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스 한가운데 위치한 광장에 세워진 Dreifaltigkeitssäule/삼위일체 조각 칼럼
비엔나에서 약 7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렘스/Krems an der Donau는
다뉴브 강 가에 위치해서 약 2만 4천 명의 인구를 가진 오래된 도시이다.
다뉴브(도나우) 강 가에 위치한 크렘스와 비엔나
크렘스는 995년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기록에 올랐지만,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곳으로 알려졌다.
한 예로, 27,000년 전에 만들어진 어린이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무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11세기와 12세기에는 크레미스/Chremis 라고 불렸으며,
당시에는 비엔나의 규모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주요 도시였다.
30년 전쟁이 끝날 무렵인 1645년에 스웨덴 군대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해서
크렘스를 장악했으나, 다음해인 1646년에 폰 푸흐하임과 폰 후놀슈타인이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 군대에 의해서 해방되었다.
크렘스는 다뉴브 강가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리슬링 와인과
과수원에서 생산된 살구로 만든 살구 브랜디 마릴렌슈납으로 아주 유명하다.
Dreifaltigkeitssäule
이 삼위일체 칼럼 작품은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종교적 조각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가 제일 위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엔 흑사병 등 전염병을 종식한 것을 감사하는 이유로 세워지거나
다른 이유로 도움을 청할 때에 세워졌다.
이 삼위일체 기둥의 원조는 비엔나에 소재한 Wiener Graben/비엔나 묘지에
레오폴드 1세 국왕이 페스트로부터 국민을 보호해 준다면
감사하는 뜻으로 삼위일체 기둥을 세우겠다고 신과 약속대로 세워진 것이 최초이다.
이후, 많은 시장들, 귀족들 그리고 기부자들이 같은 이유로 같은 기념 기둥을 제작해서
30-40년 사이에 200여 개의 광장에 세워졌다.
크렘스에는 이런 유행이 좀 늦게 찾아와서 18세기 초에 세워졌다.
1736년에 크렘스 시민들은 그네들의 수호성인과 삼위일체에게
시민들을 질병을 비롯해서 다양한 역경에서 보호해 준 것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닥칠 다양한 위험에서 보호해 달라는 기원을 담은 기념 기둥을 제작할 것을 결정했다.
그래서 조각가 요셉 마티아스 거츠/Josef Matthias Götz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1,600명의 길드 장인들을 고용해서, 질 좋은 에겐부르크 암석으로 제작해서
1738년에 완성했다.
이 삼위일체 기둥 작품은 세 레벨로 나뉘었으며,
삼각형의 토대 위에 세 개의 코린토 양식의 기둥과
제일 꼭대기엔 세 명의 성인들과 삼위일체로 이루어졌다.
원죄 없는 마리아는 인간들과 신의 사이에 위치해서
악을 무찌르는 모습을 띄고 있다.
Steiner Tor/슈타이너 대문
이 대문은 크렘스를 상징하는 명소로 원래 15세기 초반에 세워졌다.
크렘스는 19세기 후반까지 성벽으로 둘러싸였는데,
서서히 이 성벽을 허물게 되면서, 존재했던 세 개의 대문도 따라서 없애게 되었다.
2005년에 도시로 승격 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슈타인 대문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해서 세웠다.
크렘스 시청 건물/Kres Rathaus
크렘스 시청 건물은 1419년에 원래 본당 성당에 딸린 묘지 터 주위의 집들을
마가렛 폰 다흐베르크씨가 구입해서 한동안 소유하다가
1453년에 이 건물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시청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거의 100년 후인 1548년에 바로크 스타일로 지어져서
특히 베이 창문을 아름답게 꾸몄다.
1549년에 두 개의 홀이 후기 고딕 양식으로 증축되었다.
1782년에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서
지금처럼 바로크 형식의 파사드를 갖추게 되었다.
천 년 이상의 역사가 담긴 Pfarrkirche St. Veit/성 파이트 캐톨릭 본당
성 파이트 크렘스 본당 성당/Pfarrkirche St. Veit
'바하우 대성당/Wachau Cathedral' 이라고도 불리는
크렘스 본당 성당인 성 파이트 성당은
하인리히 2세가 1014년에 크렘스에 선사한 본당으로
크렘스의 '어머니 성당/Frauenbergkirche'로 불렸던
중세부터 크렘스와 천여 년을 같이 한 성당이다.
그러다가 1178년부터 파이트 성인/Saint Veit(비투스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본당 이름에 파이트 성인의 이름이 추가되게 되었다.
13세기에 원래 지어졌던 성당의 부분 중 일층만 남아 있다가
성당의 상태가 너무 악화되면서, 1616년에 완전히 허물고
재건축 공사가 시작되어서 14년 후인 1630년에 완공되었다.
성당의 외부 모습은 초기 바로크 형식을 띄고 있고,
성당 내부는 1733년에 제대, 성가대 좌석, 강론대
그리고 천장 프레스코가 제작되어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아름다운 성 파이트 본당 내부
천장 프레스코 벽화도 아름답고
제대도 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성당 왼편엔 소규모 채플도 하나하나 정교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
제대 그림은 슈미트가 그렸고,
제대 왼편에는 도미니크 성인이
그리고 오른편에 시에나의 카나리나 성녀가 있다.
제대 그림은 연옥에서 고통을 받는 위령들을 아래에 묘사되었으며,
이들은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 십자가와 묵주들을 잡고
천상으로 오를 수 있도록 기도를 권고하는 작품이다.
한 손엔 십자가 고상과 세례자 요한의 참수된 머리를 든 프란체스코 성인(왼편)과
설교하는 프란츠 제이비어 성인(오른편) 이 보인다.
제대 그림은 안톤 마울베르치/Anton Maulbertsch 가 그렸으며
대천사 미카엘(마이클)이 사탄과의 투쟁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인스크립션에는 '주님은 어디 계신가요?" 라고 새겨져 있다.
요한 네포묵은 보헤미아(현 체코) 출신 성인으로
보헤미아 여왕의 고해성사를 들을 내용을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비밀로 지키다가
급기야 블타바 강에 던져져서 순교한 성인이다.
이 성인은 고해성사 비밀을 지키다가 순교한 첫 성인이 되었고,
홍수와 익사에서 보호해 주는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검은 대리석으로 제작된 이 채플은
원래 운트에 소재했던 카푸친 수도원이 닫게 되면서
수도원에 있던 것을 1796년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
자그마한 성모 마리아상은 1420년에 이 채플에 설치되었고,
가운데는 피에타 상이 자리 잡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녀(왼편)
도로테아 성녀(오른편)
오래된 성당 뒷골목 주위 풍경이 너무 좋아서
한참 이곳에서 서 있던 인상 깊은 곳이다.
1,000년 전의 크렘스를 상상하면서 계단을 내려와서..
to Piaristenkirche/피아리스트 성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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