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31일 아침에 친한 지인인 에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장례 미사에
오르겐 연주와 성가를 부탁하는 전화였다.
결혼식/혼배미사 그리고 은혼식/금혼식 미사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티나 생일 파티 등은
몇 달 전부터 계획된 행사라서
이런 부탁을 받아도, 준비할 여유가 있는 것과 달리
장례 미사는 아무도 미리 계획할 수 없기에
늘 하루 이틀 전에 급하게 연락을 받는다.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웬만하면 나의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유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마음으로
수락을 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서
고인을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 왔다.
그런데 12월 내내 워낙 바쁘기도 하고,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몸도 피곤하고,
몸살기도 있어서 목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1월 1일에 3일에도 설날 저녁 식사도 계획이 되어 있기도 해서
일단은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얘기를 하고,
내게 2-3일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돌아가신 분의 손녀인 마리는
맏딸과 30년 전에 같은 선생님께 첼로 레슨을 받으면서 알게 된 후,
늘 1-2등을 다투는 선의의 경쟁자이자 파트너이자 절친이었다.
그리고 첼로 등급 시험을 위해서 필요한
피아노 실기 시험와 이론 필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4년간 가르쳤던 나의 제자였다.
지금은 캘거리에서 회계사로 일을 하는 재원이다.
그리고 지금은 마리의 작은 아버지의 두 자녀이자
사촌 동생인 엘리와 에이든을 10년째 가르치는 제자라서
두 가족 다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온 관계라서
하루 고민하다가 내 상태가 양호하지는 않아도 괜찮다면
기꺼이 미사 음악을 맡겠다고 에린에게 연락했다.
고인이 되신 앤드류 님은
전기 엔지니어로 68세까지 활발하게 일을 하시다가
차츰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서,
안타깝게 70세 생일을 맞이하시기 전에
요양 시설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이렇게 들어간 시설에서 17년간 지내시다가
87세에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장례미사가 열린 1월 11일은 마침 토요일이라서
함께 오랜 친구 마리를 위해서
맏딸 진이는 기꺼이 첼로를 연주하기 위해서
나와 함께 미사에 참석해서
미사가 시작되기 전, 조문객들을 위해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서 첼로 음악을 연주했다.
장례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은
본인 자신도 노래를 잘 하시기도 하고
중세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레고리안 챈트 음악을 워낙 좋아하셔서
이날 미사 예절은 말로 하는 기도문 대신에
거의 라틴어로 쓰인 그레고리안 성가로 대체했다.
장례 미사는 '망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리고 영원한 빛을 주소서"라는 내용의
"레퀴엠 에테르남(시편 64) 성가로 엄숙하게 시작되었다.
Introitus Requiem aeternam dona et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ts. Te decet hymnus, Deus, in Sion, et tibi reddetur votum in Jerusalem. Exaudi orationem meam, ad te omnis caro veniet. Requiem aeternam dona et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ts. |
입당송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시온에서 찬미받는 주님,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서약하신대로 행하소서.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께 모든 육신을 맡깁니다.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주님,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
엄숙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의 장례 미사는
고인의 영혼이 천상으로 인도해 주십사는
청원을 담은 'In Paradisum" 라틴 성가로 마쳤다.
In paradisum In paradisum deducant angeli:
in tuo adventu suscipiant te martyres, et perducant te in civitatem sanctam Jerusalem. Chorus angelorum te suscipiat, et cum Lazaro quondam paupere, aeternam habeas requiem. |
천상으로 천사들이 당신을 낙원으로 인도하게 하소서: 순교자들이 천국문 앞에서 당신을 맞이하게 하소서, 그리고 거룩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게 하소서. 천사 합창단이 당신을 맞아주소서, 그리고 한때 거지였던 라자로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
장례 미사 후, 신부님을 필두로 유족들과 가까운 친지들은
납골당으로 이동해서 마지막 장례 절차를 마치고
다시 성당으로 와서 지하실에 마련된 간단한 리셉션을 가졌다.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이어지는 가운데에
참석하신 조문객들이 유족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반주 없이 아카펠라로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부른
라틴어 성가와 맏딸 진이의 잔잔한 첼로 음악이
유족들이 고인과의 길고도 긴 작별의 시간으로 인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무게를 덜어 주는데
커다란 위로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셔서
유족과 고인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일조한 것 같아서
역시 장례 미사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 고인의 손녀와 우리 맏딸이 시작한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을 보니,
인간의 인연은 어떻게 귀결되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17년간 오랜 세월 간 가족과 떨어져서
요양 시설에서 외롭게 고통받고 지내시던 고인 앤드류 님이
이제는 천상에서 편안히 잠드시길 기원하는 라틴 성가를
집에 오는 길 차 안에서 계속해서 불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와 내 가족에게도 충분히 생길 수 있기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세워서
뒷감당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덜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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