의 떡인 산후 조리

by Helen of Troy 2020. 6. 19.

막내가 고등학교 10학년 때부터 같은 직장에서 알바를 하면서 친해진 단짝 친구가

4일 전에 예정일보다 늦게 유도분만으로 첫아들을 순산했다.

다행스럽게도 산모와 아기 둘 다 건강해서 이틀 병원에서 지내다가

그저께 퇴원해서 집으로 갔다.

 

딸의 친한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엄마가 된 그 친구는

가족이나 친척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나라에 살고 있기도 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이 자유롭지도 못해서

1년간의 육아 휴가를 같이 받은 남편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소위 한국사람들이 말하는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보드랍고 촉촉하면서 달콤한 호박 초코칩스 쿠키/Zucchini Chocolate Chip Cookies

(레시피는 추후에 소개합니다.)

 

 

그런 친구를 위해서 딸아이는 어제 휴무라서 집에서 쉬면서 세 가지의 빵과 쿠키를 만들었다.

또 다른 친한 친구 역시 직장에서 돌아와서 직접 만든 파스타 요리와 파스타 소스를 넉넉하게 만들어서

어제 퇴근 후에 함께 산모 친구 집을 방문해서 정성이 담긴 음식 배달을 하고 왔다.

 

10년 지기 친구는 명풍 L.V. 회사의 임원으로 일을 해 왔는데

복지가 좋은 캐나다와 좋은 회사의 방침 덕분에 18개월의 육아휴직을 받아서

Paternity Leave 휴가를 1년간 받은 남편과 함께 오로지 육아에 전념할 수 있게 되어서

비록 부모님이 옆에 있어 주지는 못해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한편, 그런 제도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세 아이들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낳고, 키우면서

급변하는 IT 업계에서 경쟁 업체보다 늘 선두주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내 업무를 다른 사람이 대체를 할 수 없는 일을 하다 보니

고작 한 달도 못 쉬고 다시 출근해서 주 70-80 시간 일을 하면서 일을 해야 했던

기억이 떠 올려지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인이 해 준 음식이 너무도 고마웠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해서

한국인이 아닌데도 김치를 좋아하는 산모를 위해서 지난 주말에 담은

배추김치 한 병을 친구에게 주라고 딸에게 딸려 보냈다.

 

 

 

애플-계피-바나나-호두 빵(Apple Cinnamon Banana Walnut Bread)

(Note: 이 빵의 레시피는 2018년 2월 8일에 포스팅했으니

헬렌의 부엌으로 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북미에서는 '산후조리'라는 단어나 표현이 아예 없을 만큼

출산 후, 특별하게 산모를 위한 음식을 따로 먹거나,

오랫동안 누워서 못을 추스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모나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 누워 있기보다는

출산 전과 후에도 꾸준한 운동을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모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나 산후조리원 시스템이 없기에,

싫든 좋든, 1 주일 내에 평상시처럼 집안일을 출산 전처럼 하면서 지내고,

그리고 복지시설이나 노동제도가 공평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지 않은

미국에서는 보통 한 두 달 내에 다시 출근해야 한다.

 

예전처럼 가난하던 시절에 산모가 잘 챙겨 먹지도 못하고

정기적으로 진료도 받지 못하고, 제때제때 필요한 영양소를 챙겨 먹지 못하던 시절도 아닌데도

출산 후, 당연히 산후 조리원에서 2-4주를 편히 남이 해 준 밥을 편하게 먹으면서,

쉬거나 자고 싶을 때는 누군가가 신생아를 대신 돌보아 준다는 산후조리원은

그저 나를 포함한 북미나 유럽의 여성들에겐 그야말로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스웨덴 롤빵 크링어 롤 만들기 (Kringers/Brioche)

(Note: 이 빵의 레시피는 2018년 3월 14일에 소개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4개월간 생사를 넘나 들면서 지내다가,

고작 2 Kg에 퇴원한 큰 딸을 병원에 두고, 혼자 몸을 추스르고 바로 출근했고,

병원에 입원해서 3 개월 동안 누워 지내면서, 어렵게 복덩이 아들을 출산한 뒤

박사 공부를 하는 남편 없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출근했다.

막내도 "문제 산모"라는 딱지가 붙은 데다, 나이까지 많아서 '노산모' 핸디캡까지 추가되어서

임신 내내 전전긍긍하면서 지냈지만,

다행히도 처음으로 2 kg이 넘은 건강한 딸을 출산해서,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이렇게 사연도 많은 출산을 경험한 나로서는

지인이나 친척들을 통해서 산후조리원의 다양하고 편한 서비스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를 출산한 지 25년이나 지났는데도,

분명히 자기 돈 내고, 제공되는 서비스를 적절하게 사용한 죄밖에 없는데도

무슨 놀부 심보인지 산후조리원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후조리원이나

산모 이야기만 나오면 괜스레 밸이 꼴리고,

복에 겨워서 징징대는 산모의 모습들이 못마땅하게만 느껴지는 나 자신이 한참 어이가 없다.

그때는 혼자서 직장, 육아, 집안일을 전쟁 치르듯이 닥치는 대로 해치우면서 사느라 몰랐는데,

세월이 흘러서야 혼자 감당해야 할 일들의 무게가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하는가 보다.

 

 

 

순산한 친구를 위해서 만든 빵과 쿠키를 용기에 담아서...

 

 

그나저나 나의 개인적인 속 좁은 감정은 멀찌감치 떨치고,

요즘처럼 산후조리원뿐 아니라, 여러 가지 혜택과 서비스가 많을 시기에

한국의 엄마들이 적어도 두 세명의 자녀를 순산해서

고모, 이모, 삼촌, 사촌, 조카 등 다양한 친척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딸의 산모 친구를 위해서 다음엔 무엇을 만들어 줄까 행복한 고민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