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를 대표하는 성 슈테판 대성당
(2018년 6월 19일)
137 미터에 달하는 남쪽 타워(South Tower)와 보수 중인 성당 외벽.
이 타워는 1368년에서 1433년까지 65년에 걸쳐서 완공되었으며,
1529년에 발생한 비엔나의 포위 사태와
1683년에 발발한 비엔나 전투 시기 중에는 보초 타워와 사령부 역할을 했다.
타워 꼭대기는 합스부르크-로래인 왕조의 엠블럼인 두 마리의 독수리와
사도들의 십자가가 들어서 있다.
65년이 걸려서 1433년에 완성된 남쪽 타워 앞의
넓은 슈테판 광장/Stephansplatz에서 찰칵~
비엔나의 구시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성 슈테판 대성당/St. Stephen's Cathedral/Stephansdom은
비엔나 교구의 교구장인 크리스프 숀보른 대주교님이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이다.
이 대성당은 비엔나의 가장 중요한 종교의 중심지이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의 역사와 함께 한 증인이기도 하다.
비엔나는 11세기 중반에 독일 문명의 중요한 중심 도시로 성장했는데,
시내에 있던 4개의 본당은 그에 걸맞게 도시의 종교적인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다.
1137년에 파싸우 주교와 레오폴드 4세가 마우턴 조약을 맺게 되면서
비엔나를 교구의 중심지로 정하고, 주교청으로부터 새 주교좌성당 자리로
도시 성벽 바깥에 위치한 대지를 제공받았다.
마우턴 조약 체결 후에 성 슈테판 성당 공사가 시작되어서
1147년에 미완공 상태로,
당시의 독일의 왕이던 콘라드 3세와 프라이싱의 오토 주교,
그리고 2차 십자군 출정을 앞둔 많은 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슈테판 성인에게 헌정하는 헌정 미사가 집전되었다.
첫 성 슈테판 성당은 23년 후이 1160년에 완공되었지만,
보수공사와 증축 공사는 1511년까지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보수공사는 진행되고 있다.
1230-45년 사이에 성당의 서쪽(현재 입구 쪽)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1258년에 발생한 화재로 첫 성당의 대부분이 유실되고 말았다.
하지만 잿더미 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두 개의 종탑이
1263년 4월 23일에 완공되어서 두 번째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그 후, 매년 이 날 저녁에 3분간 평소에 잘 듣지 못하는 푸메린 종을
3분간 울리면서 이 날을 기념해 오고 있다.
1304년에는 알버트 1세 왕이 대성당의 동쪽에
세 개의 복도(Nave)로 이루어진 성가대 증축공사 의뢰로 시작된 공사는
그의 아들인 알버트 2세까지 이어져서 봉헌된 지 77 주년 된 해인
1340년에 정식으로 봉헌되었다.
대성당의 한 중간에 위치한 메인 Nave는 슈테판 성인과 모든 성인들에게
북쪽 Nave는 성모 마리아에게, 남쪽 Nave는 12 사도들에게 헌정되었다.
현재의 슈테판 대성당의 대부로 알려진 알버트 2세의 아들인 루돌프 4세는
비엔나의 종교적인 수요와 중요성을 충족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성당 증축공사를 단행하게 되면서,
1359년 4월 7일에 현재의 남쪽 타워 옆에 고딕 양식 성당의 초석을 다졌다.
이 대대적인 증축공사는 결국에 이전에 지어졌던 성당 전체를 흡수해서
1430년에 이전 성당의 건물의 흔적을 없애게 되었다.
남쪽 타워는 1433년에, 북쪽 타워는 1450년에 완공되었다.
이렇게 대규모의 성당이 건축되었지만,
여전히 파싸우 교구 소속의 본당으로 여전히 파싸우 주교의 지배를 받은 것이
불만이었던 프레데릭 3세 황제는 바오로 2세 교황을 설득해서
비엔나를 중심으로 한 비엔나 교구 설립에 앞장서서
1469년 1월 18일에 드디어 성 슈테판 성당이 주축이 되어서 비엔나 교구가 탄생했다.
칼 6세 통치중인 1722년에 이노 첸트 13세는 비엔나 교구를 대교구로 승격시켰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후퇴하던 독일 군대의 지휘관이었던
게하르트 클릴키흐트/Klinkicht 대위가 그의 상사인 디트리히 대령이
이 역사적인 성당을 폭격해서 파괴하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게 되면서
기적적으로 폭격의 피해를 면했다.
하지만, 1945년 4월 12일에 연합군 국가의 하나였던 러시아 군대가 도시에 입성할 즈음에
시민들이 대성당 근처에 소재했던 상가에 불을 지르고 물건들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불이 대성당으로 번지게 되면서 대성당 지붕에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성당의 외벽과 내부의 대부분이 벽돌로 지어져서
성당 내에 소재한 대부분의 중요한 유적과 미술작품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성 슈테판 대성당은 슈테판 성인의 축일인 12월 26일에 해돋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외벽의 소재는 석회암이며, 길이는 107미터, 폭은 40미터 그리고
높이는 136미터를 자랑하고 있다.
800여 년간 검댕이를 포함해서 다양한 공해로 검게 변한 외벽은
근래에 단행된 보수 공사 덕분에 원래의 석회암 본연의 하얀색을 되찾았다.
대성당의 높다란 지붕은 61미터에 달하고,
23만 개의 화사한 색상의 타일들이 지그재그 패턴으로 마무리된 것이 특색 있다.
대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단체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입구가 붐볐다.
(성당의 대문은 아래 도면의 맨 밑에 위치해 있다/Giant Gateway)
성 슈테판 대성당의 도면/floor plan
대성당 입구 바로 옆에 4단의 매뉴얼과 만 개의 크고 작은 파이프를
자랑하는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하고 있다.
(Organ Gallery)
이 성당의 첫 오르갠은 1334년에 설치되었는데,
1945년에 발생한 화재로 유실되는 바람에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1960년에 설치한 전기 파이프 오르간이다.
성당의 입구 부근에 서서 성당 내부를 보는 것은 무료이지만
성당 안으로 직접 들어와서 구경하려면 6유로를 내고 들어와서
입구 쪽의 웅장한 모습
창살 안으로 들어서서 제일 먼저 화려하게 꾸며진 기둥과...
성모 마리아 그림
입구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Pötscher madonna/펐셔 마돈나 아이콘
이 오래된 아이콘은 헝가리에서 들여왔는데
오토만 제국이 유럽을 재 침공했던 시기인 1697년에
아이콘 속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담겼다.
사보이의 유진 왕자가 현재의 세르비아인 젠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 아이콘을 이곳으로 모셔왔다.
Prince Eugene of Savoy(1663-1736) 채플과 그의 무덤
유진 왕자는 프랑스 태생으로 1683년에 신학교 학생 자격으로
비엔나에 도착했을 때에 비엔나에 상황은
오토만 제국의 침공으로 함락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는 합스부르크 군대에 자원입대해서 젠타에서 벌어진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서 비엔나를 오토만으로부터 구해냈다.
그는 이 공을 인정받아서 유명한 벨베디어 궁전을 포함해서
여섯 개의 궁전을 하사 받았다.
그가 사망하자 오스트리아 인들은 그를 이 성당에 묻었고
그를 추모하는 채플을 지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성경 봉독대와 나선형의 계단
정교하게 조각된 봉독대
알버트 1세와 2세가 증축한 세 Nave로 이루어진 성가대와 제대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내부
거대하고 높다란 기둥에는 성인들의 동상이 걸려있다.
왕과 귀족들이 미사보던 자리
성당의 메인 복도/nave
St. Leopold side chapel/성 레오폴드 채플
성 레오폴드 채플
성가대를 보수하느라 줄로 막아 놓은 상태에 놓인
Transept 지점
대성당 천장
성당 메인 복도에서 바라다본 입구 쪽
주일 미사에 주로 사용하는 소 오르갠
Die neue Domorgel Rieger-Orgel /리거-오르겔 파이프 오르간
리거 오르간 회사가 만든 이 수동식 파이프 오르간은
4개의 매뉴얼과 55개의 음색을 갖추었으며,
1991년 9월에 설치되었다.
프레데릭 3세 황제의 무덤(도면 #11)
무덤 뒤의 고딕 양식의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
이 무덤은 붉은 대리석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그의 생전 모습으로 조각된 상과 가문의 문장이
관 위에 놓여졌다.
프레데릭 3세는(1415-1493) 소도시에서
거대한 로열 시티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한 '비엔나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들 막시밀리안을 버건디 왕가의 매리와 혼인을 시켜서
하루아침에 합스부르크 왕조를 유럽의 큰 세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무덤 벽에 그려진 벽화
무덤 바닥의 문양
High Altar/메인 제대
이 제대는 1641년에 토비아스와 요한 폭/Pock가
검은 대리석 소재로 제작했고,
제대 제일 위는 성모 마리아 동상으로 꾸며졌다.
제대 한가운데에 걸린 그림은
아래편에 보이는 슈테판 성인이 그의 믿음을 단념하지 않자
화가 난 군중들이 던진 돌에 숨지기 직전에
그리스도, 십자가와 천사들의 모습을 목격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제대 뒤편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는
이 성당에서 제일 오래되었다.
제대 왼편
제대 오른편
보수공사가 한창인 제대 쪽과 십자가
Wiener Neustädter Altar/비엔나 노이슈태틀러 제대(도면 #10)
Wiener Neustädter Altar
이 삼단 제대 피스는 1447년에 프레데릭 3세가 시스터회의
수도원을 위해서 의뢰해서 제작된 것으로
1796년에 수도원이 폐쇄될 때까지 수도원에 모셔두었다.
그 후 잠시 클레어보 수도원에 모셔 두었다가
1885년에 성 슈테판 성당이 사들이게 되면서 이곳에 안치되었다.
패널 가운데
이 제대는 보기 드물게 이중으로 된 삼단 제대 피스인데
일요일마다 열리는 아래 패널은, 성인들의 유골함이 있고,
윗 패널은 성모 마리아의 생애가 담긴 작품이다.
주중에 패널 문을 닫으면 72명의 성인들이 모습이 보인다.
패널 오른편
패널 왼편
1985년에 시작된 이 삼단 알타 피스의 복구 작업은
10명의 미술 복구 전문가가 20년간 4만 시간 투자와
130만 유로의 경비를 들여서 말끔하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성 슈테판 성당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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