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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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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Helen/헬렌의 부엌에서

징글징글한 배추와 무....

by Helen of Troy 2009. 1. 24.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상한 약점이 하나 있다.

 

에드몬튼으로 이사를 오기전에 미국과 캐나다의 큰도시에 살때는

한국 야채와 여러 그로서리가 풍부하고 값이 싸서

필요한만큼만 사서 그때 그때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었었다.

그런데 겨울이 길고 춥기도 하고

한국교민이 많이 살지 않은 도시이다보니

전에 살던 도시들에 비해서 모든 한국식품들이 평균적으로 30-40% 비싸고,

거기다가 품목도 다양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내가 즐겨먹는 야채가 턱없이 비싸고 귀하다.

그래서 싱싱하고 제철 과일이나 야채를 보면

이상한 욕심이 발동을 해서 마구잡이로 사재기를 하는 고약한 고질병이 생겼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고질병이 며칠전에 그만 도졌다.

 

설도 가까워지고,

11월 말에 담은 김장 김치도 서서히 바닥에 가까워져서 불안하기도 해서

배추 서너포기와 무를 사서 김치를 담으려고

이틀 전에 한국식품점에 들렀다.

마침 트럭에서 새로 배달된 무와 배추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야채를 가게 안으로 운반중이었다.

 

처음엔 몇포기만 사려고 갔던 나는

싱싱하고 맛나게 보이는 배추와 무를 본 나는

그만 다시 그 몹쓸 고질병이 발병하고 말았다.

결국 45 파운드가 나가는 배추 한 박스와

55 파운드의 무게가 나가는 무 한 박스, 거기다가 김치담기에 필요한

새우젓, 멸치젓, 갓,파, 마늘, 생강, 등등을 잔뜩 사들고 의기양양 집에 갔더니

무거운 박스들을 집안으로 옮겨주던 남편이

반은 걱정스럽게 반은 한심한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일단은 그 짐들을 차고안에 내려놓고

부억에서 차를 마시면서 뭘 어떻게 저 많은 채소를 처리할까 생각하니

갑자기 무모하게 사들인 내 자신이 참 한심해서 화부터 치밀었다.

우선 배추와 무을 소금에 저릴 큰 그릇도 없고,

담은 김치를 담아 놓은 병이나 항아리도 충분히 없고,

담았다 한들 김치 냉장고도 없으니 그 많은 김치를 저장해 둘

냉장고에 자리도 없다.

거기다가 집에서 김치를 먹는 사람은 달랑 나와 남편 둘이다.

 

그래서 잔머리를 굴리다가

남에게 선심이나 쓰려고 가까운두분에게 전화를 걸어서

좋은 배추와 무가 있으니 필요하시면 가져가시라고 했더니

다들 귀찮으신단다......   Now what??

 

이틀을 어떻게 피하다가

사흘째가 되어서 아직 신선할 때 해 치우려고

우선 나가서 커다란 Tupperware 그릇을 여섯개 사온 후에

드디어 팔을 걷어 부치고 이를 갈면서 김치 담기를 시작했다.

 

 집에 와서 보니 ....

 어떻게 운반이 됐는지 반갑게 광주 화정동에 있는 농장에서

이 먼곳까지 날라왔다.

 

 일단 손 쉽게 배추부터 잡동사니 보관함으로 쓰는 큰 통을 세개에다가

소금에 저려 놓고...

 

 

40개정도 되는 무를 peeler로 벗겨서.. 

 새로 나가서 사온 tupperware그릇 두개에 동치미용으로 역시 소금에 저리고..

 

 깍두기 용으로 잘라놓고..

집안에 있는 크고 작은 그릇들이 총동원했다.

 

 아직도 20개 이상이 남아서

뒷마당은 하얀눈으로 덮였지만 오랜만에 영상 8도의 날씨에 힌트를 얻어서

이렇게 있는 대바구니를 총동원해서 베란다에 무 말랭이용으로 내놓고...

 

 

김치속에 들어갈 무을 채썰어 놓았는데

아직도 11개가 남았다.

 

이제는 딱딱한 무를 벗기고 써는 일이 힘만 드는 게 아니라

짜증까지 난다. 

 

 

그날은 항상 하듯이 오후부터 밤 9시반까지 이어지는 레슨 스케줄대로 일을 마치니

너무도 피곤해서 그냥 부억 한가득 크고 작은 오만가지 모양의 그릇을

널려져있는대로 그대로 두고 그냥 쓰러져 잤다.

 

그 다음날 다행히도 오랜 시간동안 소금에 절여져도 짜지 않아서

나의 무지함과, 쓸데없는 욕심과 고질병을 줄창 탓하면서

씩씩거리면서 김치를 담아 치웠다.

 

이렇게 배추김치,

깍두기,

동치미,

무 말랭이,

굴을 듬뿍 넣은 무채를 만들어서

냉장고나 다름없는 차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힘은 들었지만 뿌듯하기도 하고,

앞으로 손님 100명은 너끈히 치룰것 같기도 하고,

먹을 김치가 재여 있어서 든든하기도 하다.

 

수고한 나를 위해서,

속을 부글부글 끓인 탓에 열불이 난 가슴을 식히기 위해서

시원한 맥주 두병을 단숨에 쭉 마시고

뜨거운 물로 채워 놓은 목욕탕으로 향했다.

 

고약한 고질병이 언제 또 도질지

나도 내가 무섭다....

 

 

Let us live so that

when we come to die

even the undertaker will be sorry

 

Mark Twain (1835-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