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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rished Music/나누고 싶은 음악

평온한 일상이 오히려 불편한 요즘에 새로 시작한 바하의 골드버그 변주곡(The Goldberg Variations by J. S. Bach)

by Helen of Troy 2019. 9. 7.






새학년이 시작되는 9월이 어느새 다가 왔다.

따라서 두달 반의 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때로

느긋하던 휴가 때와 달리 갑자기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느라 숨이 차오르는 시기인데,

올해는 평소와 달리 평온한 새학기를 맞이하고 있다.


나의 삶은 어려서 이민을 와서 자연스럽게 4 형제의 맏이 역할을 떠맡게 되면서 

굴곡있는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해서 명예와 돈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인으로 살면서

주 평균 80시간 이상의 업무량과 잦은 출장과 끊임없는 긴강감으로 오는 스트레스로

그에 따른 희생 역시 톡톡히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결혼 후 세 아이를 키우는 소위 워킹맘의 삶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임신 6개월만에 고작 980 그람으로 세상에 너무 일찍 태어난 큰딸,

그리고 자폐 장애를 안고 태어난 복덩이 아들을 직장과 병행하면서

정상인들 대열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써야 했고,

그리고 선물같이 건강하게 태어나 준 막내딸 차례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육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거의 40년을 질주하듯이 

치열하게 살아 오던 내게 작년부터 변화가 생겼다.


큰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좋아하는 첼리스트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을 하면서

틈틈히 다시 공부를 해서 지난 5월부터 첼로 연주를 하면서 회계사로 일을 시작했고,

복덩이 아들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8년째 좋은 직장에서 잘 버티고 일을 하고 있고,

막내마저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면서, 

매달 두둑하게 생활비를 낼 정도로, 나름대로 각자 경제적으로 앞가림을 하게 되면서, 

잘했든 못했든 엄마의 역할에서 졸업한 셈이다.


우리 나이 또래의 지인들 중에, 자녀들 키우는 일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다.

올해 만 97세 되신 시아버님이 아직 생존해 계시지만,

멀리 서울에 거주하셔서 죄송하지만 그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동안 하루에도 몇번씩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들을 끊임없이 대처하면 살면서,

'인생은 60부터' 라고 주문을 외듯 되뇌이면서 여러가지 의무와 책임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그 시기가 드디어 내게 찾아 왔다.


그래서 바로 더 나이 들기 전에 해 보고 싶었던 일들을 해 보고 싶어서

하던 일을 전에 비해서 약 40%로 줄여서 자유시간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자신을 위해서 하루에 최소 1시간씩 책 읽기, 운동하기, 

그리고 악기/노래 연습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고,

식사도 전처럼 헐레벌떡 떼우는 수준에서 여유를 가지고 제대로 가족의 식사를 챙기기도 하고

나도 식사를 마칠 때까지 한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호사까지 누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이 널널해진 시간에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을 하나씩 하기도 하면서,

예전에 상상도 못했던 낮잠도 자기도 하고, 소파에 딩굴어 보기도 할 정도로 신바람이 났다.

그런데 오랫동안 애타게 염원해 오던 나의 이 평온한 삶이 

조금씩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당혹감이 들기 시작했다.


늘 분 초를 따지면서 몇가지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바쁘게 해 오던 내게 이 평온한 일상은

마치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듯 어색하기도 하고, 

안이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자격이 과연 내게 있는지 고민도 되고,

여전히 치열하게 사는 이들을 보면 미안함도 들기도 한다.

전에는 바빠서 거의 잘 보지 못하던 티비나 한국방송을 보다가도 

왠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 같은 조바심까지 들어서 자제를 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큰 위안과 평화 그리고 기쁨을 안겨다 주는

평소에 제일 존경하는 요한 세바스천 바하의 '골드버그 변주곡'  전곡 연습에 들어갔다.


전곡을 완주할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순화시켜 주고, 지친 영혼을 달래 주기도 하고, 잔잔한 기쁨을 안겨다 주는

이 주옥같은 작품을 하나씩 느긋하게 연습을 하면서,

세운 계획과 이루어야 할 목적이 없어도, 기대에 못 미친다 해도 게으치 않고

60살이 넘어서 어렵사리 얻은 자유와 평온함을 

편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연습도 함께 하고 싶다.






하의 골드버그 변주곡 주제가 담긴 오리지날 매뉴스립트







골드버그 변주곡은 1741년에 바하가 두단의 키보드가 있는 합시코드를 위해서

'아리아' 와 다양한 변주곡을 발표했다.

주제인 아리아는 기교가 넘치면서 아주 평온한 분위기로 시작해서

다양한 분위기와 테크닉을 요하는 30개의 변주곡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골드버그' 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배경은

불면증으로 시달리던 카이절링 백작이 그가 고용한 합시코드 주자였던

요한 고틀립 골드버그에게 그가 쉽게 잠이 들 수 있는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다양한 변주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을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지만,

전문가들은 아마도 사실이 아닐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 믿을만한 근거는, 골드버그씨는 어려서부터 아주 음악적인 재능이 많았고,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제자이자 아들 빌헬름의 제자인 골드버그를 위해서

이 작품이 작곡되었다는 설이 신빙성이 높지만, 

전자의 배경이 이 작품의 분위기를 대변해 주고, 듣는 이의 흥미를 불러 일으켜 준다.


이 작품은 1750년에 바하가 세상을 떠난 후, 음악적인 유행이 바뀌어지면서

이 작품을 비롯해서 그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19세기 후반부터 다시 리바이벌 되면서 이제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 작품이 널리 알려지게 큰 공헌을 한 이는 캐나다 출신 천재 피아니트스 글렌 굴드이다.

굴드가 22세 되던 해인 1955년에 콜럼비아 레코드 회사는 그에게 

이 작품을 담은 음반 제작 계약을 제의했다.

당시로서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아서 대중성이 떨어진 이 작품을 데뷰 레코드로

출시하는 것이 큰 위험성을 안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굴드의 골드버그 연주 음반은

인기리에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굴드도 연주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골드버그 변주곡 연주는 다른 연주가의 연주보다 템포가 무척 빠른 편이며,

아주 정확한 테크닉을 구사해서 명쾌하고 투명적인 분위기로 연주했다.

그의 전곡 연주는 고작 30분으로 LP 2장에 해당하는 템포인 반면에

근래에 출시된 이 작품의 길이는 60-80분이 걸린다.

(참고로 안드레아스 쉬프의 연주는 약 75분이 걸린다.)









글렌 굴드의 골드버그 변주곡 악보



  우선, 글렌 굴드 연주로...


            




그리고...

사뭇 여유로운 템포와 서정적인 분위기의 골드버그 변주곡을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로도 감상해 보시길...