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밤새 내린 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앞마당
(2025년 3월 28일 오전)
울동네는 여름에도 눈이나 서리가 오는 동네라
2주 전 3월에 한바탕 10 cm 눈이 내려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더니
2-3일간 지나니 춘설이 다 녹아내렸다.
그 후 날씨가 푸근한 날씨가 이어져서
예년보다 일찌감치 봄이 오는가 싶어서
마음이 앞선 나머지
겨울 외투와 부츠등 부피가 나는
아이템들을 정리해서 넣고,
오늘 미사 후, 오랜만에 차청소를 계획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오늘과 내일 사이에
봄철 폭설이 퍼붓는다는 일기예보가 이어져서
눈이 내리면 얼마나 내릴까 싶어서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직 동장군이 물러나기에 아쉬웠던지
어젯밤부터 진눈깨비가 휘날리더니
금요일 아침 미사에 성가 봉사를 가기 위해서
아침 7시에 깨어보니, 세상에나
거의 무릎까지 눈이 내려서 아연실색했다.
이런 날씨에 누가 아침 미사에 올까 싶어서
나도 날씨를 핑계 삼아 성당 사무장에게
못 갈 것 같다는 연락을 할까 하다가도
사순절에 이마저도 감내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차가 나갈 수 있게 대충 눈을 치우고
거리로 나서니, 그야말로 온 세상이
하루 밤 사이에 순백의 설국으로 둔갑했다.
내 기대와 달리 하루 밤 사이에
최소 25 cm 눈이 내린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금요일 아침 미사에 참석하는 인원인
약 120명 정도의 신자들이 참석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너무 눈이 많이 내리기도 하고
평소와 달리 물기를 엄청 먹은 함박눈이라서
집 앞의 인도와 차고 앞 드라이브웨이에 쌓인 눈을
가족이 1시간마다 번갈아 가면서 겨우 치웠지만,
계속 퍼붓는 야속한 눈은 금방 또 쌓여갔다.
오전 11시에 내 차례가 되어서
집 앞에 쌓인 눈을 힘겹게 치운 후,
순백의 세계를 구경하고 싶어서
집 뒤 숲으로 나가 보았다.

이 폭설에도 누군가가 이미 지나간 흔적은 있지만
무릎까지 오는 깊은 눈을 뚫고 걷기엔
역부족 그 자체였다.

우리 집 뒤 이웃인 안드레아네 집 뒤뜰 나무에
쌓인 눈이 무거워 축 늘어진 소나무

기다란 부츠를 신었는데도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부츠 안에 눈이 들어오고,
발도 축축하고 시려 오기도 하고,
깊게 쌓인 눈을 헤치고 걸어갈 자신도 없어서
접고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순전히 생뚱맞게 눈이 내려서
좋아하는 영시를 함께 음미해 봅니다.
Spring Storm/봄 폭우
William Carlos Williams(1883 –1963)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The sky has given over
its bitterness.
Out of the dark change
all day long
rain falls and falls
as if it would never end.
Still the snow keeps
its hold on the ground.
But water, water
from a thousand runnels!
It collects swiftly,
dappled with black
cuts a way for itself
through green ice in the gutters.
Drop after drop it falls
from the withered grass-stems
of the overhanging embankment.
하늘이 머금은 쓰라림을
마구 토해낸다.
영원토록 멈추지 않을 것처럼
어두운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또 내린다.
대지에 쌓였던 눈은
사라지지 않으려고 애써 버티어 낸다.
1,000개의 도랑을 통해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빠르게 모아져
거무튀튀하게 얼룩진 한 작은 도랑이 되어
홈통에 쌓인 퍼런 눈 사이를 뚫고 흐른다.
둑 가장자리에
기다랗게 걸린 풀 줄기에서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진다.
한글 번역: N. H. Kim©
(한글 번역은 잠시 후 내립니다.)

로키 산맥의 밴프 동네에도 폭설이 내렸단다.
이번 주말에 막내의 생일을
밴프에 가서 함께 기념하려고 숙소 예약까지 했는데,
폭설로 인해서 운전이 무리일 것 같아서
해약을 하려고 숙소에 전화했더니,
이런 악천후에 오는 것이 오히려 민폐라면서
괜찮다고 해 주어서 고맙고 미안했다.
물기를 엄청 많이 먹은 이 함박눈을
마음 같아서는 가능만 하다면,
거대한 산불이 타고 있는 한국으로 공수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화재를 진화하고 싶다.
길고 혹독한 겨울과
생뚱맞게 봄에 내린 폭설이 원망스럽다가도
지진, 화산, 태풍, 홍수같은 천재 재변과
산불같은 인재보다 훨씬 양반이라는 생각이 드니
간사스러운 인간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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